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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3성 조선족 마을의 붕괴에 대한 대정부 건의문
이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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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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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재)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연구소장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지원을 받아 실시한 중국 동북3성 조선족 마을의 붕괴에 대한 연구조사에 관한 것으로 ‘대정부 건의문’ 내용임을 밝혀 둡니다. -편집자 주)


[ 이병화 / (재)국제농업개발원 연구소장 (농경영학ㆍ경제학 박사) ]

       < 중국 동북3성 조선족 마을의 붕괴에 대한 대정부 건의문 >


북간도로 간 사람은 조선족, 연해주와 南사할린으로 간 사람은 고려인

불과 1세기 전후(1864∼1944년 사이) 비슷한 환경에 의해 북간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조선족으로, 러시아 연해주와 일 본령 남사할린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고려인이 되었다.

1990년 한⋅소 국교수립(9월 30일)과 1991년 한⋅러 국교수립(12월 29일) 당시 구(舊)소련연방(이후 CIS)내에는 스탈린의 민족이주 혼합정책(소련연방에 사투리가 없는 것은 다민족이주 혼합정책의 효과임)으로 인해 고려인 마을은 해체되고, 우리말과 글 역시 제대로 사용치 못하고 겨우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쌀농사(수전 농업)를 할 수밖에 없는 15개 마을(콜호즈)에만 고려인 마을조직과 우리말과 글을 쓰는 학교를 허가해 주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구소련의 해체와 15개 위성국가들의 독립으로 인해 그동안 존속하던 고려인 마을과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학교와 신문 등이 붕괴 되었다.

이로 인하여 1세대 이후의 고려인들은 우리말과 글을 잊어버렸고, 민족정체성도 사라졌으며 한국과의 수교이후 고려인들은 양국의 경제⋅문화⋅사회⋅정치⋅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어진 역할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선족은 유창한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데, 고려인들은 왜 잊어버렸는가?

   
반면, 중국과 수교당시(1992년 8월 24일) 조선족 동포들은 대부분 동북3성에 거주(1,925,600명)하고 있었고, 이중 75.9%에 해당되는 1,461,025명이 110만ha의 농지에서 벼농사(수전농)를 지으면서 생활했으며, 35가구 이상의 마을 2,678개가 있었다. 이들 마을들은 평균반경 3.8km이내에 학교(소학⋅초중⋅고중⋅사범학교 등) 1,302개교를 설립하여 명실상부한 우리말과 글, 그리고 조선민족의 전통풍습과 이에 따른 윤리관 등 민족정체성을 전승⋅유지해 왔으며, 사실상 동북3성의 벼농사의 선구자 역할도 해왔다. 수교당시 유창한 우리말과 글을 구사하는 조선족 동포들 덕분에 한⋅중 양국 간 교역은 확대되어 지금은 한국 최고의 교역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합한 물량보다 훨씬 많은 교역량이 현재 거래되고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한 절대적 역할을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는 조선족 동포들의 담당했다는 사실을 한국 국민들이 간과하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의 협력 없이는 남북통일이 어려움에도 이들을 괄시⋅천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말과 글을 모르는 구소련연방국가의 고려인들과 비교하면 그동안 조선족 동포들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자명해진다.


한ㆍ중 수교 18년 만에 조선족 농촌마을의 80%, 농지 85%, 학교 73%, 농민 47%가 사라져...

그런데 한⋅중 수교 1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조선족 마을의 붕괴와 민족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조선족 수전농 마을의 80%인 2,147개가 사라져 531개 마을만 남아있으며(연변조선족자치주에 1,470여개 소규모 마을은 서류상에만 있음), 수전 농지는 85%가 한족에게 넘어가 171,193ha만 영농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소학⋅초중⋅고중⋅사범학교 등)는 73%가 폐교 또는 한족학교와 통합되어 불과 357개교만 운영되고 있으며, 수전 농민 역시 47%가 도시로 이주하여 현재(2009년 말 현재) 850,159명이 남아있다.

이들 수전마을 농민⋅학교⋅농지 등은 풍전등화 같은 형편이 되어 대한민국 정부의 특단조치가 없는 한 10년 이내 고려인과 똑같은 신세(현상)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조국인 대한민국 국민 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조선족 마을의 붕괴이유는 오로지 하나이다

조선족 마을의 붕괴이유는 바로 한⋅중 수교 덕분(?)이다. 수교 18년간 재중동포숫자보다 더 많은 230여만 명이 한국에 장기취업을 위해 다녀갔으며, 이들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연해도시(천진ㆍ상해ㆍ청도ㆍ대련ㆍ심천 등)와 성도와 인근도시에 이주⋅정착하여 한족사회 일원이 되고 있다. 이들의 일상용어는 중국어이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역시 한족말(중국어)이다. 이들 개인입장에서 볼 때 대도시 이주는 행복한 일이며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이들 모두가 가까운 미래에 만주족처럼 말과 글을 잃고 민족정체성이 사라져 한족사회 속에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고향을 떠난 사람들로 텅빈 조선족 마을 전경
한국에서 취업중인 조선족동포 중 여성들은 식당 등 대중음식점(73%), 가정부(15%), 간병인(7%), 기타(5%)이고, 남성들은 건설현장 등 대부분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대체로 남⋅여 공동 한 달 급료는 150∼160만원으로 중국에서 1년간 받는 급료를 한국에서는 한 달에 벌수 있기 때문에 중국동포 노약자와 불구자 및 범죄자가 아니면 한국 등 해외 재취업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이 기간 중에 술과 노름으로 모은 돈을 탕진하면서도 중국내 값싼 일자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국이 경제부흥으로 육류소비가 늘어나고 사료곡물과 유지작물 수입국으로 전락하면서 수전 농업이 각광 받기 시작했으나(쌀값의 경우 10년간 3배 인상), 이미 수전농 마을인 고향으로 돌아가기에는 기회가 상실되고 있다.

