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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왜 조총련을 지지했을까… 재일동포 가족에 스민 4ㆍ3 비극20일 개봉 다큐 '수프와 이데올로기'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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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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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위 앞에 이데올로기는 무의미한 걸까.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는 일본인 사위를 위해 닭백숙을 정성스레 준비한다. [엣나인필름 제공]

“일본인은 안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 하던 말씀이다. 연로하신 어머니도 다르지 않다. 사윗감의 유일한 조건은 한국인 또는 조선인이다. 하지만 양영희 감독은 예비 신랑으로 일본인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아라이 가오루를 어머니께 인사시키려 한다. 어머니는 예상과 달리 설레하며 아라이를 만나기 전날부터 닭백숙을 정성스레 끓인다. 예비 신랑은 닭백숙 맛에 푹 빠진다.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고, 어머니는 평생 입에 담지 않았던 과거를 조금씩 이야기한다. 양 감독이 오랫동안 궁금해했던 가족의 비밀이 봉인 해제된다.

양 감독의 가족은 평범하지 않다. 아버지는 조총련 오사카 지부에서 고위 간부로 일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양 감독의 오빠 셋은 북송선을 탔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은 북에 있는 가족 뒷바라지에 열중하게 됐다. 양 감독은 늘 궁금했다. 원망이 크기도 했다. 왜 부모님은 아들 셋 모두를 북으로 보냈을까. 그는 평양을 오가며 오빠들과 그들 가족들을 만났고, 이를 영상에 담았다.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틈만 나면 “왜, 그러셨어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너털웃음으로 질문을 무마하곤 했다. 이 모습들은 다큐멘터리가 됐다.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11)은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파란 많은 삶을 그리며 한국이 외면해온 한민족의 역사 한 편을 들췄다. 양 감독은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3)에서도 자신의 가족사를 투영하며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 양영희(오른쪽) 감독과 남편 아라이 가오루씨. 한국 전통 혼례복을 입고 결혼 사진을 촬영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 감독의 ‘평양’ 시리즈를 잇는 신작이다. 양 감독이 전작들에서 던졌던 질문에 답 역할을 하는 다큐멘터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데올로기에 도취돼 조총련에서 전력을 다해 일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양 감독의 부모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사람은 오사카에서 만나 결혼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오사카에 오기 전 어머니의 사연에 주목한다. 어머니는 4ㆍ3사건을 겪었다. 참담한 죽음들을 목도한 후 살기 위해 어린 동생과 일본으로 건너왔다. 조총련과 민단이 재일동포 사회 헤게모니 다툼을 하던 시절, 제주의 참상을 겪은 양 감독의 어머니는 민단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는 의도치 않게 빚어진 강렬한 장면이 많다. 양 감독의 어머니는 집에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을 걸어놓고 산다. 사위가 될 아라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그가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북한 옛 최고 권력자들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대목은 웃음과 더불어 상념을 유발한다. 영화의 정점은 어머니의 고향 방문이다. 70년 만에 찾은 제주에서 어머니는 말이 없다. 과거의 고통에 짓눌려서 그런지, 혹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인지, 귀향이 믿기지 않아서인지 알 수 없다. 그는 70년 전 밀항하기 위해 동생을 업고 밤새 걸었던 길을 딸과 사위와 함께 걷는다. 시체들이 즐비했던 곳이다. 양 감독은 죽음들을 되짚으며 오열한다. 자신의 가족에 스민 현대사의 비극을 깨닫고, 비로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한다.

   
▲ 양영희 감독은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2018년 제주를 방문한다. 어머니에게는 70년 만의 귀향이었다. [엣나인필름 제공]

제목 속 수프는 중의적이다. 장모가 사위에게 끓여주는 닭백숙을 의미하면서도 이데올로기보다 앞서는 인간의 온기를 뜻하기도 한다. 역사가 전진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건 분명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개인사를 통해 격동의 역사 이면을 포착하며 다큐멘터리로서의 미덕을 구현해낸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 경쟁 부문 흰기러기상(대상)을 받았다.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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