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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정신 ‘매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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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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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유교 문화권의 학자 관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사랑한 꽃은 매화와 국화이다. 추위와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꽃이라는 점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고 외로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 쓰라림은 버티기 어렵다. ‘내 팔자는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인가!’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다고 느낄 때 매화와 국화가 달래준 것이 아닌가 싶다.

국화를 사랑했던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귀거래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도연명을 들 수 있다. 매화는 누구인가? 퇴계 선생이 아닌가 싶다. 퇴계는 사화(士禍)에 걸리거나 당쟁에 엮여서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독특한 인물이다. 핍박받고 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는 점은 이채롭다. 퇴계만큼 매화를 아꼈던 인물은 한중일 삼국에 없는 것 같다.

꽃으로서 좋아한 정도가 아니다. 퇴계는 매화를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 여기는 경지로까지 나아갔다. 자기 내면세계에 매화가 자리 잡고 있었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인할 때마다 매화에게 질문을 던졌고, 어떤 때는 매화가 퇴계에게 말을 걸기도 하였다. 퇴계는 돈과 ‘가오’가 보장되는 서울의 출세길을 뿌리치고 안동 도산으로 귀향길을 떠나면서 자신이 아끼던 ‘분매(盆梅)’에게 작별시를 써준다. “도산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와 함께 못 가서 아쉬움이 크구려(東歸恨未携君去), 나 없는 사이에 서울의 먼지 속에서도 기품 있는 모습 잘 간직하고 있게나(京洛塵中好艶藏).”

퇴계의 이 시를 받고 ‘분매’는 이렇게 답한다. “자네도 옥설(玉雪) 같은 맑고 진실한 마음을 잘 보존하고 있게나(玉雪淸眞共善藏).” 퇴계의 제자 김취려는 선생이 서울 거처에 놓고 갔던 분매를 이듬해에 사람을 시켜 도산에다가 보냈다. 도산에 도착한 분매를 보고 퇴계는 이렇게 반가움을 표했다. “자네가 만겹의 풍진을 벗어나서 강호에서 한가롭게 살고 있는 삐쩍 마른 늙은이와 같이 놀려고 왔구려(脫却紅塵一萬重 來從物外伴癯翁)”. 퇴계는 죽기 직전에도 ‘매화에게 물 줬는가?’ 하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금융연수원은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인수위라는 장이 서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 앞을 지날 때마다 특별한 냄새가 난다. 금융연수원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왠지 기대감에 들떠 있다. 히로뽕 맞은 사람들 같다. 벼슬 줄을 잡았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왜 퇴계는 이 좋은 길을 마다하고 도산서원 골짜기로 가서 매화 향이나 맡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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