이에 연구진들은 현재 남은 농지 171,193ha와 한족으로부터 반환 받을 수 있는 농지 약30만ha를 합하여 잔존하는 수전 농민 85여만 명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일하는 소득만큼 수전 농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암과 당뇨가 치료되는 쌀’ 생산기술과 세계적인 기술특허를 중국정부와 협조아래 전수시키고 있다.

이미 1년간 현지 실험과 시장유통에서 기존의 쌀값보다 3배나 더 받을 수 있는 등 이것에 대한 과학적 측정도 끝나 중국 당국의 특별 배려도 취득했으나 여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농한기가 너무 길어 술과 노름으로 탕진한다

일 년 중 절반인 150∼170일이 겨울철 농한기이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수전 농민들의 경우 한화 1만 원 정도의 40도 이상의 독한 술을 3일에 한 병씩 약 60여병을 마시고, 안주 값으로 술값의 5배를 탕진하여 겨울 삼동기간에 술과 안주 값으로 농번기에 번 돈을 모두 탕진하는 실정이며, 노름과 싸움으로 5명에 1명이 공안에 체포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겨울철 농한기 일거리(농외소득)로 짚공예 작품을 만들어 미국과 일본⋅한국 등 동포들 대상으로 판매하는 방안도 마련했으며, 독한 술 대신 아무리 먹어도 부담 없으며 안주가 필요 없는 막걸리를 마을마다 만들어 팔 수 있는 법령도 중국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의 배상면 양조(막걸리)학교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누룩과 막걸리 제조공정을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선족 마을을 재생시키기 위한 한국 정부 지원정책을 건의 한다.


< 건의내용 >

한국정부는 조선족 발전을 막고 있다
1. 현재 동북3성 조선족동포 중 한국 전통막걸리 제조공정을 배우기 위해 배상면 막걸리 양조학교(서울 양재동, 경기 포천 소재)로부터 1개월간 무료교육과 왕복항공료 등 1인당 100만원씩을 지급받기로 하고, 연구진 소속의 재단이 초청장을 공증하여 발급했으나, 심양의 총영사관(담당자 정OO 영사)에서는 도무지 조선족 마을 재생에 대한 관심은커녕 외면하고 있어 관계당국의 검증이 필요하다.

학자인 건의자의 입장에서 차마 입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와야 할 사람은 비자를 받지 못하고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비자를 받는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민족정체성과 우리말은 유치원과 소학교에서 형성된다
2. 민족정체성 확립은 말과 글을 시작하는 유치원과 소학교 때 형성된다. 고등학생⋅대학생들의 교환학제와 연수는 이것에 대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역사탐방과 민족정체성 회복이란 명분을 앞세워 여기에만 총량 지원하는 비효율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와 조선족 소학교(전체 357개중 유치병설 소학교는 198개교) 학생들의 학제교환 또는 상호방문과 이것에 따른 소학교 교사들의 교환교육은 가장 확실한 조선민족 정체성 확립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한 중국 측 법령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로부터 확인하였다. (교육대학 재학생인 교생들 파견도 매우 바람직함)


독립된 농가주택을 다가구 공동연립주택으로 바꾸어야 한다
3. 한국의 새마을운동 중국 전수가 한족에게는 성공했으나 조선족동포에게는 실패했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동북3성은 농한기인 10월말∼4월초까지는 매우 추워 독립건물인 노인정과 마을회관은 난방비와 전기요금 등이 부담된다. 평균적으로 마을 절반이 빈집(空家)이 된 상태라서 마을회관과 노인정은 전부 폐허가 된 상태다. 농한기가 없는 온난지역의 한족들은 조선족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특히 귀국하는 조선족 여성들은 한국의 일터에서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부엌(싱크대)과 중앙자동 냉난방에 익숙해 있어 고향마을의 옥외화장실과 가마솥에 짚으로 불을 때는 취사 및 난방은 한사코 외면하기 때문에 기존의 초가집 농가주택을 전부 허물고 공동 냉⋅난방의 연립농가주택 건설(각省에 1동씩 3동)을 시작했다. 1층 입구 쪽은 노인정과 마을회관⋅유치원을 만들어 주어 그곳에서 겨울 농한기를 이용하여 앞에서 설명한 짚공예품과 막걸리를 만들어 마을 주민과 인근 마을 등 중소도시의 한족 사회에 유통시키고자 한다.

현재 모든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관계당국에서는 이들 조선족 동포들의 마을 재생을 위한 깊은 애정의 표시로 공익방송기관이 다큐멘터리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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