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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불교문화 교류의 전도사 광혜(光慧) 스님백제 불교문화 매개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정립 시도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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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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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백제전 백제문화단지 능사복원경축행사에 참가한 정광혜 스님
지난 10월 12일, 서울에서 부여행 고속버스 첫 차에 올랐다. 한산 할 것 같은 버스 안에는 제법 손님들이 많았다. ‘세계대백제전’이 열리고 있는 부여를 방문하는 사람들일까? 잠깐 눈을 붙이자 이내 도착한 부여, 아침부터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길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과 포스터,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세계대백제전 행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행사장으로 가기위해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동안 눈에 비치는 밖의 풍경은 여느 작은 도시의 한 면과 별 다름없어 보였다. 이곳이 1400여 년 전 삼국을 호령하던 백제의 도읍지라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필자가 향하는 곳은 ‘2010 세계대백제전’이 열리고 있는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였다. 그곳에서 재일교포로 일본의 절에 승적을 두고 살고 있는 한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백제문화단지 내에는 백제시대를 재현한 사비궁과 능사(陵寺), 백제촌락들이 있다. 그중 옛 모습대로 복원된 능사와 웅장한 모습의 5층 목탑이 눈길을 끈다.

능사 법당 주위에는 아침부터 일본 스님들과 일본에서 온 신도 등 100여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날 오전에 거행될 ‘백제능사복원경축법회’ 때문이다. 전라도 사투리와 일본말을 섞어가며 행사준비를 독려하는 스님 한 분이 유독 눈에 띤다. 필자가 인터뷰를 위해 찾은 정 광혜(鄭 光慧) 스님이다. 목소리에 베어 나오는 열정만큼이나 활기찬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광혜 스님은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승적을 가졌던 작은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불교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고 한다. 군대에 다녀온 후 1982년(당시 25세)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해외승려유학생파견’의 첫 케이스로 선발된 것이다. “당시 한국불교정화 활동에 크게 관여하셨던 작은 아버지는 일본불교를 뭉쳐 한국 불교발전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거하셨는데, 작은 아버지의 권유와 취지에 공감해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한국의 시대상황에서는 한국불교 종단의 힘만으로는 불법(佛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 능사복원경축법회에 참가한 일본 일연종 스님들
광혜 스님은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종단의 하나인 ‘일연종(日蓮宗)’에 승적을 두고 30년간 활동을 해 오고 있다. 광혜 스님이 일연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8세 때 ‘전일본불교교류회(全日本佛敎交流會)’에 참가해 일연종 종조(宗祖)를 접하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후, 스님은 일본대학대학원, 동경공업대학대학원, 입정(立正)대학대학원에서 수학하면서 일본 스님들과의 교류와 수행을 통해 정통 불교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광혜 스님이 『2010세계대백제전』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 불교의 시작이 백제로부터 전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신국왕어서(神國王御書, 교토 묘현사 소장)’에는 서기 552년 백제 성명황(聖明皇) 때 불교가 일본으로 전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00여 년 전 일본에 전래된 불교는 일본에 토착화하는 과정에서도 그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불교는 숱한 외침과 정치적 변혁에 의해 지역에 따라 위축되거나 불교문화가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백제불교문화라고 할 수 있지요”라는 말에 스님의 백제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게 베어 나온다.

백제문화를 발굴하고, 백제문화의 중심에 섰던 백제불교의 재현이 부여와 공주를 중심으로 그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대대적으로 펼쳐진 세계대백제전이 그것이다. 이 백제문화의 부활의 역사에 일본불교계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동안 신라문화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백제문화권 개발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되기 시작했다. 광혜 스님은 한국불교의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일본 유학 때 가졌던 뜻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3년 전부터 한일 간 승려와 불교문화 교류를 주선하여 실시해오고 있는데 이 번 행사도 그 일환이라고 한다.

불교문화 교류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궁금했다.“한일관계는 불교뿐만 아니라 한일문화 교류를 통해 미래를 바르게 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승려로서 한일 불교계의 교류와 불교문화 교류를 통해 상생의 미래를 열어 가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능사복원경축법회를 준비중인 광혜 스님
광혜 스님은 일본 불교를 얕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끝마다 강조한다. 각 절마다 수백 년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해 오고 있고,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불법(佛法) 연구와 수행은 한국불교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라고 귀띔한다. 일본 불교계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모든 부분이 체계화 돼 있어 승적 부여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님은 일본 승적을 8년 전에 받았고, 2007년 또 하나의 승적을 받았다. 절을 옮겨 가면 다시 그곳에서 승적을 받아야 정식으로 인정을 해 주기 때문이다. 광혜 스님은 “일본 불교가 이처럼 폐쇄적인 이유는 정식승려와 가짜승려를 구분하기 위해서다”며 “그런 연유로 자금까지 일본 불교가 나름의 전통을 이어온 것”이라고 부언했다.

