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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의 과거는 완료형이 아니다 - (2)
한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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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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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산 / 작가. 세종대 인문과학대 교수 ]


2.

   
▲ 한수산 세종대 교수

“풀에 덮인 묘들이 어둡지요. 거길 뚫고 들어가서 내 키보다 높은 나무들의 가지를 쳐내고 풀을 깎고 나면 솨악 소리가 나듯이 햇살이 묘지로 비쳐듭니다. 그때는 참 기쁘지요. 후손으로써 이분들에게 빛을 되찾아 주고 있다는 그런 느낌일까요.”
묘지의 풀을 잘라내고 난 서병철 씨가 철책 안으로 따라 들어서는 나를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의 작업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수없이 합니다. 이미 부서지고 깨지고 녹슬고, 사진은 떨어져 나가고 비문이 뭉개져서 읽어낼 수 없는 수많은 묘비들을 봅니다. 사, 오십 년 만에 조사를 하는 건데... 단 한 기의 묘소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생각합니다. 유주노사할린스크 제1묘지 전체를 밟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누락되는 묘가 한 기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3차례를 뒤지며, 다지고 나아가는 겁니다.”

서병철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을 끝낸 그들과 함께 땀 냄새가 뒤엉킨 몸으로 숙소로 향했다. 현관을 가득 메운 장화, 어지럽게 널린 빨래들, 집안 어디에도 안락한 저녁시간을 위한 도구가 없다. 달랑 하나뿐인 TV가 전부다. 그날 저녁은 어묵탕이 주 요리였는데, 요리를 한 김기열 씨의 솜씨는 ‘가게를 내도 먹고는 살겠다’ 싶게 일품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휴식도 없이 조사원 전원이 식탁 주위에 둘러앉아 토의에 들어간다. 벌목꾼처럼 일을 했으면서도 술 한 잔이 없다. 그날의 작업내용을 검토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그날의 토의내용에는 중요한 안건이 있었다. 이후에 이 일을 수익사업으로 수주한 팀이 들어와 조사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때 그들에게 우리가 한 작업이 표준 매뉴얼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철저하게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책임감, 이 점은 조사원들의 토의과정을 지켜보는 나에게 작은 감동이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또 있었다. 한인묘지가 분명한데 묘비조차 없는 무연고 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에서 오는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나무에 표시를 하는 테이프 작업만 해도 그렇다. 나무에 테이프를 감고 번호를 매겨 놓으면 새들이 와서 ‘이건 또 뭔가’ 싶어서 쪼아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련번호가 매겨진 표지가 풀어져나가면 큰일이니까, 새가 쪼아댈 수 없이 테이핑을 할 방법을 찾기로 하며, 토의는 계속되었다.

“‘여기서 수십 년, 고향 갈 날을 기다리고 누워 계셨다 생각할 때 우리가 빠뜨리고 놓치면 기다리던 버스가 떠나버리는 격이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토끼몰이 하듯, 쥐 잡듯이 현장을 철저하게 누비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서 책임감으로 무장된 신뢰가 느껴졌다. 이번작업에서 서병철 씨가 맡고 있는 역할이 바로 책임조사원이었다.
“키가 넘게 자란 머위가 앞을 가로막아도 자르고 나가기가 차라리 쉽지요. 가시덤불을 뚫고 나가자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가 있어요. 차라리 머위가 그립다. 머위대가 그리워.”
이런 말을 들려주며 환하게 웃는 유일한 여성조사원 이은영 씨. 자려고 누우면 눈앞에 머위대만 너울거리고 잠이 들어도 머위 대를 치고 나가는 꿈을 꾼다고 했다. 전남대 인류학과를 나와 중앙대 대학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다. 2006년부터 시민운동에 참여, 현재 KIN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내 조국, 내 민족, 내 존재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상보다 작업 성격이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다는 점은 사전조사를 했던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묘비가 쓰러진 것도 있고 흙더미에 묻힌 것도 있습니다. 이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살피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지요.”

조사 작업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은 묘지 안 깊숙이 들어갔다가 한치 앞이 안 보여 길을 잃었을 때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반장 김기열 씨의 철수명령이 없어, 빗속에서도 방충복 위에 비옷을 입고 일을 하기도 했다. 모든 조사원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말이었다. 모두가 빗속에서 작업을 계속했는데, 비가 오자 기온이 떨어져서 추운 데다 온몸이 젖으니 걷기도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거의 없습니다. 이 분야 사람들은 서로 챙겨 주고 배려해 주니까요.” 시민운동에서 부딪치는 힘듦보다는 오히려 이 분야에서 일하며 느끼는 정책의 경직성이랄까, 정부 관계자들에게서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는 말도 그녀는 잊지 않았다.
윤병호 씨. 여수가 고향으로 중대 일어일문과를 다녔다. 다부진 체격에 수염을 기른 그의 전공분야는 애니메이션이다. 홈페이지 제작회사에서도 일했고 단바망간기념관 복원사업 때는 그 포스터를 그리면서 KIN과 인연을 맺었다.
“묘지로 동포3세 되시는 분이 찾아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시아버지가 남겼다는 토지 증명서를 가지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뭔가 조국과의 끈을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동포들이 한결같이 느끼는 ‘뭔가 속 시원히 해결이 안 되는 실망감’, 윤병호 씨는 그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탐방로를 따라 새로 구역을 나누는 일을 혼자 하다가, 여기까지 끌려와서 이분들이 죽고 묻혔구나 하는 생각을 하자니, 슬픈 생각이 치밀더군요.” 윤 씨가 고개를 숙이며 나직하게 들려준 말이었다.

