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경 교수 / 도쿄가쿠게이대학 ]


(앞글에 이어)

▲ 잔잔히 흐르는 아르노 강

다음 날에는 산마르코 주변을 보면서 우피치 쪽으로 나와서 아르노 강변의 좁은 길을 따라서 많이도 걸었다. 베키오 다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화려한 보석점과 안티크 가게, 성당 등을 보면서 다시 우피치 쪽을 지나서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당 광장에 다다르니 음악이 흐른다. 신 고딕 양식의 건축물 앞에 세워진 동상과 분수의 옆 쪽 출입구로 가서 5유로의 입장권을 구입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피렌체에는 다른 많은 작품들을 소장한 교회도 수도원도 박물관도 있지만, 필자는 우피치 미술관은 물론, 산타 크로체는 꼭 들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조토의 14세기 회화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과 작품 속에서도 도나텔로의 [성 수태고지]는 종교와 무관한 사람도 그 조각과 모노톤 기법을 절묘하게 도입한 그의 예술적 감각에 새로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프레스코나 조각 작품과는 다른 독특함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마키아벨리와 로시니의 영묘 사이에 있다. 마키아벨리의 묘 오른쪽 알피에리 묘 옆으로 단테의 석관이 놓여진, 그러나 유해가 없는 기념묘와, 우피치 미술관의 건축가인 바사리가 만든 미켈란젤로의 무덤(1570)이 있다. 단테는 피렌체를 쫓겨난 이후,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라벤나에서 생을 마감했고, 라벤나는 단테의 명성을 보존하기 위해 피렌체로 유해를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크고 장엄한 영묘의 반대편에는 갈릴레오의 영묘가 모셔져 있다. 그 외의 기념비 등이 성당 내부에 있고, 성구실에도 귀중한 작품들과 고문서를 전시한 성당 도서관이 있다. 그 안쪽으로 가면 피렌체의 전통 가죽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죽 공방이 있다. 전문 기술자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즉석에서 이니셜도 넣어 주는데, 깔끔한 가죽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피렌체의 기념품으로 좋을 성 싶다.

산타 크로체에서는 조토의 프레스코나 치마부에의 ‘십자가의 예수상’, 은은한 빛과 어둠을 이용하여 아름답게 표출시킨 브루넬레스키의 돔형 예배당과 신 고딕양식의 종탑과 더불어 박물관에 있는 중세의 작품 등을 보면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시에나 두오모 성당

물론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꼽히는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를 방문한 사람이면 반드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스케줄로 아침 8시 40분경에 팔라초 베키오와 마주하는 우피치 미술관을 갔다. 사람이 많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걸리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더니 의외로 한산했다. 미술 컬렉션은 건물의 가장 위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처음엔 메디치 가문의 미술품을 소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회화 조각의 뛰어난 작품을 모아서 전시하게 된 곳이다. 이곳의 14전시길에 한국이나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들어 있다. 조개 위에 바람에 날리는 금발로 감싸며 서 있는 비너스의 그림은 어려서부터 많이 봤지만 직접 보니 큰 작품에다 그녀의 두 번째 발가락이 유난히도 길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같은 방에 장식된 ‘프리마베라’에 그려진 비너스의 그림에서도 공통한다. 그리고 조개껍질 안쪽이 아니라 조개의 반대쪽과 연결되는 울퉁불퉁한 부분 위에 서 있기에 험난한 세상에 서 있는 비너스를 말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바로 옆방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수태고지’(마르티니의 ‘성 수태고지’는 3전시실에 있다), 미완성의 ‘동방 박사의 경배’ 등이 있고, 필자가 갔을 때는 이른 시간인데도 일본인 단체객이 와서 열심히 통역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단, 이곳은 철저히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탓에 눈과 가슴으로 감동을 받고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이나 라파엘로의 ‘골드핀치의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작품들, 카라바조의 ‘메두사’,‘바쿠스’ 등이, 출구 가까운 전시실에는 렘브란트나 고야의 작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각 전시실마다 가득하다. 긴 복도 좌우에는 유명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나 여기는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며 전시실이나 복도마다 경비원들이 유독 많은 곳이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출구 쪽에 있던 카라바조의 명화 ‘메두사’를 한참 보고선 몇 가지 기념품들과 전시 작품집 등을 구입하여서 밖으로 나왔다.

