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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1세 아버지들의 자화상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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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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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16. LA중앙일보 <기고> /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이민사회 아버지 세대
일군 업적에 감사해야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어버이 주일'을 하루 앞둔 토요일이었다. 지금 아버지는 '투병'과 퇴원을 위한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후자에 더욱 힘을 쏟고 계시다.

아버지의 투쟁은 병원 응급실 도착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먼저 평소 다니는 가정의에게 가자고 했다. "주사 한 대면 된다"는 기대와 함께. 곧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아버지에게 의사와 간호사는 몸 상태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답의 대부분은 "It's okay." 의료진은 이 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한다. 무엇이 '오케이'냐는 반문에 대한 답도 역시 "It's okay"이다.

응급실에서의 검사가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는 지금 요주의 골칫거리 환자 취급을 받고 있다. 병원에서 센서를 부착해 침대에서 일어나면 경고음이 울린다. 아버지가 속 썩이는 환자가 된 이유가 있다.

입원 첫날 저녁 아버지는 한 의사가 위로의 뜻으로 던진 "좋아질 것이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확대 해석해 퇴원을 요구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스스로 링거 바늘도 떼어 냈다. 피가 흘렀다. 장난기 있는 한 간호사가 아버지에게 '탈옥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버지는 지금 네 가지를 거부하고 있다. 효도랍시고 연결해 놓은 병실 전화와 TV 의료진이 낙상을 우려해 침대 바로 옆에 설치한 이동식 변기. 끝으로 자식들의 병간호이다. 전화를 받으면 주위에 위로 전화하라는 메시지가 되어 폐를 끼친다고 한다.

TV는 "뭐 볼게 있냐"며 켜지도 않고 있다. 이미 여러 번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고 야단을 맞은 터다. 이동식 변기 사용거부는 아버지의 '최후의 자존심'이자 동양인 정서의 표시인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좀 자야겠으니 제발 집으로 가라고 요구한다. 떠나는 나에게 눈감은 아버지는 "장례비는 만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찌 내 아버지만의 모습일 까. 나는 병상의 아버지 통해 그 세대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만난다. 나의 아버지는 80대 중반이다. 일제와 해방과 전쟁의 혼돈을 살아 냈고 그 후에는 '자다가 죽은 것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일하다 죽는 것'이라는 삶의 자세를 지켜 온 세대이다.

대통령이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란 노래를 만들기 전에 이미 새벽을 깨운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70년대 중반 이민 왔다. 지금처럼 동포사회의 경제규모가 크지 않았다. 자영업도 많지 않았다. 흔한 말로 의사 박사 아니면 모두가 장시간의 육체노동으로 생활을 꾸렸다. 한국과 다른 맞벌이 생활에서 오는 부부 가정의 긴장관계도 참아 낸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에겐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교회 성당 사찰을 세우고 지었다. 신앙공동체가 곧 동포사회였다.

이 같은 발자취를 따지면 우리 아버지들은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과 같다. 미국 역사에서 다른 이민 집단이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 대해 고마워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너희들 무슨 수로 미국유학을 시켰겠느냐"는 한마디보다 더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의 요약이 있을까?

푸드 스탬프와 같은 생활보조 신청을 하지 않아 정부 기관에서 한국어 안내서를 따로 만들어 홍보를 해야 하는 우직함이 이 세대에게 있었다.

우리 아버지들의 당당하고 억척스런 삶은 연예인들의 소위 '동포 위문공연'이란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결코 위로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세대는 지금 인생의 황혼기에 있다. 아프다 외롭다 부족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고 버텨 온 우리 아버지들에게 세 번 고개를 숙인다.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과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다는 또 되풀이되는 다짐의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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