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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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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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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1935년생인 나는 당연히 구세대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매너와 태도가 요즘 서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똑똑하고 발랄한 신세대와는 크게 다른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해온 바로는 서방 선진국인과 우리와는 생각과 행동에 있어 아직도 큰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경험담을 그간 여기 저기에 지면에 써왔는데 아래 글도 그 한가지다. 해외에 나와 살면 물론이지만, 지금은 안에서도 서방인을 흔하게 만나고 지내야 하는 글로벌시대이니 도움이 될 줄 믿는다.

한국에서 미국인들과의 교류가 많았고 미국에도 살아 본 나였지만 고백하건대 같은 영미권인 호주에 나와 바보짓을 여러 번 했다. 두 가지 사례를 아래에 적어 본다.

한국에도 이게 부분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지만, 호주와 다른 영미국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운전 교습은 교습소가 아니라, 옆자리에 교관을 태우고 처음부터 대로에 나가 한다. 교관은 자기 개인 사업 아니면 고용원으로서 고객과 예약한 시간과 장소에 차를 가지고 찾아온다. 교습이 끝나면 가르친 시간에 따라 교습료를 받고 헤어진다.

처음 내가 만난 교관은 몇 번 해 보니 예의가 없고 성실하지 않아 더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므로 헤어질 때는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뒤로 연락하겠다고만 말했다. 그건 우리 식이며 실수였다. 다음 연락도 없이 자기에게 편리한 시간에 찾아온 것이었다. 덩치가 큰 제3세계 출신 백인인 이 교관은 동양인인 나를 좀 만만하게 본 듯하다.

체면 차리다 저녁 굶은 이야기

호주에 와 처음 몇 달간 하숙할 때 경험한 일도 그랬다. 백인 주인 할머니가 밤에 파티를 할 텐데 참석하겠느냐고 물었다. ‘노’라고 사양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예스’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날 밤 옆방에서는 파티가 한창인데 나가 사 먹을 데도 없어 배곯으며 참담하게 지내야 했었다.

영미사회에서는 식사 초대나 다른 오퍼를 받았을 때는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받아드린다면 바로 “Yes, I loved to. Thank you.”와 같은 말로 적극성을 보이고, 아니면 “No, thank you. I am sorry.”라고 말해야 한다. 한번 ‘노’하면 물론이고, 애매하거나 주저하는 태도면 그들은 더 권하지 않는다. 잘하면 “슈어(Sure)?” 하며 한번 확인하는 수가 있지만, 꼭 그런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음식을 권해 왔을 때 일단은 “아직 배고프지 않은데요.” 또는 “글쎄요.”와 같은 말로 사양하는 척하다가 상대가 두세 번 더 권해 오면 비로소 “예, 좋지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수락하는 게 수순이다. 영미사회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한다.

이런 문화 때문일 것이다. 백인들은 대부분 남의 초청이나 호의에는 처음부터 ‘Yes’와 ‘No’가 분명하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아니거나 싫으면 분명하게 ‘노’라고 대답한다. 영미사회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눈치를 배워 반반이다.

영어에는 ‘Yes or No’와 비슷한 ‘Yes and No’가 있다. 전자는 ‘예스냐 노냐’ 양자택일이고, 후자는 가와 부 반반을 의미한다. 이른바 ‘50대 50’이다.

한국인에게 후자의 대답은 비교적 쉽다. 영미사회에 사는 교포는 흔치는 않지만, 현지인으로부터 대화 중 “당신은 미국 생활을 좋아하십니까(Do you like living in America? 또는 Canada, Australia, New Zealand)?”라는 질문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보통 나의 대답은 “Yes and no”이다. “전부는 아니고 어떤 면은 좋아하고 어떤 면은 아니다.”이다.

한국인이 곧잘 실수를 하는 건 ‘Yes and no’가 아니고 전자인 ‘Yes or No’이다. ‘노’라고 확실하게 대답해야 할 때 마음이 약하여 그렇게 못하고 애매한 ‘예스’를 하거나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나중 곤란을 겪는 일이 흔하다. ‘No’가 필요할 때는 분명히 하되 점잖게 완곡한 말로 이유를 잘 설명을 해야 한다.

노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일본인들

사업차 한국을 다녀온 서양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실감 난다. 처음 ‘예스’라는 대답을 듣고 돌아온 후 그 일을 추진 하려고 메일을 보내면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노’라고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오래됐지만, 일본 정치인이 낸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Japan That Can Say No》이라는 책이 식자 간에 널리 인용된 적이 있다. 일본이 패전 후 미국과의 관계에서 정부와 개인 모두 당당하게 말해야 할 걸 못하는 저자세를 나무라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편 책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 한국인의 백인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일본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에서 한 때 오래는 아니지만 미 국무부 소속 해외 원조기관인 유솜(USOM)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직책이 고문관인 상사를 따라 자주 지방 출장을 나가 도지사나 도의 국과장 앞에서 통역을 맡았었다. 이들 관리들은 미국인 앞에서 여간해서 솔직하게 아니라든가 어렵다는 대답을 안 한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같은 한국 사람이니 혼자만 알고 있으라며 속사정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 후 나는 서울의 한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겸직으로 해외 매체 특파원을 할 때 본사에서 취재차 오는 외국인 편집국장이나 기자를 동행하여 중앙 부처의 국과장을 자주 만나곤 했었다. 그들도 그 점은 똑같았다.

뿐만 아니다. 대부분 한국인이 그러듯 외국인의 말을 못 알아들었어도 예우나 체면상 잘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잠깐은 잘 넘어갈지 모르지만, 나중엔 일이 꼬일 수 있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상대는 이쪽이 못 알아들은 걸 알아차리게 되니 차라리 모르면 물어 확인해 나가는 편이 나은 것이었다.

영미사회에서도 세일즈맨은 끈덕지다. 요즘은 살기가 어려워진데다가 이민자가 늘어나서 더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걸어오는 세일스 전화가 부쩍 늘어났다. 그 가운데는 인도 같은 먼 나라에서 아웃소싱(Outsourcing)을 맡아 하는 회사 직원들로부터 오는 것도 많다. 특히 ‘노’를 확실하게 못 하는 아시안들이 표적이다. 한 때 한국에서와 다른 나라에서도 선교를 하러 길거리에 나와 다니는 미국 모르몬교도 젊은이들을 흔하게 만나야 했었다. 이들은 우유부단한 동양인에게 잘 접근해 오는 데 Yes와 No를 여유 있게, 그러나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데 아니면 나중에 질질 끌려다니는 고역을 면할 수없었다. 지금은 다른 여러 분야애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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