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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 ‘박용만 장군 기념재단’ LA에서 출범
최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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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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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남가주 강원도민회 정동철 회장, 박희민 목사, 정시후 이사장, 박상원 회장.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항일 무력투쟁에 앞장 선 독립지사 박용만 장군의 애국활동과 발자취를 발굴하고 기념하는 재단이 남가주에서 출범했다.

미주한인재단 LA(회장 박상원)는 지난 5월27일 ‘박용만 기념재단’ 법인등록을 마치고 7월부터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박용만 기념재단은 박용만 기념사업 추진, 독립유공자 발굴 및 애국선열 추모, 미국 사관학교 특강 등을 펼쳐 박 장군의 활동을 후세에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던 숨겨진 이민 선조를 발굴한다.

기념재단 총재 박희민 목사는 “당시 박용만 장군의 항일 무력투쟁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 이승만 박사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이란 평가를 받는다.”며 “일본 정부는 직접적 위협인 박 장군의 군사 활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1905년 2월 도미한 박용만은 연방정부와 주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1909년 독립군장교양성기관인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했고, 1912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가 제1회 졸업생으로 박용만의 제자다.

또 박용만은 1914년 군사조직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한인들은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의 선봉에 섰다.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한 박 용만은 1919년 대한국민군 총참모장, 미주한인신문 신한민보 주필로도 활동했다.

박상원 회장은 “미주에서 독립운동에 나서며 한미 양국을 사랑한 애국지사 박용만 선생은 1928년 10월 17일 안타깝게 북경에서 암살당했다”며 “미국에 사는 우리는 우성 박용만 선생의 민족 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고 후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이민 선조를 알릴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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