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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위공(天下爲公)은 인간의 몸이다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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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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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천 / 매스서부한인회장]

무한(infinite)을 뜻하는 이 기호는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이 묘사한 경이로운 인간의 놀이터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지구와 어떻게 다른가?

   
 

호접지몽(The Butterfly Dream)의 단꿈을 꾸는 유인원이 비몽사몽 꿈 이야기를 하고 이상 세계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가상현실을 통해 보여 준듯하다. 현재 인류에 벌어지고 있는 최첨단 홀로 그래픽 기법 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계 사람의 몸이다. 여기서 온갖 조화와 희로애락이 만들어지고 악의 꽃이 피어난다.

사람의 몸이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듯이 은하가 그럴 것이다. 이처럼 광대한 인간의 꿈을 열어 구라를 친 장자. 그런데 이 황당한 구라는 밉지가 않으며 오히려 설득의 가치가 있다. 만 리 강물을 한 올의 머리칼에 비유하고 천 리 길을 개미의 앞다리에 비유한 대장부들의 큰 그릇에 감탄한다.

머리

무한 질서와 욕망의 생산자이며 파괴자이다. 천하를 다 넣어도 양이 차지 않는다.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본 것을 다르게 창조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요물스럽고 까탈스러운 번뇌의 종결자

인식하는 일차 부역자이다. 이것이 감기면 몸의 기능 반이 나간다. 보는 것으로의 눈은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오직 충성스러운 일방통행 뇌의 전달이다.

공명의 요물이다.
좋은 소리만 알아듣는다.
혹은 나쁘게만 들린다.
중간이 정음(正音)이다.
코와 입
촉이다.

생각의 대리인이며 머리를 먹여 살리는 피붙이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거칠고 사납다.

이 기능이 망가지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고
부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생각의 기둥서방이다.

두뇌의 교통수단이다.
이상한 이 모양은 지상의 수평이다.
길은 걸어야 생긴다(道行之而成)

하나와 모두가 회통으로 융합하고 연계되어 있듯 너로 인해 내가 존재한다는 실상은 지상의 어떤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유토피아를 만들어 낸다. Utopia는 토머스 모어의 소설과 도연명의 무릉도원(武陵桃原) 혹은 오스카상을 받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의 소설 Lost Horizon에 나오는 샹그릴라(Shangri-La)도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일 것이다. 위에 열거한 곳 모두는 현실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이상향(理想鄕)이다.

그 어떤 꾸밈도 의문도 없는 무위의 아득한 경지. 기실 그런 곳은 지상에 없으나 세상이 혼탁할수록 마음으로 나마 위안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으리라. 허구의 지명을 만들어 붙이고 살을 덧대어 이상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외양이 이러한데 진의는 또 얼마나 심오할 것인가?

천자(天子)가 은자(隱者)에게 묻는다.

천자 /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 주시오.

은자 / 물러가라!

어찌하여 그따위 일을 내게 묻는가?

나는 조물주(造物主)와 벗이 되어 노닐다 그도 싫증 나면, 멀리 나는 큰 새를 타고 육극(六極)의 바깥으로 나아가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소요한다오. 그런 나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그따위 일을 묻는가?

그대가 천하를 움직이고 싶다면, 마음이 맑은 곳에 노닐고, 기(氣)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모든 일을 무위에 순응하며 사사로움 담지 아니하면, 천하는 저절로 다스려지리라.

그는 진인(眞人)이다.

장독을 어떻게 간장 종지에 넣으랴. 그러나 간장 종지는 장독을 먹어 치운다.

인간관계에서 시비 갈등과 욕망은 희로애락의 촉을 느끼고, 만들어 낸 것으로 하여 기쁨과 고통을 맛보지만 결국 그로 인해 생노하여 병사한다. 이런 욕심을 끝없이 생산해 내고 소비하는 곳은 결국 인간의 몸이다.

또 자기의 뜻을 고집해 천하의 사람을 다스리려 하면 백성을 해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다스리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백성들의 관점에서 백성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게 장자가 말하는 통치의 지론이다.

장자의 우화는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 관념 속의 빗장을 풀어 정신세계를 해제해버린다. 즉 대비에서 오는 크다 작다와 옳고 그른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고 모든 사물은 평등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멍 때리기의 좌망(坐忘)이다.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실사 철학으로 변모한다. 일체의 만물이 그의 철학에서 평등하고 권위주의에 대한 조소를 느끼며 영인(令人)에 대한 무한 경외를 느끼게 된다. 얻음은 잠시 때를 만난 것이며, 잃음은 자연의 순리에 몸 맞긴 것이라는 그의 지론은 지혜의 그릇이 비어있을 때 공의 큰 뜻이 담긴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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