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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간 이중섭
이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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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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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 재일교포 시인]

   
 

화가 이중섭이 일본 아내와 함경도 원산에서 남으로 내려와 부산에 있다가 한국 전쟁이 나자 제주로까지 갔고 피난 통에 어려우니 두 아들과 아내를 일본 친정으로 보낸 후 그리워하다 급기야는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숨졌다는 건 알았으나 그때가 겨우 마흔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국민 화가로 불리우는 그를 떠올리면 그저 측은하고 가엾은 마음이 드는 게 사랑하는 가족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자신도 영양실조에다 종이나 캔버스를 구하지도 못한 가난 이미지에 애석하게도 너무나 일찍 생을 다한 것도 한 몫을 한다.

몇 살에 숨을 다했는지는 생각을 못 하고 집 가까이 서대문 적십자 병원을 지날 때면 저기서 그 화가가 가족도 못 보고 외로이 갔다지 하며 그를 떠올렸었다.

<시인에게는 '요절의 특권'이라는 것이 있어 젊음이나 순결함을 그대로 동결한 것 같은 그 맑음이 후세의 독자까지도 매혹시키지 않을 수 없고 언제나 수선화와 같은 향을 풍긴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말이다.

내가 교토의 동지사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사는 서촌 동네의 잠시 머물었던 그의 하숙집만 알았을 것이다.

옷가지와 책 몇 개만 들고 간 동지사 캠퍼스 한 가운데 자그마한 윤동주 시비가 서 있어 늘 지나고 바닥을 닦으며 급기야 그를 연구하다 알게 된, 그가 간 후 그를 흠모하여 일본에 알린 여성 시인이다.

같은 인물의 우수한 작품이라도 길게 장수한 것 보다는 요절을 해야그 순수함과 순결한 아름다움이 영구히 박제되게 된다는 말이다.

27 살에 간 윤동주의 죽음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요절로 그 대학에 가서야 뇌리에 깊이 입력이 되었다.

허나 100세 120세를 운운하는 이 시대에는 생각하면 마흔도 더구나 이중섭 같은 천재에게는 요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먹을 것도 그렇게 그리고 싶던 종이도 캔버스도 없던 시대에

작품을 팔아 아이들과 아내를 보려 일본을 가려던 기대로 열었던 첫 개인전도 실패해 가보지도 못한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저리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의 국내 전시에 빠짐없이 갔고 이번에도 부암동 석파정 서울 미술관의 편지화 전시를 보았다.

지상에 대대적으로 난 거에 비하면 조촐한 전시다.

두 아들에게 글도 종이 주변의 그림도 차별없이 똑같이 쓰고 그려서 보낸 것이다. 미술관에서 큰아들 태현에게 지난 해 샀다고 한다.

그걸 편지화라 하여 3 점이 있고 손바닥보다 자그마한 엽서에 그린 구상과 기하학적인 6점이 다다.

그러나 작은 편지지에 그리움이 꽉 찬 사무친 사랑의 말과 빈틈 남기지 않고 사방에 그린 펜화에 색깔을 조금 넣은 즉석의 그림들은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의 요절한 천재성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인 어머니의 편지도 떠오른다.

20 대에 대학 졸업 후 워싱톤에 유학을 가자 비싼 국제 전화는 거의 못 하던 때에 서울 어머니에게서 정겨운 편지가 왔다.

항공이라도 오는데 열흘은 걸렸을 것이다.

내가 차 타고 가 부친 편지 생각은 나질 않는데 북쪽 Upstate New York 살 때 눈을 밟으며 한 30분 걸어가 어머니에게 자주 편지 부치던 생각은 뺨을 스치던 찬 공기와 함께 난다.

얼마나 힘들다는 말을 내가 많이 썼으면 '인생은 고해다~ ' 로 시작한 어머니 편지 생각이 또렷이 난다.

어머니가 시인인지도 모르던 때에 내가 보낸 편지는 지금 없지만

어머니의 편지는 미국에서 이사를 다녀도 한국에 귀국할 때에도 들고 온 걸 보면 내게 큰 힘이 되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단아하게 정성들여 쓴 그 편지들은 아주 작은 장 속에 지금도 있다.

그 생각이 난 건 20 년 전 어머니 갑자기 가시자 일본의 역사 제일 깊은 출판사 고단샤에서 7권의 시집을 출간했는데 그 담당 편집장이 여러 해 받았던 두툼한 편지 박스를 주며 어머니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책으로 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귀국해 한 번도 안 열어 본 어머니 편지 생각이 났다.

도우미가 어머니가 밤 늦게까지 편지를 쓰신다고 늘 걱정을 했다.

한국 독자는 없던 시절, 빙점을 쓴 미우라 아야코를 비롯한 일본 팬들 편지에 일일이 답을 한 것이다.

편지라~

유명 화가 유명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 쓰던 그 순수한 시대가 그립다.

   
 
   
▲ 큰 아들 태현에게 쓴 편지 양피 잠바를 입고 팔레트와 붓을 든 - 1954년
   
 
   
 
   
▲ 기하학적 엽서화
   
▲ 이중섭 전시회 때의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 山本方子 19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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