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05.30. 매일경제 <테마진단> /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

▲ 홍창의 교수

요즘 미군부대마다 고엽제 등의 오염물질이 땅에 묻혔다고 난리다. 농약의 일종인 일반 제초제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나무까지 고사시키는 고엽제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오렌지 작전` 아래 한국군을 활용해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정부는 약 200만명의 베트남인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주한미군 감축 논의와 기지 이전이 가시화하면서 여러 기지에서 기름 유출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처음에는 기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혹시 노후한 탱크와 송유관의 훼손 문제가 아닌가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수로를 통해 유출되는 양이 제법 많다는 사실과 비오는 날 유출이 심한 것은 유출보다는 고의적인 방출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만일 유출이 아닌 방출이라면 아까운 기름을 공연히 내버린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반대로 눈에 보이는 것은 기름이지만 숨기고 싶은 것을 섞어서 방출했다면 이해가 된다. 그럴 경우 무엇을 숨기고 싶어했을까가 궁금해진다. 화학물질, 고엽제, 핵폐기물…, 의심만 무성했지 밝혀진 게 하나도 없었다.

케케묵은 궁금증이 미국 본토에서부터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과거 근무했던 미군들로부터 증언이 터지면서 베트남전쟁 때 쓰고 남은 고엽제를 우리나라에 반입해 경북 칠곡의 미군기지인 `캠프 캐럴`에 매립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숲을 잡초로 보고 고엽제를 뿌렸다지만 미국 입장에서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을 잡초로 보고 고엽제를 묻었단 말인가.

문제는 고엽제 매립이 한 곳뿐이었겠는가? 또한 매립한 물질이 고엽제 하나였겠는가? 아마도 미국에서 증언 릴레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더 많은 매립 기지나 유해물질의 다양한 종류가 밝혀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엽제를 기름에 섞어 수로를 통해 하천과 바다에 방출했다면 우리 모두 고엽제를 조금씩 먹고산 셈이 아닌가? 베트남처럼 고엽제의 피해를 알고 대처하는 것과 우리처럼 모르고 당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환경 피해란 알고 대처하는 `환경 방지비용`보다 모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대처하는 `환경 복구비용`이 몇 만배가 더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미국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다. 광복 후 미국은 남한에서 윗사람 대우를 받았다. 아마도 북한에 중국이 그럴 것이다. 영원한 우방은 없다지만 남북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딜레마다. 분단이 가져온 슬픔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반도의 생각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울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분단비용이 누적되고 있다. 특히 환경오염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후세에게 물려주게 된다. 정보통신이 발달한 사회에서 진실을 숨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라가 둘로 갈라진 상황 아래서 너는 어느 편이냐를 놓고 다그치다 보면 진실이 묻혀버릴 수 있다. 그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 진실비용이다. 금강산 관광객에 대한 총격과 연평도 폭격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저들이 바로 인정하니 말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과 디도스 공격, 농협 사태는 통일이 되어야 명확히 밝혀질 것이라는 사실이 또 다른 형태의 분단비용인 것이다.

어쩌면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분단을 즐길지도 모른다. 남한이 미국을 무조건 믿고, 북한이 중국을 무조건 믿는 시대는 갈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관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믿는 것과 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제발 이념논쟁을 멀리하고 세상살이가 사람들을 잡초로 망치는 일보다 약초로 귀하게 여기는 사례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도자의 시각에 따라 세상이 건강해질 수도 있고 오염될 수도 있음을 새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