▲ 토스카나 와인 제조장

맑은 하늘 속에 고고히 흘러가는 아르노 강물,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와 낭만에 흠뻑 젖다 보니 시간이 너무도 빨리 가버리는 듯 했다. 그런 아쉬움으로 피렌체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책을 몇 권 구입했기에 일본의 연구실로 보내려고 우체국을 갔다. 레프브리카 광장 옆에 중앙우체국이 있다고 해서 그 곳에 가서 국제 우편을 보내려고 하니 참으로 복잡하다. 국제 우편이 되면 일단 항공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황당하게 패스포트를 제출하라고 한다. 지구땅 여러 나라를 꽤 다닌 편이지만 우편물 보낸다고 여권을 내라는 곳은 처음 경험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여권이 없으면 국가 간의 이동이 불가능한 중요한 것이라서 평소 여행을 다닐 때는 가급적 호텔의 세프티 박스에 맡기는 편이다. 그래서 갖고 오지 않았다고 설명을 하자 다른 형태의 비싼 속달로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몇 종류의 서류에 자세히 내용물을 적은 뒤, 송신자의 주소는 호텔 주소로 해야 한다며 호텔 주소를 정확히 적어달라고 했다. 무거운 책자를 들고 다시 호텔로 들어가는 것도 힘들고 해서 많기도 한 관련 서류를 적는 사이에 어떤 아주머니가 수표를 갖고 와서 한참 떠든다. 그러더니 필자가 서류를 다 적었는데도 자기네들 직원 몇 사람과 함께 의논을 하는가 하면, 아예 일손을 놓고, 개인적으로 직원들끼리 한참 시끌벅적하다. 아주머니가 가고 나서도 30 분 이상을 둘이서 그 손님의 이야기를 하는 건지 여하튼 계속 뭔가 떠들면서 일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으로 피렌체를 방문한 외국인이 중앙 우체국에서 우편물 하나를 보내려고(한국이나 일본이면 5-10분이면 끝났을 것이다)2시간 가까이를 소비했다. 고객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개인적인 수다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 태도를 보노라니 참 이 나라도 우편/통신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도둑이 많아서 형무소가 넘쳐난다는 뉴스를 본 듯한데, 보다 빠른 관광 인프라 정비의 하나로 이런 우편/통신 서비스의 개선에 좀 더 인력을 투자하여 배송 관련의 고용 창출로 원활한 우편/통신 제도를 정비하면 보다 다양한 부분에서 사회 전체의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꾹 참다가 시간이 없어서 빨리 해 달라는 요구를 몇 번이나 해 보았지만, 알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아예 카페에 가서 자기네들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불쾌함조차 일었다.

영국의 경우, Royal Mail(영국의 우편)이 거북이 배달로 유명하고(연말에는 항공 우편물이 한 달 가량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학생 추천장 1장을 속달로 보내려 했더니 10만원(50파운드)을 요구하는 시대 역행적 시스템 문제가 있지만, 패스포트 요구나 적어야 할 서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우체국 직원들이 한가하게 자신들의 수다에 시간을 보내느라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는 없기에(적어도 필자의 영국 생활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이탈리아 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탈리아의 사회가 불황운운 하기 전에 우편 및 통신 관련의 문제를 해결하고, 서비스면의 경쟁적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활성화 시키면 사회 경제면에서 많은 고용 창출이 가능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다.

조상들의 유산을 찾아오는 수많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지역 토산품 등을 구입하여 무거운 짐을 우편으로 보내 놓고 가벼운 손으로 즐겁게 관광을 할 수 있다면, 경제 정황도, 경쟁의식으로 서비스도 다양해져서 국가 이미지도 많이 달라질 테니 관광 홍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1석 2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나 일본처럼 현지 물건을 현지에서 택배 등으로 보내 놓고, 신뢰와 빠른 정확성으로 책임 있게 운용된다면 참 좋을 텐데…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한국이나 일본의 우편/통신 시스템이 세계적 수준이고 참으로 편리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경험이 되었다.

▲ 피렌체 명물 티본스테이크

이탈리아라는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단점조차도 이문화로 재삼 확인하며 호텔을 체크아웃 후, 당분간 잊지 못할 피렌체의 맛을 기억하기 위해 전날 저녁에 들렀던 호텔 앞 레스토랑에 가서 해선 스파게티를 부탁해서 먹으니 매니저가 필자를 기억하고선 아이스크림을 서비스 한다. 고맙다며 나오려 하니 다른 종업원들도 꼭 다시 오라고 아쉬운 듯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정도 많고 친절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공생 사회를 모색하게 만드는 희망이야 말로 우리가 내일을 믿고 살 수 있는 원동력일지 모르겠다. 모두 성실하고 정직하게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름다운 토스카나 지방의 기억과 함께 다음 행선지를 향해 유로스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