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일본에서 3월11일에 발생한 M.9규모의 도호쿠 관동 대지진이 할퀴고 간 처참한 상처로 아파하는 피해자들을 2중 3중으로 덮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 유출 문제는 4월의 봄바람에 날리는 꽃가루 알레르기와 더불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려는 시민 의식이 높고, 서로 협력하여 사회 복구를 위한 일치단결 의식으로 사태 수습에 임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루 몇 번이고 계속 되는 지진에, 요오드, 세슘 등의 인체를 위협하는 물질과의 싸움으로 인해 민심은 지쳐가고 있고, 방사성 물질에 민감하고 약한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원전에서 유출되는 방사능 오염 물질의 공포 때문에 생수를 사용하다 보니 관동 지방과는 1,000Km 이상 떨어진 지역을 비롯해 일본 전국 규모로 2L이상의 생수 구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있다.

▲ 계획 정전(절전) 중인 도쿄의 역내 에스컬레이터

TV등을 통하여 이성 있는 대처와 아파하는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협력으로 힘을 한데 모아서 재기하자는 다양한 공익 광고의 힘도 공중지상파를 통해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 영향력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지진 정보나 원전 움직임 등에 대한 적절한 전문가 등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언론 매체도 부지런히 사회 질서를 위한 역할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망가진 후쿠시마 원전1호기를 운영해 온 도쿄전력의 직원은 물론, 경찰, 소방대, 자위대원들은 원전 수습을 위해 ‘결사대’라는 명칭 아래에 목숨을 내 놓고 사태 호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첨단 기술의 폐해와 싸우고 있다. 모두가 그들의 희생을 가슴 아파 하며 사태 호전이 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확하지 않은 원전 실태에, 얼마 전 IAEA의 아마노(일본인) 사무총장 조차도 일본을 방문한 뒤, 도쿄전력이 사실을 은폐하지 말고 솔직히 원전 실태를 보고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만큼 도쿄전력이 말 못할 상황도 많고, 그만큼 사고 대처도 늦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해를 받고 있는 만큼, 원자력 발전소를 가진 기업체의 사회적 역할과 양심적 대응의 절대적 책임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4월 3일의 마이니치신문 저녁 뉴스에 의하면, 재일 교포이자 일본 IT업계를 대표하는 소프트뱅크사의 손정의(孫正義) 사장이 회사 입장에서 기부한 10억 엔(약 13억 원)외에, 별도로 개인 기부금 100억엔(약1300억원)을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 향후 자신이 사장으로 일하며 받는 은퇴할 때까지의 모든 보수(연봉 약 1억800만 엔)를 사회에 기부할 의향을 밝혔다. 대단한 결심인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가 형편없이 무너져서 기능을 잃어갈 때, 그는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인으로서의 용단을 내린 것이고, 자신이 태어나고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안정된 상태를 이끌기 위해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이다. 기업인이기에 더더욱 사회적 양심의식이 결여된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현대 사회이기에 ‘손정의’라는 인물의 가치가 더 빛나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가 지금까지 오면서 단순히 전도양양의 길만 걸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이방인 취급도 있었을 것이고, 파란 만장의 시간들도 있었겠지만, 그는 IT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며 어느 민족이란 카테고리가 아니라, 인간 ‘손정의’를 시대의 시험 속에서 당당히 키우며 자신의 세계를 만든 인물이다. 그가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 휴학이 아닌 퇴학을 하여, 퇴로를 차단한 뒤 도미하였고, 공부에만 몰입하느라 폐렴에 걸린 것조차 몰랐을 정도로 자신의 목표에 전심전력 했던 일은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그런 그가 비틀거리는 사회를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인 것은 많은 사람들의 거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물질적 평가가 아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시한 인간적 판단과,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준 그이기에 더더욱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대지진은 자연으로 이뤄진 큰 불행이다. 하지만 원전은 우리가 항상 긴장하고 최고의 기술 도입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며, 최선을 다해 안전 유지를 해야 하는 원칙 하에서 운영이 되어야 하는 인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자연의 재앙 앞에 대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도 큰 것임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고, 만약을 위한 대응책을 세우고, 최첨단의 연구로 끊임없이 안전 최우선을 위한 운영을 해야 한다. 한국도 원전 이 있는 나라이고, 이미 대구 등 곳곳에서 작은 움직이지만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최악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해 둬야 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개인의 시민 의식은 물론이고, 기업 및 정치, 교육 등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협력 태세가 되어야만 한국 사회가 유지가 될 것이다.

