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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한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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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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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 역사학자

   
 

대학 캠퍼스에 하루 종일 최루탄 냄새가 자욱했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필자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짓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역사에 관한 지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지, 군사독재가 언젠가는 끝날 거야라는 소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역사의 진보가 기술문명의 진보를 의미한다면 맞다. 기술문명은 언제나 발전하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진보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다. 반역제는 삼족을 멸한다는 식의 가혹한 연좌제, 고문, 노예제도, 그 외에도 어이없고 잔혹하고, 몰상식한 수많은 제도가 이젠 사라졌다. 과거에는 합법이고 상식이고 관행이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은 불법이고 어쩌다 공개되면 대중의 무서운 지탄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것이 진보라면 진보지만, 나는 변화에 적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어른 앞에서 안경을 쓰면 실례였다. 그땐 안경이 귀하고 고급 수입품이어서 보통 사람은 만질 수도 없었기에 그랬다. 지금처럼 안경 쓴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안경을 벗으라고 요구했다간 사회가 멈춰버릴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떨까? 전혀 달라진 바가 없다. 21세기 전쟁에서도 몰상식하고 잔혹한 범죄가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 그래도 옛날보다 인도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과 비밀 유지의 어려움 때문이다. 눈을 가리면 야수성은 바로 폭발한다.

전쟁을 지켜보는 사람들, 지식인의 편협함, 당파성, 무지도 달라진 바가 없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인간의 양심과 분별력은 태초의 크기를 못 벗어난다.

내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 같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1차 종결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의 길은 아니다. 우리는 곧 새로운 야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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