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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김정은의 ‘새로운 게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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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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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북한은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미국과 담판을 시작했다. ‘달라진 핵 위상’이 협상 무기였다. 그러나 2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자 문을 닫아 걸고 국가전략목표를 다시 설정했다. 북한은 최근 5개월 사이에 모두 8차례의 미사일 실험을 감행했다. 이것은 김정은이 주도하는 ‘2번째 게임’의 초반부 모습이다.

김정은의 첫번째 게임은 집권 직후인 2012년부터 ‘핵무장에 대한 모호성’을 벗어던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은 핵개발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의사를 내비치곤 했으나 김정은은 핵무장이 목표임을 명확히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 직전 만들어놓은 2·29 북·미 합의에 서명하긴 했으나, 곧바로 이를 뒤집은 뒤 핵무장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까지 3번의 장거리로켓, 6번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120여차례의 발사 실험과 4번의 핵실험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은 미국의 대화 요구에 불응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자제 요청도 무시했으며 조여오는 제재의 고통도 참아냈다.

제재와 고립으로 인한 압박이 턱밑까지 차오른 시점에 북한은 핵무력을 완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화 국면을 조성해 북·중관계를 복원하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김정은의 목표는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합의로 기대 이상의 첫 성과를 거두었지만, 2019년 ‘하노이 노딜’에 이어 완전히 태도를 바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에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핵무력 완성을 무기로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려던 김정은의 첫번째 게임은 실패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태도가 후반기 트럼프 행정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북한은 북·미 대화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북한이 지난해 8차 당대회에서 국가전략무기 현대화를 선언한 것은 김정은의 2번째 게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북한은 ‘게임 플랜’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북한은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수중 및 지상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ICBM 개발과 정확도 향상, 핵잠수함 보유 등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할 것이다. 김정은은 핵능력의 고도화·다종화·정밀화를 완성하고 더 높은 핵강국의 위치에 도달한 뒤에야 미국과 다시 마주 앉을 것이다.

김정은의 이번 게임은 쉽지 않다. 제재는 이미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조여진 상태다. 미국은 북한의 ‘마이웨이’에 제재·압박 강화로 대응할 것이다. 김정은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을 정도로 앞길이 험난하다. 하지만 북한에 유리한 점도 있다. 지금까지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미사일 능력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금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핵기술의 전술무기화 작업은 사실상 안보리가 다뤄왔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된 전략에 맞춘 새로운 대응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중 대결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새로운 대응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미·중 대결 국면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중국 쪽으로 열려 있던 기존 제재의 구멍이 더 커질 수 있다.

한반도 상황은 더욱 엄중해졌는데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안일하다. 지난달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철 지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회동 등을 성과로 꼽는가 하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여건을 조성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를 내놓았다. 북한이 ICBM 발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부 인사도 있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ICBM이 계획의 뒷부분에 있기 때문이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차피 이제는 차기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누가 집권하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북핵 문제는 이제 예전의 패턴으로는 다룰 수 없는 전혀 다른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한 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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