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1.15 목 17:14
재외선거, 의료보험
> 자료발굴
도쿄 속의 100년 전 한국 史料들일본 왕궁 궁내청 서릉부가 소장하고 있는 새로운 항일의병장 사료 입수
이수경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1.08.1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이수경 교수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일본 왕궁 궁내청 서릉부에서 보관하고 있는 항일 의병장
- 호남 의병장 전해산, 심남일, 강무경 등 국내에 없는 새로운 사진 자료도 입수

   
▲ 사진 제공 : 이수경 교수

평소에 수업 준비나 학교 업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던 교수들에게 여름 방학이란 연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귀중한 찬스이다. 필자도 사생활이 없는 바쁜 생활이다 보니 방학이 유일하게 교육을 위한 연구 자료를 찾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방학이 다가 오기에 집필 중인 통감부 시절 항일의병장 관련 자료를 검색해 발췌한 후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열람 신청을 했더니 약 3주일 만에 열람 허가가 나왔다. 지난 8월 5일, 와세다 대학에서 박사 중인 제자와 가쿠슈인대학 동양문화연구소의 이정훈 조교랑 함께 열람을 갔다.

몇 년 전에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 4권을 열람하러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궁내청이 휴관일이라서 출입구 경찰들이 처음엔 신분증의 이름을 보고선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서릉부와 연락을 했지만, 서릉부 직원들은 필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고, 대학 측에도 허락 관련 전화를 일부러 해 줬다. 무엇보다도 올 4월부터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디지털 카메라로 자료 촬영이 가능하게 되었다기에 반가웠다.

필자가 작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안식년을 할 때, 트리니티 도서관에서 진화론의 찰스 다윈의 편지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핵 반대 선언문을 찍고 싶었으나 절대 촬영 금지라는 이유로 촬영이 무산돼 러셀의 선언문을 베껴 적는 2시간 동안 사서가 옆에서 지켜보며 준비된 연필로만 적으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기에 이번 서릉부의 대응(열람실에서는 연필만 사용)에서 서릉부가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이 보였다. 이미 오래된 과거 자료들이기에 역사적 관점에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지하 열람실로 내려가서 일단 짐을 보관하고 손을 씻은 뒤, 필자 일행은 그들이 꺼내 온 오래 된 사진들을 묶어 놓은 종이를 조심스레 풀었다. 필자가 처음 손에 든 호남 의병장들의 설명문이 붙은 말끔한 개인 사진과, 전해산(全海山, 1878-1910) 의병장이 눈 내린 집 정원에 앉아서 찍은 사진 위에 적혀진 [전남 폭도 대수괴 전해산]이라는 글이 가해자 측의 기록임을 전하고 있었다. 사진 상태는 보관이 잘 되어서인지 깨끗하다.

심남일(沈南一,1871-1910) 강무경(姜武京, 1878-1910) 두 의병장의 개인 사진(두 사진은 독립기념관에도 소장)과 달리, 풍치의 동굴 속에서 피신하다가 잡혔다는 가족사진에서는 그들의 의연한 자세와는 달리 그동안의 생활을 엿보게 하는 그들 아내들의 초췌한 모습이 보였고, 이 사진이 어떤 경위로 어떻게 준비되어 체포 직후에 찍혀졌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병탄을 의도하던 통감부와 주차 헌병대 사령부로서는 항일 투쟁에 목숨을 거는 의병들의 사투에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이강년(李康秊,1858-1908), 허위(許蔿,1854-1908) 같은 13도 창의병(13도 연합 의병대)의병장 등이 사형을 당하자 그 파장으로 항일 세력이 전국 규모로 확대되고 있었기에, 일본으로서는 병력 투입과 동시에 체포된 의병장들에 대해 민심을 자극시키지 않고, 일본의 이미지화를 위해 깨끗하게 예우를 갖추게끔 한 뒤 사진을 남기게 한 것 같았다.

체포 현장에서 증거 사진까지 남기려고 사진사를 동반했던 점과 더불어 의병 초토화 작전으로 항일운동 세력의 궤멸을 노리고 일본에서 파견된 임시 파견군이 체포를 했다는 설명의 사진을 손에 들자 그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일 운동으로 지키려 했던 [조국]이라는 개념, 망국의 민족이 되는 치욕을 거부하고 삶에 연연하기보다 국권회복을 위한 우국충절의 정신을 관철시키려 했던 그 무게가 가슴 가득히 느껴졌다.