미국의 신문에서 일본 사회가 이런 자연의 대재앙 속에서 너무도 차분하여 되레 힘들게 참고 있는 것이 부자연 스럽고 더 불안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지만, 오랜 세월을 일본에서 보낸 필자에겐 되레 일본의 초연스런 태도와, 그럴수록 더 결속하고 협력하겠다는 시민 연대 의식은 전후 오랜 세월 속에서 그들이 쌓아 온 문화 의식이자 많은 정보 공유 등에서 얻은 안정감의 발로라고 보고 있다. 사회를 리더 해야 하는 정부 측의 위기 관리 의식의 결여와, 도쿄 전력 등의 원전 기업의 은폐 문제 등에 대한 불신은 높지만, 시민들의 사회 운영에 대한 의식은 많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문을 열었으나 한산한 주유소

그들은 자신들이 흔들리면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것을 익히 알고 있고, 무엇보다 수많은 다양한 정보(트위터, 페이스 북, 브로그 등의 소셜 미디어)와 뉴스 등을 통해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중인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오보나 오인의 정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시민들은 차분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방사성 물질에 대한 기본 대처 방법을 터득하며, 현실 생활을 하고 있다. 센다이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처럼 피해가 많은 곳은 자위대와 경찰 등의 대거 투입으로 빠른 복구를 보이고 있고, 필자가 있는 도쿄 같은 경우도 1리터의 가솔린 값이 145엔으로 지진 전보다 약간 비싼 감은 있지만 얼마 전처럼 뒤가 안 보일 정도로 줄서서 기름을 넣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석유는 충분히 비축이 있으니 사재기 할 필요는 없다는 전 ‘일본 석유협회’ 회장의 진지한 설득과 더불어 빠른 안정을 찾은 것이고, 얼마전까지 휴점을 하던 곳이 지금은 한산하게 기름을 넣는 차가 보일 정도이다.

문제는 하루 속히 후쿠시마 원전의 사태 수습은 물론, 타의 원전 안전 상태 회복과 더불어 맑은 공기를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이번 대지진 등으로 인한 피해자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어이없는 재앙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보내고 남겨진 생명이지만 지나친 지진 후유증으로 인해 PTSD를 앓다가 생존자가 병들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으니 하루 속히 심신의 치유가 필요할 것이다.

▲ 계획 정전 후 교통정리하는 일본 경찰

그리고, 모든 일본 관련의 기업 및 단체에 종사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귀국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어린 아이가 있거나 자신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방사성 유출이 심각한 일본 사회에서 불안에 떨면서 산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기에, 혹은 고국의 가족들이 무사할 때 급히 돌아오라고 하여 귀국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필자는 그들이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을 찾아서 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입사할 때의 초심으로 유종의 미를 남기고, 자기 책임 하에서 충분히 상대가 납득하도록 설명을 한 뒤, 정중히 거절을 하고 떠나는 성실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게 사회적 도의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필자의 경우, 학교 사회에 몸담고 있기에 4월부터 시작하는 학기를 위해 그 전의 가을부터 시간 강사 배치 등을 고민해야 하고, 많은 한국 관련 수업을 줄이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 하면서 담당자 확약을 받고 신학기 준비를 한다. 그렇기에 신학기가 시작되는 4월에 들어서서 갑작스레 일본이 불안해서 귀국을 하였으니, 몇 년 동안 해 왔던 시간 강사를 그만 두겠다는 사후 통지를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상당히 많은 피해를 주고 떠나는 것이 된다. 시급히 수업 배치를 재고해야 하고, 학기 시작의 바쁜 업무 속에 그 뒷처리를 해야 하는 고생은 물론이고, 지금과 같은 재난 사태 속에서 외국인 배타의 폐해를 자아 내는 무책임한 태도도 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지구촌 사회라고 하지만 아직은 그 국가나 민족 등으로 개개인이 외교관 처신을 해야 하는 속성이 다분히 남아 있는 사회이기에, 그 회사나 조직을 그만 둘 때에도 가급적 시간 여유를 갖고, 정중하게 그 조직의 담당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는 기본적인 매너는 갖춰야 한다. 들어갈 때와 달리 나갈 때는 자신의 이기성 만으로 모든 걸 팽개치고 가버린다면 그 회사나 단체의 운영에 많은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이 아무리 그동안 열심히 일 해 왔다 하여도 결국 신뢰성을 잃고 씁쓰레한 이미지만 남기게 된다.

현대 사회는 국경이 낮아지고, 사회가 점차 좁아지면서 같은 업종의 사회가 정보 제공과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더욱 더 개개인의 일에 대한 성실한 태도, 정직하게 노력하는 신뢰받는 태도가 국경을 넘어서 평가되는 사회이다. 혹시 사회 정황이 나빠져서 불안 속에 피치 못할 결단을 할지라도, 그 회사나 단체에 조금이라도 은혜를 받았던 몸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줄 것인지를 상상해 보고, 그에 맞는 대처 혹은 사전 의논 등, 상대에 대한 배려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뒤, 서로 납득 하에서 그만 두는 것이 기본적인 사회인의 태도가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한국 사회가 정황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맡겨놓은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고 귀국한 뒤, 그만 두겠다는 간단한 사후 통보만 한 외국인이 있다면 우리는 어떨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가 외교 관계를 맺는 시대이기에 자신의 업무에 유종의 미를 남기는 미의식을 가지는 것,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고, 한국 사람들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임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필자가 이렇게 역설하는 것은 주변에서 이미 외국인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인한 몇 사례가 나와서 외국인 종사자에 대한 ‘역시 외국인이기에’라는 이미지가 나돌고 있기에, 노파심으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바람이기도 하다. 기업도, 정부도 강력한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개인들의 처신도 인간의 도리로서, 사회인의 태도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