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칼럼니스트, 본지 편집위원 ] 


재외국민참정권 행사가 내년 4월부터 실시된다.
교포사회는 현행법에 대해 ‘투표권을 부여하고 투표는 하지 말라’는 조치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헌법 재판소에 헌법 소원도 제기한 모양이다.

투표 장소를 공관으로 한정했다는 불만 때문이다. 물론 틀린 소리도 아니다.
만약 한국에서 부산에 거주하는 사람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서울까지 가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주 지역의 경우 공관까지 비행기를 타고가야 할 정도로 거리가 먼 지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도 부지기수이다. 더구나 단지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공관을 두 번씩이나 찾아야 한다면 재외국민참정권은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우편투표 또는 인터넷투표를 실시하면 문제점이 해소되는 것인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뒤 따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우편투표나 인터넷투표의 경우는 본인 여부에 대한 확인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투표에서 실명 인증제를 실시한다면 비밀 투표가 아니다. 맘만 먹고 추적한다면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를 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을 테니 말이다.

우편투표 역시 문제점이 뒤따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부간에도 지지 후보자가 다를 수가 있다. 그런데 집으로 우송된 투표지를 한 사람이 모두 행사를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투표 장소를 공관으로 제한할 경우 유권자에게는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른다.
반면 일각에서 주장하듯 우편이나 인터넷투표제를 실시할 경우 부정 선거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현행 재외국민참정권 제도는 이래저래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여하튼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어진 법안이 재외국민참정권 법안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재외국민참정권에 대한 수요자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외국민들이다.

하지만 법안 입안 과정을 보면 한국의 정치인들이 상대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투표권조차 없는 미국 시민권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우선 세계유권자총연합회의 회장이라는 배희철 씨의 모습을 살펴보자. 한국정부는 재외국민참정권 통과를 위해 힘쓴 배씨의 공로를 치하하며 국민훈장동백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미주 한인사회의 반응은 이런 한국정부의 모습을 코미디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그는 현재까지 미국 시민권자이다. 모 언론을 통해 배희철 씨 자신은 지난 25년간 미국의 시민권자로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미국 선거에 몇 번이나 참여했는지부터가 궁금스럽다.

여하튼 파란 눈의 미국인이 자국 선거가 아닌 한국 정부의 재외국민참정권 문제를 거론한다고 하자. 또 법률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까지 제기한다면 과연 한국의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다. 배희철 씨의 경우처럼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국민훈장을 수여한다면, 아마도 돈키호테 취급을 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너나 잘해!’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투표권조차 없는 미국 시민권자가 재외국민참정권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유권자총연합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회장 감투를 쓰고 전면에서 설쳐대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꼴이다.

문제는 미국 시민권자로서 태평양을 오가며 재외국민참정권을 입에 달고 다니는 인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재미 한인사회에 정통한 전직 기관장은 “요즈음 한국을 들락거리며 재외국민참정권을 외치고 다니는 인사들의 대부분이 불량품들이다.”라는 극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여하튼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 일부 꼴뚜기들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투표권도 없는 이들과 뇌화부동하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 한국의 정치인들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재외국민참정권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재외국민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