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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민주주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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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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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 /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지난 3월9일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박빙의 차이로 나온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선거 불복에 대한 우려였다. 사전투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던 터라, 어느 쪽이든 패자가 승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5년 전에도 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 탄핵 시위 군중을 보면서, 혹시 폭력사태가 나면 어쩌나 했다. 불복과 폭력은 문자 그대로 ‘피로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를 파탄 낼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기우였다.

비서양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맨 먼저 실험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헌법 제정(1889년)과 의회 설치(1890년)를 이룬 나라다. 1870년대에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시행한 적이 있으나 오래지 않아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은 몇 번의 계엄령은 있었어도, 헌법이 정지되거나 의회가 폐쇄된 적은 없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에도 헌정은 유지되었다. 태평양전쟁에서 지고 맥아더가 약 7년간 군정을 실시할 때, 헌정 실시 이래 최초로 헌법을 개정했다. 그래서 현행 헌법인 ‘일본국헌법’이 탄생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총선거는 실시되었고, 의회 문이 닫히는 일은 없었다.

일본도 애초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1890년 실시된 최초의 총선거 결과는 야당 의원 수가 여당의 두 배인 여소야대였다. 야당 지지자들은 납세의 대부분을 감당하던 지주층이었기 때문에, 야당들은 합세해서 메이지 정부의 예산 확대에 격렬히 반대했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결국 1년 만에 중의원을 해산해버렸다. 제2회 총선거도 그냥 두면 여소야대가 될 게 뻔했다. 당시 내무대신인 시나가와 야지로와 지방단체장들은 선거개입에 나섰다. 후보 체포·매수·부정 개표 등이 자행되었고, 이에 항의하다 25명이 죽고 약 30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선거결과 여소야대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당시 마쓰가타 마사요시내각이 무너졌다.

이렇게 다시 구성된 의회도 오래가지 못하고, 1890년대 전반 일본은 의회 해산과 총선거를 거듭했다. 메이지 정부에 의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의회 폐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메이지유신의 원로이자 총리를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아직 의회제를 실시할 상황이 아니라며 헌법 정지와 의회 폐쇄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당시 일본 정계를 양분하던 이토 히로부미는 반대했다. 거꾸로 정부 지도자들이 ‘초연주의(超然主義)’를 버리고 정당을 창설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 문을 열었을 때, 정부 지도자들은 정당정치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정당은 당파의 이익에 집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공공 이익’을 수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소굴이 될 의회에 국가 정책 결정을 맡겨선 안 되고, 정부는 의회와 정당의 정쟁에 ‘초연’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의회와 정당의 힘을 과소평가한 발상이다. 아무리 의회의 힘을 약화시키더라도 예산권을 주지 않을 수는 없었고, 이것이 예상외의 파괴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더 이상 의회에 ‘초연’해서는 국가 운영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이토는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의회에 세력을 부식시키려 했으나, 메이지유신 원로들은 ‘정당 나부랭이’를 만들려는 시도에 경악하며, 한사코 반대했다. 그러자 이토는 청일전쟁을 치른 후 이타가키 다이스케,오쿠마 시게노부 등 의회를 장악한 정당 지도자들에게 정권을 넘겨버렸다. 그러고는 1900년 기존 정당 세력과 손을 잡고 입헌정우회라는 당을 만들어 총재가 되었다. 현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의 원류 중 하나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났다. 그사이 일본 민주주의는 비닐하우스에 들어간 듯하다. 반면 한국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야성적’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불복과 폭력을 걱정하는 수준은 넘어섰다. 향후 이 두 개의 민주주의가 어떤 길을 밟아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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