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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서, 호남, 호북성 기행- 귀원선사, 적벽대전 유적지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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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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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원선사
나흘째 아침에는 무한시의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장강 서쪽 한양구에 있는 임제종 선찰로 유명한 귀원선사로 갔다. 건축물이 2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청대의 유명 사찰로서, 신해혁명 때는 이곳 승려들도 혁명에 가담하여 중국을 바로 잡으려 했다는 설명문이 사찰 뒤쪽 벽면에 붙어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사찰 입구의 큰 향로에 향을 피우고 길고 빨간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도 아시아나 유럽 등의 각종 종교 시설을 많이 다닌 편인데, 불교에 있어서는 타이완이나 홍콩, 태국, 일본, 한국 등의 종교적 의식은 비슷하나 사용되는 불교용품 등은 지역마다 특징이 있다. 여기는 사찰 입구의 양쪽 입구 나무에 금박지로 감싸고 그 가운데에 목탁을 두드리며 앉아서 경을 읊거나 참배를 할 수 있는 노천 기도장 같은 것이 화려한 빨간색 연꽃이나 붉은 등 아래에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 근처의 법당 안에서는 10명 정도의 노란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앉아서 의뢰를 받은 신자들이 앉아 있는 앞 쪽에서 열심히 경을 읽고 있다. 안쪽 대웅보전이나 나한당, 장경각, 대사각 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자신들의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종교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유럽과 이집트 등지의 성당, 교회, 수도원과 모스크 등을 돌면서 많이도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종교인 지인들을 만나면 사회적 역할과 종교인의 책무에 대해 역설을 하곤 한다. 개개인의 이기적 사욕만으로 종교를 이용하고, 그것으로 인해 종교단체 시설이 풍요로운 부의 축적 구조가 된다면 그것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종교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올바른 가르침으로 사회가 바로 갈 수 있도록 권력층을 꾸짖고, 사람들에게 사회적 일원으로 성실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깨우쳐주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겐 용기가 될 수 있게 삶의 의미를 제시하며 자성을 하고 힐링이 될 공간과 환경을 제공하여 건전한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겸허한 자세로 타의 거울이 될 때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한다면 그건 정치적 독재자와 차이가 없다. 독선적인 자기주장만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며 자신의 종교와 무관한 소중한 생명들을 가차 없이 학살하는 잔인함이 아직도 지구촌 각지에 만연하기에, 성숙한 모습으로 책임 있는 종교인들의 사회적 역할이 필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종교인들의 종교와 국경을 넘어선 지구촌의 평화를 위한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한당의 500나한상 얼굴들을 보며 밖으로 나와, 절 뒤쪽으로 가니 거대한 관음상이 눈에 들어온다. 참 크게도 지어놓았다. 그 뒤쪽에는 새롭게 큰 사찰을 짓고 있는 게 보인다.
거대한 종교 시설과 종교적 의미를 생각해 보며 버스로 돌아와서는 다음 목적지인 적벽대전의 유적지로 향했다. 영화 Red Cliff의 장소, 손권의 책사 주유와 제갈공명이 책략을 펴서 조조 군을 대파한 곳. 열세로 이길 가망성이 없었던 손권 측을 공명의 지혜와 주유의 용단으로 승리를 이끈 곳. 비록 태사자나 다른 장수들의 참전이 허구였다는 허구설이 논란이 된 대전이긴 하지만, 삶의 순간에서 필요한 많은 지혜와 방책이 내포된 이 적벽대전은 매력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 주유 장군상
버스로 한참을 달려서 적벽대전 유적지에 도착하니 주유 측 깃발이 곳곳에 펄럭인다. 입구 맞은편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삼국 적벽 고전장’이라 적힌 입구를 통과하여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은 적벽의 흔적을 느끼려고 열심히 걸었다. 2-3시간 남짓 그 넓은 곳을 천천히 걸었더니 오랜만에 다리가 아파왔다. 1981년에 호북성 제2호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된 이 유적지에 우선 관우를 모시는 사당에 들러서 제갈량의 각종 계략을 설명해 놓은 계단 위를 한참 올라가서 수계당 산을 내려가니 1000년이 된 은행나무 뒤편으로 유비의 또 다른 책사의 한 사람이었던 봉추를 모신 봉추암이 나타난다.
어두운 실내에 모셔진 봉추상 아래 오른쪽에는 관상 책을 보고 있는 현지인이 앉아 있다. 중국식 관상은 어떻게 보는 걸까? 치기를 느끼면서도 언어 소통의 한계가 있기에 밖으로 나와서 조금 걸으니 녹지로 조경이 깔끔하게 되어있는 넓은 공원이 나타난다. 곳곳에는 봉황과 용(봉추와 와룡의 의미인 듯하다)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삼국지 관련 인물의 조각상들이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도원의 결의를 하는 유비, 관우, 장비와 삼고초려를 하는 유비와 공명의 조각 등이 인상적이다. 좀 걷다가 계단을 올라 배풍대 안으로 가니 제갈공명 등을 모신 사당이 나온다. 주유의 진영을 지나서 적벽대전 진열관이라는 자료실에서 다양한 자료를 본 뒤, 적벽마애석각(Chibi Cliff Inscriptions)이라는 안내판 쪽으로 올라갔다. 몇 군데 건어물이나 기념품을 파는 상점가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주유의 조각상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장강 쪽을 보니 그야말로 확 트인 강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맑은 날씨 같았다면 강 건너의 움직임도 쉬이 읽을 수 있는 거리처럼 느껴졌다. 숱한 피눈물로 물들었던 역사가 언제 있었냐는 듯 강물은 도도히 흘러간다.

