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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의미의 식목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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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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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 컬처엔지니어

단언컨대, 숲의 미래와 나라 미래가 다르지 않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식에게 남겨주고 싶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주저 없이 치켜든 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다. 장 지오노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아주 얇지만 더없이 풍성한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7년 전인 1996년이었다. 길지 않아 단숨에 읽어내려 갔던 책이었건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아 30년 가까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양 치던 사람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삼사년 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숨을 거둘 때까지 40년 가까이 프로방스의 황무지에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심은 이야기다. 1935년 어느 날 언론은 새로운 숲이 발견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정부시찰단 역시 감탄하며 ‘천연의 숲’을 둘러보았지만 정작 그것이 부피에라는 한 사람이 버려진 황무지에 도토리알 한 알 한 알을 정성들여 심고 가꾼 숲이었음을 알아채진 못했다. 부피에의 숲은 두 차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오늘날 프로방스의 풍성한 숲을 이뤘다.

프랑스에 부피에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임종국이 있었다. 자기 이름 그대로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보국’한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속살 드러낸 민둥산에서 조림은커녕 나무 뿌리까지 캐내던 배고프고 못살던 50년대 중반에 570여㏊의 광대한 산야에 걸쳐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250여만 그루 나무를 심고 그것을 물지게를 져가며 키워낸 당대의 ‘미친’ 이단아였다. 그 미친 짓의 결과가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에 빼곡히 들어찬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울창한 숲이다. 이 숲은 지난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고 현재도 세계산림조림사에 남을 명품 숲이 되었다.

엊그제 화마에 휩싸였던 인왕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할 만큼 우리는 본래 숲의 나라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의 산야는 헐벗게 되었다. 러일전쟁 직후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삼림을 벌목해 군사용으로 전용하고자 일제는 1905년 11월에 육군목재창(陸軍木材廠)을 만들고 이듬해 1906년 10월 쓰러져가던 대한제국정부를 강박해 ‘압록강 두만강 삼림경영협동약관’을 관철시킨다. 그리고 1907년 4월 1일 자로 통감부 영림창(統監府營林廠)을 세우고 사실상 육군목재창의 지휘관들이 통감부 영림창의 운영을 떠맡게 된다. 이들에 의해 도륙하다시피 벌채된 목재는 병영지 건축자재와 전신주의 자재로 쓰였다.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조선총독부 영림창으로 확장된 이후에 무분별한 벌채에 의한 삼림 파괴는 더욱 가중되어 압록강 두만강 유역만이 아니라 내륙의 오대산 등지에서도 광범위한 벌채가 감행됐다. 급기야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구 중앙청) 건립 때 지반 강화를 위해 조선총독부 영림창에서 공급한 9400여 그루에 달하는 낙엽송이 땅속에 박혔다. 지난 1995년 개시된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와 그 후의 경복궁 복원공사는 이 중 상당수를 그대로 땅에 묻어 놓은 채 진행되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그나마 우리 산야를 지키고 있던 소나무 역시 일제강점기에 남아나지 못했다. 일제 말에 기름 공급이 원활치 못해지자, 소나무 송진에서 송탄유를 추출해 이것을 항공유로 쓰겠다고 일제가 광분했기 때문이다. 애국가 2절에 묘사된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칼로 난자해 벗겨내고 다시 상처를 내서 소나무의 진액인 송진을 채취한 것이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한반도 전역에서 1만여t의 송진을 수탈했다. 1943년 한 해 동안 채취한 송진의 양은 자그마치 4천여t에 달했는데 이는 50년생 소나무 90여만 그루에서 꼬박 일년을 채취해야 가능한 양이었다. 송진을 채취하고 난 소나무는 베어내기 일쑤였지만 지금도 전국의 산야에 송진 채취를 위해 흉물스럽게 껍질을 도륙당한 소나무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이 땅의 사람들이 겪은 일이었다면, 송진 채취는 이 땅의 나무들이 온 몸으로 겪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식민지배와 분단 그리고 전쟁의 상흔으로 황폐되고 버려진 황무지에서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한 세계 유일의 나라다. 한국전쟁 이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다시피 해 더 황폐해진 대한민국의 산야에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녹색 꿈을 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숲의 토대를 만든 이는 다름아닌 박정희였다. 그가 1960~1970년대에 걸쳐 치산치수(治山治水)에 들인 공은 그의 모든 정치적 허물을 덮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가 일궈낸 대한민국이란 숲이 곳곳에서 타들어가고 있다. 건조한 봄철의 산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숲 도처에서 가치가 허물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지는 모습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 아닌 때가 없었다지만 작금의 위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막론하고 가히 총체적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숲, 대체 어찌할 것인가!

숲은 나무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나무는 ‘나[余] 무[無]’ 곧 ‘나 없음’이다.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나 없음’의 나무같은 존재들이 고요하고 풍성한 숲을 이룬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의 숲은 ‘나무(나 없음)’가 아니라 ‘나[余]유[有]’(나 있음)라는 이들이 나서 서로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새도 깃들지 않는 버려진 숲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나무(나 없음)’가 아니라 ‘나유(나 있음)’만을 목청 돋우며 고집하는 한 우리 모두의 숲은 황폐화되고 만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온 국민은 너나없이 이 황폐화해가는 숲에 새 정신, 새 기풍이 깃들길 고대하고 있다. 그러려면 구부정하게 제멋대로 자라 지력만 갉아먹는 아까시나무 같은 것들은 속아내고 곧게 높이 자라 쓸모 있는 편백나무, 삼나무 같은 것들과 다양한 과실수 같은 존재들을 더 많이 심고 키워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바탕 위에서 하나 된 숲을 이뤄야 우리가 산다. 숲의 미래와 나라의 미래가 결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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