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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억의 전승인가 뜻의 계승인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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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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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4·3은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대통령의 말로 기억되는 2018년의 70주년을 기점으로, 아직 제주는 춥다던 71주년을 지나, 2021년 2월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74주년을 맞은 작년부터 ‘돔박꼿’이 활짝 핀 봄이 왔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정권이 교체되고, 올해 들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4·3 모독 발언에 이어 제주 도내 곳곳에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추념식 당일에는 서북청년단의 집회까지 예고되면서, 과연 벚꽃마저 때 이르게 피었다 져버린 자리에서 맞는 올해의 4·3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염려스럽게 지켜본 사람들이 많았다.

겨우 맞이한 봄날의 위태로움을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종식된 이후 처음 맞는 4·3 기념주간은 아주 풍성하다. 대통령이 불참했다고는 하지만 여야의 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추념식이 이루어졌다. 행사마다 4·3은 끝나지 않았으며,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갈 것이고, 이를 위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화해와 상생을 통해 과거사를 모범적으로 해결한 사례로 세계인과 공유해 나갈 것이라는 다짐이 이어지는 중이다.

오랜 세월 억울함을 견디고 살아와야 했던 긴 시간을 생각하면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보상이 이루어지고 국가기념일이 된 지금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눈물 어린 노력이 있었을 것인지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나서서 4·3을 그저 지난 과거의 일로 두지 않겠다면서, 전국을 넘어 세계화를 통해 모두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게 하겠노라 다짐하는 오늘을 봄날이 아니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봄날을 이야기하는 듯해도 여전히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진정한 봄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렵게 봄을 맞았으니 이제는 과거를 딛고 앞으로 가자는 사람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여전히 제주의 역사와 4·3을 더듬어 배우는 처지에서 조심스럽지만, 눈에 보이는 중요한 차이 가운데 하나는 4·3을 우리가 모두 계승해야 할 유산이라고 할 때, 과연 그 계승의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어떤 기억을 전승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4·3의 뜻을 계승한다는 것인지는 생각보다 매우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의 문제에서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기억하는 것 자체도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4·3을 단지 무고한 희생이 아니라 일제로부터 해방된 공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민중의 열망으로 보자고 하면서도, 막상 추념의 내용에서는 뒤틀린 가족사의 슬픔이나 억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세대와 무관하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바를 추구하다 보면, 실제로 다룰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면 4·3의 정신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화해와 상생, 혹은 평화와 인권 역시 추상적인 이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4·3 전야제에서 상연된 창작 뮤지컬 <4월>을 본 뒤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 당시 산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 우리는 그저 해방된 공간에서 독립되고 민주적인 국가, 새 나라를 만들기를 바랐을 뿐이라는 대목이었다. 당연히 민주적이고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꿈꿨다는 것이 폭도로 몰려서 죽임을 당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꿈을 두고 “우리가 바란 것은 별게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군사독재 시기를 지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 현실만 보아도 평화와 민주, 평등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의 현실 속에 있고, 4·3 당시 바랐던 통일된 자주국가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저 기억과 기록을 전승하자는 것과 그 뜻을 새겨서 계승하자는 것의 사이에는 물론 차이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기억하느냐 속에 뜻이 없을 수 없고, 어떤 뜻을 가지는가에 당시 일어났던 일을 간절하게 밝히고 곡진하게 건사하는 일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살아남는 것만도 간절했다면, 봄이 온 지금은 기억의 내용이든 현실 속에서 이뤄내야 할 평화와 인권의 가치든 그 구체적인 내용을 탐구하는 고뇌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4·3은 이미 일어난 일뿐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가 계승하는 노력 속에서도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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