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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조약 70주년의 단상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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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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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석 /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연합국들간의 정치적 셈법에
한국, 평화조약 당사국서 배제
패전국 日엔 관대한 배상 허용
오늘날까지 과거사 해결 요원

   
 

70년 전 어제 1952년 4월28일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발효됐다. 1951년 9월8일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 51개 참석국 중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3국이 체결을 거부해 총 48개국이 평화조약에 서명했으나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한국은 당사국이 될 수 없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한·일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참여하지 못한 한국은 14년이 지난 1965년에야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별도 조약들을 체결했다. 그러나 첨예한 의견 대립 때문에 외교적 절충으로 불확실한 상태로 남겨진 많은 문제들은 오늘날까지도 해결이 요원하다.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당사국이었다면 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독립 관련 규정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포기를 명시했다면 일본이 오기 부리는 것을 상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강제동원된 재일교포의 전후 운명도 크게 바뀌었을 수 있다. 1952년 4월19일 일본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2조의 한국 독립 승인 규정을 근거로 법무부 민사국장의 법무국장 및 지방 법무국장에 대한 직무명령에 불과한 ‘통달 민사갑’ 제438호로 재일교포의 일본 국적을 일괄적으로 박탈해버렸다. 역시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에서 수십만 재일교포의 유리한 법적 지위 보장을 요구했다면 이들이 하루아침에 무국적자가 돼 일본 사회의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인권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9만3340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의 ‘지상낙원’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이주한 소위 ‘귀국사업’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배제된 것일까? 흔히들 연합국이 일본의 한국 병합을 승인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당사국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평화조약 참여는 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였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열린 파리평화회의에는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연합국 일원으로 초대됐다. 폴란드는 1795년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3국 분할로 나라가 사라져 123년이 지난 1918년에야 주권국가로 부활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 1918년 말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나라였다.

1941년 대일 선전포고를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한국 정부는 폴란드의 전례를 들어 미국에 샌프란시스코 평화회의 참석을 요구했다. 1950년 북한의 남침 후, 한국의 국제 위상 강화와 한·일관계 정상화를 원한 미국은 한국의 회의 참석을 지지했고, 일본도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조속한 평화조약 체결과 주권 회복을 희망하면서 재일교포에게 연합국 국민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한국의 대일 평화조약 서명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평화조약 참여가 무산된 것은 영국의 완고한 반대 때문이었다. 강승모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중국에 남아 있던 경제적 이권과 홍콩·말라야 식민지 유지를 위한 대중 유화책을 선호해 1950년 1월6일 이미 중국의 공산당 정부를 승인했고,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참여 찬성도 중국의 반발을 살까 우려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공산 계열 독립운동을 지지하던 소련의 반대로 미국과 영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끝내 승인하지 않았던 것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을 배제시키는 법적으로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됐다.

1945년 패전 당시 일본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천황제 존속’ 보장도 없이 무조건 항복을 수락해야 했다. 연합국의 대일 평화조약에도 원래는 일본의 전쟁책임 인정과 배상, 군국주의 배제, 보편적 인권 보장, 재무장 제한 규정 등이 검토됐으나 냉전 도래, 특히 6·25전쟁 발발로 일본은 유례를 찾기 힘든 관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전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 7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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