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달고 국회 의사당에 앉아 있는 이회창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중적일 수 있다. 좌파 정권 10년을 끝장내기 위해 혈혈단신 정계로 복귀한 대쪽의 투사? 그런 시각이었다면 그의 대선 3수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아니면 염라대왕도 말릴 수 없는 정치 권력에의 의지, 그걸 좇는 갈대의 훼절? 평자(評者)에 따라서는, 대선 때까진 그런 두가지 시각이 공존하면서 복잡한 심경이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대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충청도 땅에 ‘자유선진당’이라는 지역당을 만들고, 다시 창조한국당이라는 진보 결사체의 대표 문국현과 뭉쳐 국회에 교섭단체를 만든 과정을 보면 그의 롤 백은 ‘갈대의 훼절’이다. 갈대의 훼절. 충청도 ‘갈대의 대표’ 김종필(JP)이 꼭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윤회여.
이회창은 한국 정치에 ‘법과 원칙’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처음 도입한 주인공이다. 정치 선진화를 가져올 신선한 충격파였다. 그는 1997년 대통령 김영삼과의 갈등으로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뒤 1년에 걸쳐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 ‘아름다운 원칙’이다. 정계 입문을 앞두고. “이제 내 앞에는 어떤 길이 펼쳐질 것인가. 분명한 건 그 새로운 길에도 내가 따라야 하는 ‘원칙’이 있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가치라는 것이다.” 대쪽에서 갈대로 변절했다는 비난에 대한 항변도 있다. “대나무는 옮겨 심어도 토양이 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말라 죽을 뿐이지 갈대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이회창이 문국현 국회 체포동의안 처리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막아버렸다. 형사법 원칙에 따르면 확정 판결 전까진 무죄이며,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며. 그런데, 왜 9차례나 검찰 소환에 불응한 문국현한테는 검찰 수사에 응하라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내가 하면 원칙, 남이 하면 반칙’? 문국현의 금배지가 날아가면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지기 때문 아닌가? 자유선진당은 수도권 규제완화도 반대, 그게 나라 경제 살릴 수 있는 원칙?
이런 갈대라면 ‘대선 4수’에 도전할지도. 이회창은 지금이라도 대쪽으로 U턴해야 한다. 군소 지역당의 맹주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투사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보수·우파의 정신적 지도자처럼. 그게 세번이나 그를 찍은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 아닌가?
최종편집 : 2024.4.18 목 15:55 
재외선거, 의료보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