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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디아스포라와 한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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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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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권 / 동아대 명예교수

뒷말 무성한 동계올림픽, 중국의 문화공정 우려도
일제 탓에 흩어진 한민족, 한류 지구촌 확산 큰 역할

   
 

편파 판정 논란 등으로 여러 가지 뒷말을 남긴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0일 마침내 막을 내렸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장면 중 하나는 개최국 중국에서의 개막식에 뜬금없이 등장한 한복이었다. 최근 한류가 지구촌을 강타하는 와중에 중국에서는 한복을 한푸라 칭하며 자신들의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해 오던 터이다. 그들은 이번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한복을 중국의 전통의상으로 세계인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보니 국내 일부 언론은 중국의 문화공정이 시작되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문화공정은 동북공정에 빗대어 지어낸 말이나 실제로 양자의 의도가 다르지도 않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중국 내에서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동북 3성, 즉 만주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는 ‘간도’라는 말로 더 익숙한 지린성 내 특별행정구역인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가장 많은 우리 동포가 분포해 있다. 다만 같은 해외 동포이면서도 재일교포, 재미교포와는 달리 이들을 ‘조선족’으로 부르는 것은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약간은 비하의 느낌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연변을 비롯해 중국에 우리 민족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물론 19세기 이전에도 한반도의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한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쯤이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뭄이나 흉년 때 가난한 농민들의 이주가 많았으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만주로 건너갔다. 고대에는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이기도 했고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인접했기 때문에 만주는 나라를 잃은 망명객들이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우리 민족의 고대사 연구를 위해 만주 일대를 답사한 것이나, 나철 선생이 중광한 대종교가 이 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1910년대 약 11만 명으로 추산되던 만주지역 조선인 인구는 1930년에는 60만 명을 넘어섰고, 1945년 해방될 무렵에는 200만 명에 달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만주지역의 조선인 인구가 급증했던 것이다. 이 기간 만주지역 조선인 인구증가가 급증한 것은 한반도의 가난한 농민들의 대량 이주 때문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의 사람은 일제의 대륙침략을 위한 만주개발정책에 따라 강제적으로, 또는 반강제로 고향을 떠나 만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만주에 이주한 이들 중 다수가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집단부락에 수용되어서 강제노동으로 혹사당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은 오늘날 한일 간 역사 갈등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이지만, 아직도 만주지역 조선인의 이주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일제시기 강제동원된 조선인 다수가 해방이 되고 나서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는데, 그 가운데는 중국 하이난 섬 등지의 강제동원 현장에서 학살된 사람도 있고, 우키시마호 사건의 예처럼 귀환 도중 의문의 죽음으로 불귀의 객이 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은 급변하던 국제정세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귀환하지 못한 채 해외 교민으로 남게 되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끌려간 연해주의 동포들도 대부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만주지역 동포들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여서 중국의 내전과 공산화 등의 급격한 정세 변화 속에서 대부분이 귀환하지 못한 채 중국의 ‘조선족’으로 남게 되었다.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이 한복을 입고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등장했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중국의 문화공정과는 별도로 중국 거주의 우리 동포들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모습은 상찬할 만한 일이다.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야기된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확대되었고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한 교민사회의 토대가 되었다. 금세기 한류의 지구적 확산에는 해외 교민들의 역할이 또한 작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일본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우리 교민이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한국 소프트파워의 상징인 한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현실만 보더라도 그러한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이 한복을 비롯해 한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그 반증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세기 일제 식민통치가 빚어낸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와 금세기의 한류가 하나의 연결고리를 이룬다는 것은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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