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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외교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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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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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 전 외교부 차관·주유엔 대사

젤렌스키 연설때 텅빈 韓국회
외교 참사라고 부를 만한 일
의전을 사소하다 간과하면
국격과 위신이 추락한다

   
 

2018년 1월 2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의 전화를 받았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오후에 찾아오겠다는 거였다. 전날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 메시지와 관련된 일이리라 짐작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가 다시 비서를 통해 면담 장소를 미국대표부로 바꿀 수 있겠냐고 물어 왔다. 새해 벽두부터 만나자는 걸 보니 심상치 않은 메시지임이 분명한데 그의 집무실을 찾아가 듣는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국무부 장차관이 주미 대사를 초치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동료인 한국대사를 이런 일로 부르는 것은 의전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헤일리 대사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는 것은 동맹국 대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잠시 궁리 끝에 "가타부타 답하지 말고 '대사에게 보고했더니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은 그쪽이 아니냐고 되묻더라'고만 전하라"고 비서에게 지시했다. 불편한 반응을 보이면 제3의 장소에서 만날 심산이었다. 다행히 헤일리 대사는 다시 생각을 바꿔 필자를 찾아왔다. 메시지는 예상했던 대로 무거웠고, 그의 집무실에 불려가서 들었더라면 편치 않았을 내용이었다.

2018년 7월 2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유엔을 방문했다. 방문 전 대표부 건의로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을 초청해 북핵 문제에 대한 오찬 간담회를 추진키로 하고 초청장 발송 등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며칠 후 헤일리 대사가 전화를 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마침 같은 날 유엔을 방문할 예정이니 그날 오찬을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 주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은 생각이라고 하고 각자 본부에 건의해 추진하자고 했다. 그런데 헤일리 대사가 그 오찬을 당연히 미국대표부에서 하는 것으로 예단하고 말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건 아니다 싶어 그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이미 장소와 일정이 확정됐으니 한미 양국 장관 공동 주최로 변경됐다는 사실만 참석국들에 알려주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워싱턴이 동의할지 모르겠다면서 다시 연락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폼페이오 장관이 흔쾌히 동의했다는 연락이 왔다. 행사 당일 우리 대표부에서 개최된 오찬은 내용도 좋았지만 멋진 청사를 가진 덕에 근사한 리셉션홀에서 흠 하나 없이 깔끔하게 치러져 참석 대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오찬이 끝난 후에는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 대표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모습이 TV로 전 세계에 방영되기도 했다. 우리 문제에 관한 외교를 우리가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대표부에서 열렸더라면 모두 불가능한 성과였다.

외교에서 의전이란 이런 것이다. 얼핏 보기에 사소한 문제도 자칫 잘못 다루면 나라의 체통을 잃는 결과가 될 수 있고, 국격과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면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기도 한다. 똑같은 결과라도 형식과 절차에 부족함이 있으면 빛이 바랠 수도 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의전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다.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연설 시 텅 빈 청중석의 모습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외교적 참사였다.

수교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한 중국대사의 직급이 주중 한국대사는 물론 주북한 중국대사보다도 낮은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당당하지 못한 우리 외교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당한 외교는 정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 외교에서 그 변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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