현장의 작업책임자로 주방장(?)까지 도맡아 하는 김기열 씨, 괴산에서 친환경농장을 운영한다. 청주에서 자랐고 82학번으로 서강대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학생운동으로 1년간 복역한 후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지만 스스로는 ‘밥벌이가 절실했다’고 겸손해 한다. 프레스 용접 등 일도 많이 배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는 그는 광고회사에도 몸을 두는 등 사회생활을 하다가 1994년 귀농을 결심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수확량을 늘리는 것이 목표인 ‘증산이 최우선’인 시대와 거기 수반되는 농약 사용의 거부감 때문에 친환경농장을 시작했다. ‘몸에 농약 묻히기가 싫었다.’고 잘라 말하는 그는 ‘적게 벌고 적게 쓰자’는 저소득 저소비를 생활원칙으로 지키며 살고 있다. 또한 이미 4채의 한옥을 지어낸 한옥전문가이기도 하다.

알고 지내던 서병철 씨가 찾아와서 “형이 함께 가서 일해 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은 것이 사할린으로 오게 된 계기였다. 역사적으로 등한시되었다는 사할린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사학도로서 사할린을 몸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이 일에 나서게 만들었다.
“묘지로 동포 분들이 찾아와서 도와주기도 하는데,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깨끗한 우리말을 들으니 너무 좋다’는 말씀에 감회가 새로웠지요. 그분은 묘지의 풀을 깎고 나서 우리가 성묘를 가서 하듯이 담배를 붙여서 조심스레 비석 앞에 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할린에 와서 ‘앞으로 할 일이 참 많구나’ 하는 각성도 있었지만 이 각성은 묘지 실태조사를 해나가면서 ‘이건 너무 늦지 않았는가’ ‘다들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나’하는 자책과도 연결되었다는 김기열 씨.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할린에 와서 그가 몸으로 만난 한국근대사의 서러움, 아픔은 앞으로 그가 살아갈 삶에 많은 의미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서 동포들과 만날 때마다 저들과 나는 같은 민족이지만 저 한인들 사이에서 나는 외국인이구나 하는 이질감을 또한 느끼지요.” 그러면서 그는 한옥 짓기 전문가다운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사할린에 한옥으로 된 한인회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생각하면... 안타깝지요.”

조사원 가운데는 20대의 어린 조사원이 2명 있다. 사진 자료 정리를 맡은 이은규 조사원은 현재 모 대학 영상학과를 자퇴하고 진로를 바꿀 준비를 하는 와중에서 이 작업에 참여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여권을 낸다는 것이 단수여권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오민섭 조사원은 사회복지학 전공의 대학생이다. 일본 단바지역의 망간탄광 기념관이 폐쇄되는 것을 막아 다시 세우는 청년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작은 체구의 아버지가 인천공항까지 나와서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그는 함께 작업하는 선배 형들이 ‘신기하다’고 했다.(숙소에 돌아와 한담을 나누다가, 20대의 어린 조사원들은 3, 40대의 형들이 신기하고 3, 40대의 조사원들은 여기까지 찾아와 모기에 뜯겨가며 자신들을 취재하고 있는 나를 신기하다고 해서 함께 웃어야 했다. 거칠게 말해서, ‘돈벌이도 안 되고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찾아다니는 우리 모두가 신기하게 세상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현장조사의 마지막 작업은 최신 디지털장비를 이용하여 위치를 GPS 좌표로 정리하는 일이다. 여기 사용되는 모델은 LEICA ZENO 10으로 오차범위가 1m 이내인 첨단 장비다. 스위스 본사에 의뢰하여 장착한 유주노사할린스크 현지 전자지도에 묘지의 위치 값이 실시간 저장된다. 이렇게 해서 블록맵이 만들어지고, 훗날 유족들이 묘지를 찾을 때 GPS보다는 블록맵의 정보에 의존할 확률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주변 지형지물의 특이성을 자세히 기록하게 된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묘소에 안내표지판을 붙이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삼가 고인께 조의를 표합니다.’로 시작되는 안내문은 사할린에 강제동원 되신 분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유족들이 원하실 경우 희생자의 유해를 국내로 보내오는 사업을 위하여 남사할린 전역을 대상으로 한인 묘지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유족 또는 연고자께서는 연락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조사원들과 함께 하는 동안 내내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왜 풀이 눈앞을 가리고, 몸은 땀으로 뒤엉키며, 모기가 물어뜯는 이 한여름에 꼭 이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의구심은 조사원들에게는 우려가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작업하기 좋은 시기가 있는데 왜 하필 지금인가. 풀이 너무 자라서 베어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뜨리면서 나아갈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하나라도 혹시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작업하기 좋은 시기에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풀을 베어내야 진입이 가능함으로 해서 노동의 강도가 그만큼 높아짐은 물론 시야확보조차 어려워서 묘소를 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모든 조사원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었다.

왜 시야를 가리게 풀이 무성한 이 한여름에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풀린 것은 얼마가 지나서였다. 여기에는 정치권의 파행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의 여파로 ‘사할린 강제동원 조선인 묘비 전수조사’ 예산도 함께 물거품이 됨으로 해서 위원회는 자체 예산을 쪼개서 이 작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할린시의 도시개발로 인해 곧 한인들이 묻힌 공동묘지가 없어질 상황인데도 정치권의 파행이 이렇게 만들고 있다.

현지의 동포들이 들려준 이야기로는, 작업하기에 제일 적합한 시기는 사할린에서 눈이 녹고 풀이 무성해지기 전인 4월에서 5월이라고 했다. 작업의 능률도 올리고 작업량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두고도 예산의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기를 놓치고 있는 이 우매함을 어찌할 것인가. 시간은 신도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정치는 과거사 정리의 기회까지 잃게 하는가 묻고 싶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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