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지난 1년반 사이에 원유가가 세배 가까이 치솟더니 결국에는 3차 오일쇼크가 시작된 것이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도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형편은 크게 잃을 것이 없었던 3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3차 오일쇼크가 정말 두려운 이유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무작정 퍼주는 ‘고유가 극복 민생종합대책’과 같은 무책임한 정책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그런 선심성 대책은 당장 취소해야 한다. 민생을 달랜다는 어설픈 핑계로 진짜 위기 극복에 써야 할 소중한 재원을 낭비해 버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물론 에너지 소비 절약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 과소비 관행을 버리지 못하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지금은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여유가 없다. 승용차 운행이나 심야 조명을 제한하는 정도의 불편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보다 더한 불편도 각오해야 한다.
우선 과도한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정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소비가 줄고 경기가 침체되면 유류세도 줄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달콤한 유류세에 중독돼 버린 국가의 재정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재정의 유류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왜곡시키는 유류세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소비자가 시장원리에 따라 가스, 석유, 석탄, 전기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를 선택하도록 해줘야 한다.
경유를 사용하는 승용차가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휘발유에만 과도한 유류세를 부과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이 아니다. 경유 소비를 필요 이상으로 부추길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경유의 유류세를 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될 수 없다. 휘발유의 유류세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추면 버스와 트럭에 유류세를 환급해 줄 필요도 없어진다.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석유화학 제품인 액화석유가스(LPG)를 대량으로 수입하도록 만드는 택시의 연료 정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LPG와 함께 액화천연가스(LNG)의 과도한 소비도 온실가스 감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스 연료가 청정연료라는 인식은 전지구적 온난화가 심각한 현실에는 맞지 않다. 정유산업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세계 5위 규모의 정유산업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양의 휘발유와 경유를 수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휘발유를 수입해서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황당한 발상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정유사가 수입한 원유의 거의 절반을 부가가치가 더 높은 석유화학 제품으로 가공해서 수출함으로써 소중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무작정 정유사를 탓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위기 극복에 정유사의 노력이 꼭 필요하다.
에너지 자원 확보와 저(低)에너지 산업으로의 개편에 이르는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원자력 발전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보유국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 기업의 배만 채워 주고, 국민에게 공연한 부담만 주는 잘못된 신재생 에너지 개발정책은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
오늘날 에너지 정책은 재정에만 관련된 게 아니다. 산업, 환경, 복지, 안보와도 직결된 국가의 핵심 과제이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예산 관리가 본업인 기획재정부가 어설프게 나서는 것도 우습다. 국제적 에너지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가진 에너지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 무작정 작은 정부와 대(大)부처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최종편집 : 2024.4.23 화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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