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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까지 이어진 심수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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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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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 논설위원

   
 

베를린에서 일어난 브란덴부르크 공국은 17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초라한 변방국가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공이 집권하며 전기가 마련됐다. 부국강병을 꿈꾼 그가 추진한 정책이 외국 인재 영입이었다. 마침 가톨릭 국가 프랑스가 신교도인 위그노를 탄압하자 위그노 수공업자들의 염색과 섬유 기술을 탐냈던 대공은 특혜를 주며 그들을 독일로 모셨다. 기술자의 도시가 된 베를린은 황무지 도시에서 섬유 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브란덴부르크 공국은 이후 프로이센 왕국으로 성장해 독일 통일 위업을 달성했다.

▶이 역사의 동양판이 도쿠가와 막부(幕府) 시기 일본 규슈의 사쓰마번(오늘날 가고시마현)이다. 사쓰마 번주(藩主)로 임진왜란에 참가한 시마즈 요시히로는 명과 조선의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명나라에선 의술을 직접 배웠고 조선에선 도공을 데려갔다.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포로로 잡은 심당길 등 도공 수백명을 사쓰마로 데려가 사무라이로 후하게 대접했다. 조선 옷을 입도록 배려하며 도자기를 만들게 했다.

▶당시만 해도 1000도 넘는 고열로 도자기를 굽는 기술은 중국과 조선만 보유했다. 그 첨단 기술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야키모노센소(燒物戰爭·도자기전쟁)라 부르는 이유다. 그 후엔 스스로 혁신을 거듭했다. 조선 도공의 기술력에 명나라의 세련된 디자인, 일본의 전통 회화를 접목했다. 그 중심에 심당길 가문이 있었다. 심당길의 12대손 심수관(1835~1906)은 도자기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굽는 투조(透彫)기법을 창안했다. 그 기술로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190㎝ 넘는 커다란 화병 한 쌍을 출품해 도자기 사랑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을 매료시켰다.

▶심수관은 이렇게 일본 도자기를 완성했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13대 자손부터 그의 이름을 계승해 15대에 이르고 있다. 심당길의 아버지 묘가 경기도 김포에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된 15대 심수관 심일휘씨가 엊그제 김포의 묘를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묘의 흙을 일본에 가져가 심당길 묘에도 뿌린다고 한다.

▶사쓰마는 도자기를 팔아 부유해졌다. 도쿄 앞바다에 나타난 미국 군함의 위용에 감명받아 이번에는 도자기가 아닌 군함 확보에 나섰다. 결국 메이지 유신의 주력이 돼 일본을 근대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그 사이 조선은 일본 식민지가 되고 이른바 ‘왜(倭)자기’가 역수입되며 도자기 종주국 위상마저 잃었다.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만든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15대까지 이어진 심수관 가문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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