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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죽으러 오지 않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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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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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로펌에서 나와 비영리단체에서 상근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건을 맡았다. 벌써 6년도 넘게 지난 일이지만, 처음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유난히 날씨가 추운 이른 새벽이었다. 말이 새벽이지, 오전 7시 대림역 근처 인력소개소 분위기는 일을 마치는 퇴근시간과 비슷해 새벽 출근의 부지런한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사무실의 문 밖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부터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와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고민을 했지만, 공식 업무시간 전이라 받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봉지커피를 휘젓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렸다. 업무시간에 대해 따끔히 안내를 해야겠다는 뾰족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한쪽 어깨로 전화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두꺼운 상담일지 스프링 노트를 넘기며 사무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 사람의 이름, 국적, 연락처 등등.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물었을 때,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자리를 고쳐 앉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다. 변호사가 되고 로펌에서 처음 맡은 사건이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의 형사사건이었고, 기록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서늘했던 심각한 산재사건도 여러 건 맡았다. 노동자 사건뿐만 아니라 산재 사업장의 사업주를 대리해 내키지 않은 서면도 썼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드라마 대사처럼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성실하게 자신의 노동을 팔고자 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새벽부터 날아든 젊은 태국인 이주노동자의 부고장이 그려낸 지독하게도 슬픈 결론 때문이었을까.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회사 담당자가 오전에 장례식장에 찾아온다고 해서 새벽부터 연락을 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사진도 없는 제단을 향해 분향을 하고, 동료들과 사고 경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례식장을 찾은 회사 관계자는 법적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합의금을 제안했다. 제안을 거절하고 산재와 민사상 손해배상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황하면서 명함을 이리저리 보며 태국인들의 친구냐고 물어 단체 이름이 ‘친구’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사건은 수년에 걸쳐 사업장 내 재해보험, 산재 및 민사 배상까지 거쳐 마무리되었다. 처음 제안받은 금액보다 몇 배는 많은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젊은 노동자의 삶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2021년 산재 사망사고 현황을 발표했다. 전체 산재사고율은 최저 수준이었지만, 외국인 노동자 사망사고 비율만 전체 10%(94명)에서 12%(102명)로 늘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일터가 3D(Dirty, Dangerous, Difficult)를 넘어 ‘죽도록 일해’야 하는 4D(Deadly)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죽기 위해 출근하는 노동자는 없다.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작년 한 해 일터에서 세상을 떠난 102명의 이주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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