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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보다 앞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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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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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상 / 정치부장

   
 

참여정부 임기 종료 4개월여 전인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선 획기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하루 전 북핵 6자회담에서 영변 주요 3개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 완료, 핵프로그램 신고 완료 합의 등이 이뤄진 데 이어 남북 정상회담에선 정전체제 종식과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8개항으로 이뤄진 10·4 남북공동선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합의는 4항, 남북 정상이 현 정전체제 종식과 함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공감하면서 3자 또는 4자 정상이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은 북핵 문제가 패키지로 한 방에 해결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정부에 안겨줬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은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전체제다. 당시 서명 당사자는 북한 미국 중국이었다.

정작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우리 정부 내에서 종전선언의 형식과 조건을 놓고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종전선언은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자는 관련국들의 정치적·상징적 선언인 만큼 당사국들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주장과 종전선언에는 먼저 정치·군사·법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았던 참여정부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얼마나 급히 추진하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당시 야심차게 추진됐던 종전선언은 정권 교체와 함께 먼 이야기가 됐다.

11년 뒤인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선언 3조 3항에서 ‘남북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했다. 2007년엔 없었던 종전선언 추진 시한을 연내로, 3자 또는 4자회담 참여국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후 남북 및 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들이 이어졌고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은 가까운 시기에 이뤄질 듯 보였다.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였다. 단계별 비핵화를 놓고 북·미 담판은 실패했고, 이후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북한이 플루토늄 분리와 우라늄 농축을 전속력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문 대통령은 22일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 북·미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면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의 한반도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전쟁 당사국들이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도 했다.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 신뢰의 토대 위에서 비핵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런데 현재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은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를 위한 선결 과제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 또 이를 향한 구체적 진전을 강조했다. 북한은 제재 완화 없이는 비핵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상태다. 문 대통령 구상과 비핵화 대화 당사자들의 인식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임기를 7개월여 남겨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임기 내 한반도 평화 정착 실현을 위한 고심의 산물이겠지만, 국제사회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문재인정부로선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마침표를 반드시 내 손으로 찍겠다는 부담 대신 먼저 대화 재개에 주력해 보는 건 어떨까. 원대한 구상은 이제 다음 정부를 위해 남겨둬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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