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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외교 복원, 새 한일관계 첫단추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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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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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 콘텐츠매니저

   
 

급히 노트북에 사용할 이어폰이 필요해서 찾은 편의점. 구석 한켠에 초라하게 걸린 낯익은 브랜드의 이어폰이 눈에 들어왔다. ‘소니(SONY)’. 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기성세대에게 소니는 ‘워크맨’으로 기억된다. 작고 깜찍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워크맨을 흉내 낸 제품을 내놓았지만, 디자인이나 품질 모두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랬던 '소니'가 편의점 가판대에 무심하게 걸려있는 모습이라니. 격세지감이다.

1980~1990년대는 그랬다. 삼일절, 광복절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되새기며 반일·극일을 외쳤지만 다른 한편 ‘메이드 인 재팬’은 시기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일본 여행을 간 주부들에게 ‘코끼리표’ 보온밥통이 그랬고 심지어 학생들의 필통 속에 든 일제 샤프펜슬이 그랬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당시 세계 시장에 명함조차 못 내밀던 삼성·LG의 TV는 이제 최고의 기술력을 앞세워 프리미엄 브랜드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고 ‘고장 나면 버리고 간다’던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완성차 톱3에 진입했다.

한일 기업의 드라마틱한 입지 변화는 반도체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 반도체는 전 세계 시장의 절대강자였다. 1988년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의 절반인 50.3%가 일본이었다. NEC,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마쓰시타 등 6개 기업이 세계 반도체 톱 10에 자리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후 일본 반도체 산업은 급격한 몰락을 경험한다. NEC, 히타치, 미쓰비시 등이 합작 설립한 엘피다는 2012년 파산했고 도시바와 마쓰시타(현 파나소닉)는 시장에서 손을 뗐다. 그 자리를 대신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계는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일본을 극복하고 글로벌 톱티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로 한일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을 꼽는다. "일본 기업들은 따라잡아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만만치 않은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 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으로 2011년 이후 단절된 한일 정상간 셔틀 외교가 복원됐다. 회담 직후 극과 극으로 갈리는 정치권의 평가에서 드러나듯 양국 관계의 복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 미묘하다. 특히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는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인 생각'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했듯 언제까지 과거사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기엔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글로벌 경제안보 동맹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싫든 좋든 한일 양국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다. 미·중이 누구 편인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전략적 모호성’도 유효하지 않다.

역사가 증명하듯 한일 관계는 속없이 손을 맞잡을 수도, 그렇다고 마냥 등 돌리고 외면할 수도 없는 관계다.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 그리고 협력과 견제가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셔틀외교의 복원은 그 자체로 완결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 회복을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 섣부른 비판, 지나친 낙관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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