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11.30. 경향신문 <특파원칼럼> /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

▲ 오관철 특파원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미국은 중국과 전략경제대화 채널을 구축해 2009년 7월 1차 회의를 워싱턴에서 열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중이 21세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가열찬 대(對) 중국 공세를 보노라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타고났다는 결의마저 느껴질 정도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다자 외교무대에서 ‘스마일 외교’로 대응하고 있다. 스마일 외교는 중국이 가깝게는 인접국, 멀리는 아프리카와 중남미까지 경제원조 협력을 통해 세력을 넓혀온 외교전략을 일컫는 용어다. 중국이 보기에 미국의 압박은 새삼스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이 진정한 전략적 변화인지, 대선 때마다 나오는 중국 때리기인지 중국 지도부가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소멸될 미국의 압박이라고 평가절하해도 최근의 미국 외교가 중국에 던지는 의미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 중국을 옭아매려 하는 데 있어 중국이 일정 부분 원인제공 역할을 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현대화의 주춧돌을 놓은 덩샤오핑(鄧小平)은 후배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외교정책에서 “절대 선두에 나서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흔히 회자되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다. 갈등과 충돌을 피하고 경제발전에 집중하면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에 나선 지난 30여년 동안 자원과 시장개척을 위해서라면 어떤 나라와도 손을 잡았다.

그러나 미국의 네오콘처럼 중국에도 신보수주의자들이 있는 법이다. 도광양회 전략은 강대국을 향해 질주하는 중국의 위상과 비교할 때 너무 소극적이란 내부 비판이 꿈틀댔다. 중국은 이들의 목소리를 흡수하면서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춘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평화로운 부상’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진 못했다. 예컨대 지난해 일본과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두고 영토분쟁을 벌일 때 중국은 민족주의적 감정까지 조장하면서 한판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싸고는 세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무리수를 남발했다. 남중국해 문제만 해도 핵심이익임을 선언하면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노선을 채택해 결과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자초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초강대국이란 항상 적을 찾기 마련이며, 옛 소련이 몰락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벌인 군사적 패권 경쟁이었다. 중국은 앞으로 중국 위협론의 증거를 찾으려는 미국 네오콘의 눈초리를 더 의식할지도 모르겠다. 외교에도 소프트파워를 겸비해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외교를 펼쳐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미·중 수교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양국 간에 냉전이 발생하면 태평양 양안에서 한 세대에 걸쳐 발전이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대국을 끼고 살아야 하는 운명인 우리로서도 미·중 갈등은 이로울 게 없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반면 정치·안보는 미국과 밀접하다. 국내의 한 학자는 우리의 대외 경제활동과 정치군사 분야 사이에 이 같은 ‘불일치 딜레마’가 있다고 표현했다.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고개를 숙였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좋아하기엔 우리의 처지가 간단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