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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근대의 스승, 실체는 침략전쟁의 선동가”日화폐 초상인물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멸시와침략선도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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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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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

야스카와주노스케지음,이향철옮김 신국판변형|본문 420쪽| 역사비평사


지금도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 초상인물로서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의 스승”, 더 나아가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메이지유신 당시 후쿠자와가 일본을 ‘국민국가’로 만들고, 그리하여 ‘주권국가’로 만드는 두 가지 과제를 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일신 독립해야 일국독립한다”는 구절에서 “개인적 자유와 국민적 독립, 국민적 독립과 국제적 평등이 완전히 같은 원리로 관철되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그것은 일본의 근대 내셔널리즘에서 아름답지만 짧았던 고전적 균형의 시대였다”라고 결론지었다.

침략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의 터널로 빠져들기 전, 활기차고 지적이며 영광스러운 메이지시대의 이미지를 후쿠자와에게 투영한 것이다. 이는 마루야마가 만들어낸 후쿠자와지만, 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침묵했던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세대 모두의 후쿠자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후쿠자와의 본모습일까?
‘역사비평사’가 출간한(이향철 옮김) 야스카와 주노스케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책에서 저자는 후쿠자와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으로 고통 받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후쿠자와는 “근대화과정을 짓밟고 파탄으로 내몬 우리 민족 전체의 적”(한국)이나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대만)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죽은 한 인물에 대한 이 아찔한 평가의 온도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일까?

재일교포 서승 교수는 “요즘 한국에서는 국민국가 건설의 신화를 메이지유신에 빗대 창조하려고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서구화・근대화・무자비한 국가주의의 스승 후쿠자와를 찬양하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경조부박한 일본 붐이나 그에 편승한 부국강병론과 근대화론이 득세하여, 그와 함께 후쿠자와에 대한 표피적이고 맹목적인 긍정론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스카와 교수의 글은 일본과 한국의 근대를 되돌아보고 투철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고 평했다.


일본 근대의 스승인가 침략전쟁의 선동가인가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하는 사술 ”천황제와 “병신”을 위로하는 “종교”

우메하라 다케시는 이 책은 “일본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후쿠자와 유키치)과 그 신의 사제장(마루야마 마사오)의 우상숭배를 파괴하는 격렬한 내용이지만 󰡔전집󰡕에서 후쿠자와 자신의 말을 인용해 하나하나 필주(筆誅)를 가하는, 실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택함으로써 쉽게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그동안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우고,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평생에 걸쳐 남긴 400여 개의 발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진정한 후쿠자와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름 아닌 후쿠자와의 텍스트들에 정면 도전한다. 후쿠자와의 입으로 후쿠자와를 설명하는 그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은 엄밀한 연구자의 성실성이 무엇인지 소리 없이 웅변해준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천황제의 본질이 “어리석은 백성을 농락하는 사술(詐術)”('제실론')임을 일찍이 간파하고서도 적극적으로 선택했을 뿐더러, 일생 동안 천황을 위해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충성의 맹세를 수없이 반복했다. 천황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소에는 정치 바깥에 신격화된 존재로 두다가, 결정적인 전쟁의 순간 천황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도록 한다는 발상 역시, 어리석은 백성들이 천황의 이름으로 국가에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선동하고자 했던 정치적 속셈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에게는, 천황을 중심으로 국력을 결집시켜 아시아를 집어삼킨 뒤 서구열강과 겨루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무엇보다 앞섰다. 그러기 위해 “가장 긴요한 일은 전국 인민의 머릿속에 국가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었고, “일국의 인심을 흥기하여 전체를 감동시키는 방편으로는 외전(外戰)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다”,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몹시 유쾌하다”고 외치며 백성들의 충성심을 일깨워 천황을 위해 한목숨 바치게 하는 한편, 차티스트운동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서구의 흐름이 일본의 서민들에게 전해질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바보와 병신”들에게는 “종교가 꼭 맞는 구색”이라며 수백 편의 글로 종교진흥책을 펼쳤다. 물론 후쿠자와 유키치 자신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지만 말이다.


아시아 멸시와 침략의 선두주자
—“멸망이야말로 오히려 조선인민들의 행복을 크게하는 방편이다”

“조선은 본래 논할 가치도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당면의 적은 지나이기 때문에 우선 병사를 파견해 경성에 주둔 중인 지나 병사를 몰살하고, 바다와 육지로 대거 지나에 진입해 곧바로 북경성을 함락시켜라.”

“눈에 띄는 것은 노획물밖에 없나니. 온 북경을 뒤져 금은보화를 긁어모으고 관민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빠뜨리지 말고 ‘창창 되놈’들의 옷가지라도 벗겨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바라는 바이니라.”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그가 초기부터 일관되게 아시아에 대한 멸시와 침략을 선도해온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자의 위선과 편견, 오만함, 다른 문화에 대한 멸시와 비하가 글마다 넘쳐흐른다.

후쿠자와는 막부 말기 젊은 시절에 세 차례에 걸쳐 구미를 여행했다. 그 도정에서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의 관리가 중국, 인도, 기타 아시아 지역에서 무력을 배경으로 현지인을 거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방약무인한 식민지배의 현실을 목격했다. 정말로 후쿠자와가 혜안을 지닌 젊은이였다면, 동아시아 3국이 연대하여 서구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낼 궁리를 했을 법도 하다. 그랬다면 아시아의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자와 유키치는 “압제도 내가 당하면 싫지만 남을 압제하는 것은 유쾌하다”고 곱씹으며, 영국인이 현지인을 다루는 것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인까지 눌러 동양의 권세를 일본의 손에 움켜쥐자고 하는 제국주의적 권력정치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때를 같이 하여 중국, 조선, 대만 등 아시아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멸시, 편견의 발언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홍콩의 현지인은 풍속이 극히 비루하고 오로지 영국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 “현금의 우두머리는 홍수전으로, 스스로 천황으로 칭하고 있다. 그 도당들이 인원은 많다고 하지만 원래 오합지졸로 용병의 법을 아는 자가 없다.”(「西航記」) “대만 야만인(…)은 금수와 같은 자로 사람 두서넛 잡아먹는 것은 보통이고 (…) 조선인은 그저 완고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외국선만 발견하면 다짜고짜 발포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지난날과 같다.”(「要知論」) 유치할 정도의 폭언과, 문명의 이름으로 미화된 침략의 욕망을 감추지 않은 노골적인 글들은, 과연 후쿠자와가 당대의 사상가로 불리는 이가 맞는지 의문마저 품게 만든다.


“밝은메이지”의 스승 후쿠자와, “어두운 쇼와”의 길을연 유키치
—아시아 민족들의 역사인식의 소통을 위하여

지금까지도 일본사회는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시대의 기억을 “밝은 메이지”시대의 영광과 단절시킨 채 이해하는 풍조에 젖어 있다.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밝은 메이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후쿠자와야말로 “어두운 쇼와”로의 길을 열어젖힌 장본인임을 폭로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자기최면을 깨고자 시도한다. 그것이야말로 메이지시대부터 싹을 틔웠던 일본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직시하면서 전 사회, 무엇보다 평범한 일본인 개개인의 전쟁책임을 절감하는 작업의 시작이자 단초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제국주의시대에 잘못된 탈아입구 노선을 선택하여 아시아와 일본의 근대사에 불행한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극복하는 공동연구가 진전되기를 기대합니다.” 라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공동연구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좁혀가기 위해 진실된 역사적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일 것이다. 일본 근대의 스승 후쿠자와 유키치의 언어에 정확한 맥락과 의도를 찾아주는 이 작업은 그 소중한 첫걸음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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