일본 불교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여쭤봤다. “여러 종교가 많이 있지만 선조들이 왜 불교에 많이 정려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불교를 신봉한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불교에 정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불교의 특성을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근대사적 흐름을 볼 때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과 한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에서 각국에서 완전히 꽃을 피우지 못한 반면, 일본 불교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 불교의 단점을 일본사회에 맞도록 개혁하고 실현해 왔다”고 언급했다. 각 종파별 특성을 잘 계승 발전 시켜왔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지역으로 쳐 들어와 많은 피해를 일으켰던 온 이유가 신라에 패망하여 일본에 정착한 백제의 후손들이 그 원한을 갚기 위한 것으로 보는 학설에 대해 묻는 질문에 광혜 스님은 “일본에서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며,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조선과의 화합을 주장하는 파와 전쟁불사론을 주장하는 파로 갈렸는데, 대부분 백제 후손들은 전쟁 반대파에 속했다는 것이 일본 학계의 주장”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한국에서 주장하는 ‘백제 후손들의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형제가 서로 붙어 있을 때는 싸우기도 하지만 형제집이 망한다는데 ‘잘됐다!’할 수 있겠느냐”며 “감정으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의 감정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동남아시아 중심으로 세계평화에 기여 하려면 아시아의 전통 사상(불교, 유교 등)을 연구하고, 각국의 불교문화 개혁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불교는 전쟁을 절대 반대하는 종교라 생각합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에 입각해 불교문화 교류에 더 정진할 생각입니다.”라고 밝히고 한국불교 종단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 내는 데 진력할 뜻을 내 비쳤다. 강제나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적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 붙였다.

30년 동안 재일교포로 살아오면서 느낀 재일교포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광혜 스님은 교포들을 고아에 비유해 설명을 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재일교포 1세들의 삶이 고아가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타국에서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도 없고, 교육받기도 힘들고, 어떤 조직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대한민국은 꼭 헤아려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재일교포 2~4세의 민족정체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불교문화 교류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업(UP)되고 있어, 한국문화를 알리고 ‘정신적 영양제’역할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혜 스님은 조총련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조총련은 예전에 그래도 일본 땅 값이 쌀 때 땅을 사서 학교도 건립하고 민족교육을 시켰는데, 지금은 세금문제 등으로 일본에 학교도 빼앗기는 실정”이라며, “재일민단과 조총련의 작은 이념의 차이로 재일교포 사회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백제불교와 백제문화를 중심으로 서로 하나 되는 안식처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스님의 일본 생활은 승려임에도 아직도 자발적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있다. 유학 때부터 지금까지 본인 스스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일본 불교 내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며 “그곳도 인간사회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광혜 스님은 일본 불교 일연종파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일본불교계로부터 많은 인정을 받고 있다. 불교학 연구에도 전문가로 통한다.

광혜 스님의 처남은 한신타이거즈 야구선수로 활동 중인, 1492경기 연속 무교체 출장 기록을 지닌 '철인' 가네모토 도모아키(42세)이다. 운동선수로서 역할 모델이 되도록 신앙적으로 격려해 왔다고 밝혔다.

   
▲ 능사복원경축법회 참가후 국악공연을 관람한 일연종 스님과 신도들
한국 불교와 불교학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들에 대한 광혜 스님의 불만이 인터뷰 마지막에 불을 품었다. 남의 연구 자료를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는가 하면, 깊이 없는 연구로 국제 불교학술대회 등에서 낭패를 보는 일이 많다고 전한다.
고대에서 근현대를 아우르는 맥락에서 한일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근현대 일부분만을 가지고 한일관계를 설정하려는 잘못을 한국의 학자들이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세계대백제전 행사기간동안 광혜 스님의 주선으로 이뤄진 백제문화단지 내 ‘백제능사복원경축법회’에 참여한 일본 일연종 일행의 경비는 모두 자비를 들여 참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본에 불교를 전래해 준 은혜의 나라 백제를 생각하며 부여를 찾았을 그들에게 주최 측의 배려와 지원은 찾아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었다.

부여에서 버스로 동행하여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일본 불교의 단초가 되었던 백제불교를 매개로 새로운 한일관계를 문화교류를 통해 정립해 나가려는 광혜 스님의 열정에 열매가 맺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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