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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서 버스에 경로 혜택 주는 이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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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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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 도쿄 특파원

장거리 전철 대신 단거리 버스비 지원
지역 활성화 공짜 논란 해소 기대할 만

   
 

얼마 전 도쿄에서 시내버스를 탔다가 약속 시간에 30분 넘게 늦었다. 길이 막히지도 않았건만 전철 25분 거리를 1시간 걸려 도착했다. 평소 전철을 주로 타 버스 사정에 어두웠다. 주변에 얘기했더니 이런 충고가 돌아왔다. “여기서 시내버스는 어르신이 동네에서 움직일 때 타는 거예요.”

도쿄는 철도 도시다. 지하철 13개 노선에 한국 코레일과 유사한 JR, 사철, 모노레일, 노면전차까지 수십 개의 노선이 거미줄처럼 도시 곳곳을 연결한다. 시내버스는 철저히 보조 수단이다. 한국 마을버스처럼 전철역을 중심으로 짧게 도는 게 대다수다.

그렇다 보니 시내버스는 역까지 걷기 힘든 어르신이 주로 탄다. 운행도 철저히 고령자 눈높이에 맞춰 이뤄진다. 급정거, 급출발은 상상하기 어렵다. 승객이 앉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고, 정차하기 전까지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버스비를 내려고 지갑에서 동전 하나하나를 꺼내 세는 데 수 분이 걸려도 누구 하나 보채지 않는다. 느려도 너무 느린 버스에 속이 터지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버스는 애초 시간이 급한 사람을 위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도쿄에서 노인들이 버스를 애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전철 대신 버스에 경로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는 70세 이상 거주자에게 ‘실버 패스’를 발급해 준다. 도쿄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일부 전철도 탈 수 있지만, 노선이 한정돼 버스 무제한 패스로 통한다. 무료는 아니다. 연 소득 135만 엔(1304만 원) 이하는 1년에 1000엔(9660원), 초과는 연 2만 엔(19만3200원)을 내야 한다.

왜 전철이 아닌 버스가 대상일까. 짧게 다니는 운행 패턴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은퇴한 어르신은 활발히 사회 활동을 하는 젊은이에 비해 대개 생활 반경이 넓지 않다. 슈퍼에서 장을 보고 주민센터에서 운동이나 여가 활동을 하고 지역 사회에서 봉사 활동 등을 하는 게 주 일상이다. 젊은이라면 가볍게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면 되지만 고령자에겐 쉽지 않다.

그런 어르신에게 매일 탈 수 있는 거리를 위한 버스는 어쩌다 타는 장거리 이동수단 전철보다 훨씬 유용하다. 전철로 일하러 다녀야 하는 어르신도 적지 않겠지만, 도쿄에서 상당수 직장은 교통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실버 패스는 수혜자가 소득에 따라 부담하므로 공짜 논란도 크지 않다.

“지하철 타고 온양(온천) 가서 목욕하고 춘천 가서 닭갈비에 소주 한잔하는 행복을 왜 뺏어가려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정된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효과가 가장 큰 지원을 택해야 한다. 수십 km 온천 여행 교통비를 무료로 하는 것과 수백 m 거리를 가는 버스비를 지원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중요할까. 집 근처 100m를 걷는 게 버거운 어르신들에게는 수십 km 공짜 전철보다 동네를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버스비 보조가 절실하다.

근거리 버스비 지원은 지역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경로당 아니면 먼 거리 명소로 양극화된 어르신 동선을 동네 슈퍼, 주민센터로 돌리는 효과가 있다. 전철이 없거나 드문 지방 차별 논쟁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어르신 무임승차 논란이 거센 한국에서 도쿄 실버 패스를 참고하면 어떨까. 소득에 따라 부담을 지우고 어르신들에게 유용한 교통수단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어르신 사회 활동 지원 및 복지 향상을 위해 재정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꼭 필요한 지원을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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