한편, 다른 한 장의 사진은 잡혀오거나 자수한 의병들을 전남 관찰사 신응희가 훈계하는 사진이었다. ‘훈계라...’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필자가 봐왔던 처참했던 의병들의 사진들이 뇌리를 스쳐 눈물샘이 넘칠 것 같았다.
비록 다섯 장의 사진이었으나 당시의 항일 의병들의 생활과 그들의 각오, 그들을 대대적으로 멸하기 위해서 준비된 군대와 밀고의 결과, 그들이 지키고 우리들에게 남겨 주려고 했던 사회 등을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1897년의 명성황후 살해와 단발령 강요, 일본의 한국 병탄의 움직임이 노골화 되자 이에 항거하며 일어나기 시작했던 의병들, 그 뒤 러일전쟁 이후 노골적인 식민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민종식, 최익현 등이 이끄는 의병대가 일어나고, 그들이 진압된 뒤, 1907년에 전국적으로 비밀결사인 신민회가 결성되었다. 그 해 7월에 헤이그 밀사 특파를 이유로 고종이 폐위 당하고 군대가 해산 당하자 그 군대 세력이 가세하여 항일운동은 한반도 전역에서 거세졌고, 일본군은 헌병 경찰의 증강과 초토작전에 최신 무기를 도입하여 의병 탄압을 철저히 하게 된다. 그에 항거하는 수많은 의병들을 폭도라는 이름으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호남의 의병 집중 학살이 된 ‘남한 폭도 대토벌’을 벌인 일본군의 집중 공격으로 인해 수많은 의병들이 희생이 되었고 전해산, 심남일, 강무경 의병장들도 이 시기에 밀정의 밀고로 인해 체포되어 30대의 젊은 나이로 대구 감옥의 형장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비록 100년이 넘은 사진들을 통해 다시 새겨보는 그들이었지만, 분명 후세의 필자에게 무엇인가를 당부하고 싶어서 이렇게 만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교원양성 대학에서 한일 근대사를 담당하는 필자가 마주한 100년 전의 의병장들. 그들은 필자에게 ‘그들이 살다 간 이유를 한일 사회에 널리 알리고, 결코 침략 전쟁을 용인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 결코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다짐.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두 번 다시 그런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를 확인하고 직시하며 기록하여 미래의 거울로 남겨서 기억해야 한다는 점. 절대로 쫓기고 쫓고 침략하고 당하는 불행한 삶을 남겨줘서는 안 된다’는 그런 당부를 확인하게 만든 시대를 초월한 운명적 만남이 아니었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열람한 의병장들의 사진을 소개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다시금 나라를 지키려고 단 하나뿐인 목숨을 내 놓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감사했다.
사회를 결코 불안 상황으로 밀어 넣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하며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 후세들의 사명임을 상기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여름 방학을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 자신의 주변 역사부터 훑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 역사를 알아야 세계화도 가능함을 잊지 말자.

   
▲ 전해산 의병장, 사진에 "전남폭도 대수괴 전해산"이란 문구가 있다.

   
▲ 강무경 의병장

 

   
▲ 심남일 의병장

 

   
▲ 체포 당시의 심남일 강무경 의병장 가족들

   

▲ 메이지 42년 10월 전라남도 목포의 영광 부근에서 포획 및 자수한 폭도에 대하여 전라남도 관찰사 신응회가 훈계하고 있다. 고지 중단의 일장기가 뒤집힌 (그 뒤 건물)것은 목포 이사청. 헬멧 형 모자를 쓴 사람이 신 관찰사이다.


   
▲ 일본군이 경성의 개선문 안으로 들어서며 대대적인 개선식을 행하고 있다.

   
▲ 1915년에 신의주와 안동현 사이에 개통된 열차가 압록강 교량을 건너가고 있다.

   

▲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세 의병장의 사진에 붙인 설명문 내용>

전해산 : 전라북도 영광 부근을 근거로 하여 영산강 이북 지역에 있어서 수괴(우두머리) 중의 거벽(巨擘)으로서 통상 부하 200 내지 300을 거느리고 있었다. 메이지 42(1909)년 12월18일 전라북도 장수에서 헌병에게 체포당함.

심남일 : 부하 약 200 내지 700을 거느리고 전라남도 영산강이남 일대의 지역을 횡행한 폭도 수괴 중의 거벽이니 메이지 42년 10월9일 부장(선봉장) 강무경과 함께 임시 한국 파견 보병 제2연대 제3중대에 전라남도 풍치(월정장 북방 약2리)암굴 안에 잠복 중 포획함.

강무경 : 심남일의 선봉장으로서 전라남도 능주, 장흥, 보성 부근을 근거로 하여 부하 약 200 내지 500을 거느리고 횡행하여 메이지 42년 10월 9일 임시 한국 파견 보병 제2연대 제3중대에게 전라남도 풍치(월정장 북방 약2리) 암굴 안에 잠복 중 포획함.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