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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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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아프간 사태는 미·중의 경쟁 속
한반도 가치를 함께 높일 기회다
친미·친중 등의 양자택일을 넘어
반쪽의 자강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자강을 생각한다

   
 

지난 8월15일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였다. 미국 대사관 직원의 긴급한 탈출을 돕기 위해 대사관 건물 위에 떠있는 미군 헬리콥터의 사진은 1975년 4월30일 미군 헬리콥터가 베트콩에 의해서 함락된 사이공에서 미 대사관 직원과 조력자를 급하게 실어나르는 장면을 곧 연상시켰다. 20년에 걸친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이어 20년을 끌었던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단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명예스러운 퇴각이 베트남에서의 악몽보다 미국에 더 곤혹스러운 것은 아프간 사회의 내부 무장세력인 탈레반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하여 베트남전쟁은 애초부터 동서진영 간의 갈등을 내포한 국제전의 성격을 띠었다.

역사적으로는 영국과 러시아 그리고 독일의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했던 요충지 아프가니스탄이었지만 나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다. 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58년부터 1863년 사이에 뉴욕에서 출간된 백과사전 <뉴 아메리칸 사이클로페디아>에 쓴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긴 항목을 우연히 발견했다. 마르크스도 당시 뉴욕데일리트리뷴의 통신원으로 인도, 중국, 페르시아를 포함한 서아시아 사회의 현실과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많은 논평을 썼을 때였다.

“아프간 사람은 용맹스럽고 끈질기며 자유를 사랑한다. (…) 모든 지배에 대한 그들의 억누를 수 없는 증오와 인격적인 독립에 대한 특별한 애착은 하나의 강력한 국가형성을 방해했다. (…) 행동에서의 무절제와 지속성이 없는 이들이기에 위험한 이웃으로 남게 되었다. 기분에 따라 쉽게 움직이거나 정치적 책략에 그들의 정열은 교묘하게 솟고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엥겔스가 아프가니스탄에 관하여 쓴 글의 일부다. 오늘의 맥락에서도 여전히 많은 부분 다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어떻든 아프간 사회에 대한 나의 관심은 뮌스터대학의 동료들 덕분이었다. 한 동료는 1960년대 중반부터 현지 조사를 시작했던, 서독 내의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최고 권위자였다. 또 다른 동료는 페르시아를 무대로 1차 세계대전 때 대영국 첩보전을 벌였던 전설적인 독일 외교관 빌헬름 바스무스(1880~1931)의 인척이었다. 영국인은 그를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빗대어 ‘독일의 로렌스’라고 불렀다.

뮌스터대학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친 후에 귀국, 아프가니스탄 동남부에 있는 파크티아주의 주지사였으나 2006년 탈레반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학생도 있었기에 이래저래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주한 독일대사를 역임했지만, 그 이전에 아프가니스탄 주재 독일대사를 지낸 고위 직업외교관이 베를린에서 한 지붕 밑에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과는 다른, 외교적 차원의 현안에 대해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미국과 서방 측 동맹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전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아프간 사회를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재단한 ‘네이션빌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미군 파병은 ‘9·11’ 이후 빈라덴을 정점으로 한 테러리즘을 근절하기 위한 것이었지, 아프가니스탄의 네이션빌딩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철군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패전을 에두르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네이션빌딩은 종종 ‘국가재건’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적·문화적·언어적인 정체성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장기간에 걸치는 재건과정을 의미한다. 본디 이런 의미를 지닌 네이션빌딩도 - 유고슬라비아의 내전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 외부의 군사적인 개입을 통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서방사회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민주적인 제도를 정착시킨다는 의미로서 전용되었다.

다양한 종족과 언어 그리고 여러 이슬람 종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로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낸 아프간 사회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그들이 경험한 틀에 맞추어 짜깁기하려 들었다. 그러나 20년 동안 그럴싸하게 보이는 건물의 외벽공사만 하다 많은 공사비만 들이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방세계처럼 군대와 경찰조직을 새롭게 꾸리고 부녀자들도 선거에 참여시키고 여학생을 위한 학교도 세웠다. 하지만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를 상호 조정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채 치러진 선거라는 형식은 족벌주의와 부패만을 재생산했다.

바로 이러한 허점을 파고든 탈레반은 아프간 세계의 전통적인 사회관계에 기반을 둔 비대칭적인 장기전에서 승리했다. 이에 앞서 소련도 1979년부터 10년 동안 많은 정규군을 아프가니스탄에 파송했다. 하지만 여러 이슬람 종파로 구성된 ‘무자헤딘’으로 불린 게릴라부대의 끈질긴 저항에 굴복하고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이슬람 무장세력을 미국도 앞장서서 지원했으니 오늘의 화근을 스스로가 심은 셈이었다.

독일 외무장관으로 아프가니스탄전쟁의 초기에 관여했던 요슈카 피셔는 얼마 전 “서방 측은 시계를 가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졌다”라는 탈레반 지도자의 말을 인용, 서방 측의 전략적인 실패를 지적했다. “아프간 사람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보지 않고서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결코 말할 수 없다. 아프간 사회는 결혼과 죽음으로 계속 연결되는 세계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전문가였던 동료가 남긴 말이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루라도 빨리 철군하겠다는 바이든의 결단이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대외정치의 논리를 따랐을 뿐이다. 언제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외국에 파병하거나 철군한 적이 있었던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미국과 동맹국이 오랫동안 자기기만과 환상 속에서 20년 동안이나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전쟁을 수행했던 잘못에 대한 자성의 소리도 있다. 이와는 달리 다음 차례 아프가니스탄이 어디가 될 것인지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모습도 보인다. 여기에 남한과 대만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에 관한 이러저러한 논평이나 주장도 국내 매체에 연일 등장한다. 아예 아프가니스탄과 남한을 같이 봐 미국의 지원 없이는 남한은 북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미국 보수 논객들의 주장도 여과 없이 전달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남한을 비슷하다거나 또는 같다는 전제를 세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회의 내부적 구조와 역사, 그리고 주위 환경을 엄밀히 검증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한 교훈으로서 ‘자강(自强)’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밑도 끝도 없는 결론만 담은 주장을 한·미 동맹의 강화와 결부시키는 모순된 논조도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미국은 그의 위상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겨냥한 봉쇄망을 계속 더 조이려고 시도할 것이고, 중국은 중국대로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발판으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첨예해지는 갈등구조의 종속변수로만 남을 것인가. 이번 사태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전환점으로 만들 기회가 될 수 있다. 남북이 서로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 한반도의 존재가치를 함께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 있었던 남북 정상 간의 4·27선언이 그동안 제대로 실천에 옮겨졌다면 한반도의 자율적 공간은 그동안 많이 넓혀질 수 있었다. 친미냐 친중이냐, 또는 반미냐 반중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닌 친미와 친중, 반미와 반중도 할 수 있는, 가볍지 않은 한반도의 무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반쪽의 자강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자강을 생각하게 된다. 양자택일의 논리는 악마의 산물이다. 그리스어로 악마를 의미하는 ‘디아볼로스’는 본디 둘로 나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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