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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모욕과 미국에 대한 모욕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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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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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 기자

   
▲ 1957년 3월 가나를 방문한 리처드 닉슨(오른쪽 두 번째) 부통령과 가나 재무장관 그베데마(맨 오른쪽). 백악관 자료

1957년 10월, 서아프리카 최초 독립국 가나의 재무장관 콤라 아그벨리 그베데마(Komla Agbeli Gbedemah, 1913~1998)가 미국 정부와 가나 볼타강 댐 건설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방미했다. 그는 10일 저녁 비서와 함께 정장 차림으로 델라웨어주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오렌지주스 두 잔을 주문했다. 웨이터는 “유색인종은 이 곳에서 식사할 수 없다”며 주스를 들고 나가라고 요구했다. 그베데마는 신분증을 보여주며 “가나를 순방한 미국 부통령(당시 리처드 닉슨)이 내 집에서 식사한 적도 있는데, 나는 미국 식당도 이용하지 못하고 길바닥에 쫓겨나야 하는 거냐”고 따졌다. 물론 소용없었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아시아, 아프리카를 무대로 수교국 확보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때였다. 다음 날 미 국무부가 공식 사과했고, 가나 주재 미국 대사도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사건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별도로 사과했다. “미국이 ‘건국 문서’에 충실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인종, 피부색, 종교에 따른 차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아이젠하워는 그베데마를 백악관 조찬에 초청, 닉슨과 함께 볼타강 댐 프로젝트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흑인과 아시아 외교관과 정치인들의 인종차별 수모는 끊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차드의 신임 주미 대사(Adam Malick Sow)는 1961년 6월 26일 메릴랜드의 한 식당에서 주문조차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이런 일이 빚어질 때마다 중국과 소련 등 공산권 언론은 대대적인 보도로 외교전에 활용했고, 미국의 한 관료는 인종차별을 ‘외교의 아킬레스건’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이 1964년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제정한 이면에는 이 같은 사정도 있었다.

한국 대통령이 최근 미국에서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두고 비속어까지 섞어 품위 없는 말을 뱉었다가 주워 담느라 곤욕을 치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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