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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이란 신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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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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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BTS 월드'로 탈바꿈했다. 도시 전역이 BTS를 상징하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11개 호텔에 BTS 테마 객실이 등장했고, 벨라지오 호텔에서는 BTS 분수 쇼가 열렸다. BTS 공연과 전시, 쇼핑, 숙박, 볼거리, 먹거리가 연계된 ‘시티 프로젝트’다. 미국 ABC는 “어떤 유명 가수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미들은 몇 시간을 기다려 굿즈를 샀고, “돈을 많이 썼지만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즐거워했다.

BTS는 지난 4일 그래미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시상식의 주인공은 단연 BTS였다. 수상 실패로 그래미의 백인 중심주의를 탓하는 얘기도 있지만 그리 볼 일은 아니다. 올해 그래미는 어느 때보다 유색인 아티스트를 챙겼고, 지난해 BTS의 활동은 가벼운 틴팝에 싱글 중심이라 한계가 있었다. 결과가 아쉽지만 굳이 목맬 필요는 없다거나, 이건 ‘BTS의 실패가 아니라 그래미의 실패’라는 말까지 나오니 세상이 진짜 많이 변했다.

   
▲ 1910~80년대 4세대에 걸친 자이니치 이야기를 그린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 재미동포 1.5세인 이민진 작가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전 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 애플TV+]

더 눈길이 가는 건 OTT 애플TV+의 ‘파친코’다. 1910~80년대 4세대에 걸친 자이니치 가족 드라마다. 재미동포 1.5세 이민진 작가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애플TV가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ㆍ감독ㆍ배우를 주축으로 만들었다. 한국 배우로는 윤여정·이민호·정은채 외에 이번에 애플TV가 발굴한 ‘찐 무명’ 김민하·노상현 등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파친코’는 영화화 제의가 많았는데 이민진 작가는 유일하게 아시아 배우 캐스팅을 약속한 애플TV를 낙점했다. ‘파친코’를 넷플릭스 대항마로 내세운 애플TV의 전략은 주효했다. 전 세계의 반응이 뜨겁다.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 “‘오징어 게임’과는 다른 한국 드라마. 훨씬 예술적” “전 세계 이민자들에게 보내는 헌사” 등 호평이 이어진다. 한·일 간 불행한 과거사를 알게 된 외국 시청자도 많다.

일부 일본 네티즌들이 “허구 날조”라고 공격하자 오히려 “제대로 역사를 배우라” “한국에 사과하라”는 해외 네티즌들의 응수가 이어졌다. 드라마는 일본의 폭압성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절제·암시했는데 정서적 울림이 더 컸다. 한국 문화의 디테일도 기막히게 살렸다. 한국 아닌 미국 드라마가 우리 역사의 비극을 세계에 알리는 아이러니한 풍경. 왜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을까, 의문도 생긴다.

‘파친코’는 지난해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에 이어 재외동포들의 삶을 담은 디아스포라(이산ㆍ離散) 작품이다. 디아스포라 문화예술을 만난 한류의 외연 확대랄까. 이민자, 이방인, 소수자의 이야기라 ‘파친코’엔 전 세계적 보편성이 있다. 강인한 여성을 앞세워 요즘 강세인 여성 중심 서사이기도 하다. 민족적 정체성에 민감한 해외 동포들이었기에 가능한 작품이고, 최근 국내에서는 근현대사가 진영 다툼의 주 대상이 되면서 정작 문화 창작의 소재로는 환영받지 못했단 점도 있다.

BTS거나, ‘파친코’거나 아니면 최근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작가나 우리 콘텐트와 창작자들의 선전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지난 11일 일본 넷플릭스 드라마 톱10에는 한국 드라마가 7편이나 올랐다. 아무리 ‘국뽕’을 자제하려 해도 문화적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문화강국의 신세계가 머지않았단 얘기다.

이런 상황에 더는 안 봤으면 하는 풍경도 있다. 정치 행사에 K팝 스타들을 부르니, 마느니로 논란되는 일 말이다. 가령 BTS를 대통령 특사로 해외 일정에 대동하는 게 부적절하듯, 대통령 취임식 축하 공연을 당연시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BTS의 대통령 취임식 초청은 없던 일이 됐지만, 팬들의 괜한 반발만 샀다. 국가ㆍ정부 행사에 K팝 스타 참석을 필수ㆍ의무로 여기는 인식부터가 관변적 발상이다. 문화강국을 지향하는 정부라면 유난한 문화 살리기 말고, 문화(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문화를 정치의 들러리쯤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 그것부터 갖춰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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