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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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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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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 논설위원

   
 

한센인은 나환자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나병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일제강점기는 한센인에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일본은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수용소를 만들어 이들을 가뒀다. 한센인에게 소록도는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끔찍한 곳이었다. 강제 노동을 하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손발이 절단돼도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불임과 낙태 수술도 강요받았다. 일본의 집단 수용정책으로 소록도로 내쫓긴 한센인이 6000여명이다. 한센인의 자녀는 ‘미감아’로 불렸다. 아직 감염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 이 역시 낙인이었다. 아이는 소록도 보육원에서 지내다 한 달에 한 번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길 하나를 두고 서로 떨어져 얼굴만 볼 수 있었다.

올해 여든 셋인 강선봉씨는 미감아였다. 아버지는 1929년 소록도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36년 가까스로 탈출한 후 한센인 아내를 만나 강씨를 낳았지만 해방 전 세상을 떠났다. 여덟 살에 어머니를 따라 소록도에 들어간 강씨는 62년 소록도를 탈출해 4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았다. “부모는 자식의 삶을 위해 강제 수용과 격리 등 차별과 수치의 삶을 감췄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일본 정부에 대한 한국 한센인 가족 보상청구 소송 결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한센인 가족이 겪은 인권 침해를 인정해 피해 보상을 시작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2019년 일본이 한센 가족 보상법을 제정한 후 처음이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를 가족까지 확대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130여명이 보상 청구를 했고, 이 중 강씨를 포함한 10명이 보상을 받게 됐다. 1인당 최대 180만엔(약 1780만원)이 지급된다. 120여명에 대한 심사도 진행 중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건 한센인을 인권 문제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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