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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할아버지 이야기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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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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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 섀도우캐비닛 대표

   
▲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최대 외교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피해자 대리인단, 지원단체 측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의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다. 그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일제시대 강제동원된 사람 이야기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니 처음엔 낯설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해주지 않으셨을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어린 손주들은 좋은 것만 보고 자라기를 바라 그러셨을까. 아니면 나라 잃은 설움에 그저 당할 수밖엔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러셨을까.

외할아버지는 징용당했던 분들과 함께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올해 할아버지 연세가 95세, 소송을 처음 진행할 당시 할아버지 연세가 60대였다고 하니 20,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외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소송에 참여하셨을까? 강제징용을 당했을 때 어떠셨을까? 10대 어린 나이에 강제징용을 당해,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로 그 모진 시간을 버티지 않으셨을까? 큰 부상에도 다행히 살아 돌아와 한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탁월한 성실함으로 농사를 지으며 자녀들을 키우다, 60대가 되어 강제동원되었던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물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내가 힘이 없어 끌려갈 수밖엔 없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일본의 폭압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고,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떠셨을까? 힘이 없어 '강제적'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던 존재에서, 자신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떠셨을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이들에 대한 피해보상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6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법을 듣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외할아버지는 "나는 일본 기업에 책임을 물었는데, 왜 우리 기업이 배상한다고 그러노?"라고 묻지 않으실까?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사과는 했노?"라고 물으시고, 안 했다고 말씀드리면 "근데 와 우리 기업은 배상을 한다 하노? 일본 정부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더나?"라고 묻지 않으실까? 이 안을 일본 정부가 아닌 우리 정부가 제시했다는 것을 들으시면 뭐라고 하실까? "내가 이러려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동료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소송을 진행했겠노?"라며 비통해하지 않으실까? 그리고 묻지 않으실까? "와 우리 정부가 우리에게 이라노?"라고 말이다.

외할아버지의 미래 세대로서 윤석열 정부에 꼭 전하고 싶다. 미래 세대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번 해법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나아가는 방안이라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가족들,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냐고 말이다. 또 전하고 싶다. 외할아버지가 과거의 일본과 오늘의 한국 정부에 당한 일을 미래의 내가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고 말이다. 꼭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우리 외할아버지로 하여금 '닥치고 끌려가던 존재에서 마땅히 물어야 할 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존재로의 복원'임을, 그것이 우리가 진정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임을 윤석열 정부와 일본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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