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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의 리더십을 곱씹어본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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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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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면도날` 장관 앞세워 관료장악
원로 경제인에 행정개혁 맡겨
말하기보다는 경청에 취미
비공개모임서 쓴소리 자청
"나는 사회과학자에 가깝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집권한 1982년은 신냉전이 전개되면서 강대국 대결이 격화하고 세계 경제가 오일쇼크 여파로 흔들리던 때였다. 경제성장은 주춤해졌는데 재정은 방만하게 운영되고 투쟁에만 익숙해진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로 바람 잘 날이 없던 시절이었다. 영국이 1970년대 중반 복지 과잉으로 재정이 흔들리는 '영국병'에 걸렸다고 했던 것에 빗대어, 일찍이 그의 정책 브레인들은 1975년 '문예춘추'라는 잡지에 '일본의 자살'이라는 글을 실어 선진국병의 위험성을 제기하고 대대적인 국가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총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나카소네는 그들에게 격의 없이 정책 자문을 했다.

나카소네는 자신이 총리가 된다면 추진할 중점 과제를 몇 권이나 되는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지속 성장하는 국제 국가 일본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참모들과 함께 제시한 정권 초기 구호는 '증세 없는 행정 개혁'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공공부문을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 발전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야당 편에 서서 반대 목소리만 키우는 노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공공부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 내놓은 것이 국영기업이던 국철과 전기통신공사의 민영화였다. 예산에 의존하던 관행을 넘어서서 결산을 통한 이윤 창출 조직으로 거듭나게 전환시킨 것이다.

그는 인사가 만사라는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들을 휘어잡기 위해 그는 고토다 마사하루라는 경찰 출신 정치인을 관방장관으로 발탁했다. 정관계에서 그는 '가미소리(면도날)'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카리스마 있고 일 처리가 깨끗한 정치인이었다. 사석에서는 나카소네 총리도 동대 법대 선배인 그를 '센파이(선배)'로 호칭하며 경외심을 표했다. 세상의 궂은일들이 그의 손을 거쳐서 잡음 없이 처리됐다. 총리 직전에 행정개혁담당상을 맡았던 나카소네는 청렴한 경제인이었던 도코 도시오를 삼고초려해 행정 개혁의 원안을 준비하는 린초(임시행정조사회)를 맡겼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이었으면서도 작은 집에 살던 도코의 말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었다. 국민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내각책임제라서 지식인들을 각료로 중용할 수 없었지만, 나카소네는 핵심 측근 및 브레인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 비공개 모임이었다. 나카소네는 자신의 의견을 먼저 제시하기보다는 조용히 경청하고 맨 마지막에 '그래서 어떡하면 되겠느냐'고 현실적 자문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후일 그가 세계평화연구소를 만들어 일본 제일의 싱크탱크를 이끈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저녁 자리에는 싫은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재계나 정계 인사들을 만나 귀를 기울이고 스스럼없이 아이디어를 구했다. 저녁을 두세 차례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편안한 자리에서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었다. 오래전 필자가 그에게 자신이 어떤 정치인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사회과학자에 가깝다"는 답을 준 적이 있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구하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총리직 5년을 포함해 53년간 정치 현장에 있었으며,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정치란 모름지기 국가 개혁을 위한 설계도와 추진력이 핵심임을 자각했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발탁해 써야 세상이 움직인다는 점을 알았으며, 지식인과 브레인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쓴소리도 듣는 자세를 견지했다. 국민 마음을 사야 정책 추진력이 생긴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의 별명은 가자미도리(風見鳥·바람의 방향을 읽는 새=풍향계)였다. 그의 시대에 일본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국가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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