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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서 호남 호북성 기행-루산의 미려산장과 서양인 별장지, 화경, 도연명 기념관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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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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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 벅의 별장
추운 산정에서 따뜻한 음식으로 몸을 녹인 뒤, 우리는 두 대의 마이크로버스에 나눠 타고 장개석과 모택동이 즐겨 다녔고, 그들만의 비밀리의 역사가 이뤄졌던 별장 ‘미려산장’(180호 건축물)과 그 주변에 세워진 ‘대지’의 작가 펄 벅의 별장(310호 건축물) 등을 보면서 눈꽃이 절정을 이루는 설경의 여산 별장지를 걸었다.

장개석은 아내 송미령(宋美齡, 상하이의 기업가 송가수의 셋째 딸로 재벌가 공상희의 아내 송애령과 손문의 아내 송경령의 동생)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미려산장이라 붙인 이 산장 안에는 신변 보호 탓인지 꽤 많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작 그들이 생활한 공간의 건물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장개석이 타이완으로 간 뒤에는 정적으로 견원지간이었던 모택동이 사용을 했으나 비품 시설 등은 그대로 사용했다고 하니, 주인이 바뀌면 다른 사람 사용한 것을 전부 버리고 새로이 마련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 하는 바가 많았다.

자그마한 개천 앞쪽 하동로(河東路), 미려 산장 안에는 손문의 ‘박애’ ‘인류대동’이란 글들이 걸려 있었고, 모택동의 편지나 주요 관계자들의 글들이나 책이 나프탈렌(좀약)이 뿌려진 유리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1937년 7월 10일(7월7일에 중일 전쟁의 발단인 노구교사건 발발) 당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민당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던 김구는 중화민국 정부대표로부터 초청을 받아 이 루산 별장지에 왔었다고 한다. 장개석이 제2차 국공합작을 위해 회의를 열었던 곳에 김구가 초청을 받아서 머물렀던 이 여산(루산)은 한반도의 근대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라니 의미가 새롭다. 이 여정을 통해 장개석 혹은 중국 국민당과 김구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딘가에 잃은 나라 되찾으려고 모색을 하던 그의 흔적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필자가 좀 더 심화 있는 연구를 하게 되면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발길을 펄 벅의 별장 쪽으로 돌렸다.

   
▲ 미려산장
별장 주변에는 요양원이나 병원들이 눈에 띄었고, 미려 산장 맞은편의 주은래 기념관의 반대편에 조성된 서양인들 별장지에는 100년이 넘는 서양식 건축물 혹은 별장들이 많이 남겨져 있었는데, 대부분이 강서성의 문물보호단위(우리식의 문화재)로 지정되어져 있었다. 만약 독자들이 기회가 있어서 미려 산장 혹은 펄 벅 산장을 찾는다면, 근대 건축사 뿐 아니라 중국의 근대 서양인들의 활동을 아는데도 중요한 단서가 될 자료가 펄 벅 산장 맞은편의 펄 벅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시간을 내서 당시의 별장 개발 계획과 서양인 별장촌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미려산장에서 펄 벅 산장으로 가는 중간 중간에는 좁고 긴 돌계단이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무거운 생각들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숲속의 그 돌계단을 오르고 싶었다. 그 길에서 도로 쪽으로 내려오면 돌로 만들어진 성당이 있다. 영국에서 많이 본 듯한 건축물이었기에 별장지를 걷다 보니 필자가 마치 영국의 어느 시골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속의 서양인 별장촌…그리고 제국주의 서양 문물에 대한 동경과 배타의 모순…그런 시대적 아이러니 속에서 동아시아 사회는 근대사를 걸어온 것일까?

   
▲ 화경정
눈꽃이 숲속 나무 가지위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산을 내려와 그림같이 아름다운 호반의 화개산사로 갔다. 망강정과 망파정, 백거이가 거닐었을 정원과 호수 옆에 세워진 백거이의 기념관(백거이 草堂)과 화경정에 도착하자 모택동이 ‘花徑(꽃길)’이라고 적은 글씨가 자그마한 정자 밑의 돌 위에 새겨져 있다. 각인된 글씨를 붉게 칠한 돌을 우물 같이 판 곳에 넣고서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동그란 지붕을 입힌 ‘화경정’의 디스플레이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동정호의 악양루가는 길에서도 보게 되는데, 동일한 각도에서 보거나 위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아래를 보면서 상대를 의식하게 만드는 심리도 관광 소재의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자연 환경을 최대한 살려서 그와 어우러지도록 조성을 하고, 다른 관광지나 유적지와는 차별을 둬서 그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이 다시 찾게끔 만드는 관광객 유치 전략의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숲 속 곳곳엔 아직 녹지 않은 얼음길로 미끄러웠지만 숲의 나무와 호반의 풍광이 싱그러운 봄 향기와 어우러져 혼탁한 도심 생활에 찌들었던 정신을 맑게 해 줬다.
우리 가이드는 일행을 위해서 가는 곳곳에서 백거이나 도연명, 이백 등의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생경한 음색으로 한중 양국어로 읊어주었다.
   
▲ 도연명의 묘
잠시 자연에 취했던 마음을 추스린 일행은 구강시의 여산을 넘어서 구강현에 있는 도연명 기념관으로 서둘렀다. 중국 최고의 시성으로 뽑히는 그의 명성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였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버스에서 내려서 산 쪽의 연명로를 조금 걸어야 했다. 이미 폐관 시간이 가까웠기에 한산하기도 했지만 고풍스럽고 자연스럽게 조성된 도연명 기념관의 정원이나 사료관을 거닐며 도연명 자료를 본 뒤, 산 중턱에 마련된 그의 묘(진짜 묘는 근처의 군부대 안에 있다고 한다)에 올라 속세를 멀리한 듯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도연명에 취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김운중 시인이 세계 여행담과 더불어, 초코파이나 각종 파스, 건강약 등을 가방에 듬뿍 갖고 오셔서 이제 슬슬 필요한 사람들이 나올 거라며 다양한 위트와 재치로 모두에게 나눠주셔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연로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김운중 시인이나 마른 오징어 등을 나눠주신 오길순 단장, 매력적인 맑은 웃음으로 군것질거리를 나눠주시던 김혜자 씨, 모택동 생가에서 군 고구마로 따스한 기억을 남기게 해 주신 김재란 씨 등의 배려심 많은 분들로 인해 일행의 여행은 지칠 줄 몰랐던 것 같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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