   
일행들은 절벽 바위에 적힌 붉은 글씨의 ‘적벽’ 밑까지 갈 수 있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된 ‘적벽’의 유래에 대한 설명문이 있어서 읽어보니, ‘적벽’은 적벽산 서쪽 위에 있는데, 글자 한자의 길이가 150, 폭이 104Cm이고,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지휘를 맡아 승리한 뒤, 강변의 절벽을 보니 불에 비춰진 듯 새빨갛게 되어 있어서 왕성한 혈기에 차고 있던 검으로 ‘적벽’이라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당나라나 명나라 때 새겨진 설도 있다는 설명이 적혀져 있다.

삼국지는 ‘바빌2세’ ‘요술공주 새리’ ‘수호전’ 등을 그린 만화계의 거장 요코미츠 미츠데루(横山 光輝)의 ‘삼국지’ 만화가 일본에서 국민적 인기를 모았고, 영화 ‘적벽대전(Red Cliff)’에서 제갈공명 역을 맡은 사람이 일본인 ‘가네시로 다케시’였기에 일본인 방문객도 많은 듯했다. 요즘 일본에는 지하철이나 관광지 안내 표시판 대부분에 한국어가 거의 새겨져 있다. 그만큼 한국인 방문객이 늘었다는 의미다. 중국도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 자국 내의 동북3성에 사는 조선족을 생각한다면 한국어 안내판의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향후는 다국적 안내문 등의 배려가 관광객 유치의 중요한 전략이고,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사회가 풍요로워지는 첩경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적벽성 안의 적벽탑으로 이동했다. 거창하게 꾸며진 시설이지만 방문객이 적은 탓에 한산한 편이었다.

   
▲ 적벽의 주유 진영
우리는 적벽의 여정을 마친 뒤, 악양으로 이동했다. 버스 이동시간이 꽤 긴 탓에 헌금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칭다오(청도) 캔 맥주 등이 준비되었고, 오길순 단장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이야기나 에피소드, 시 낭송, 노래 부르기 등으로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분위기가 무릇 익는다. 이미 씨나 유시경 씨, 이은경 씨, 정지민 씨 등의 즐거운 노래 장기와 더불어 노화욱 교수의 경제 이야기, 차옥혜 시인의 아름다운 시 낭송 등이 이어진다. 부부 동반인 분들은 가문의 명예를 건다면서 남편들에게 바통을 넘긴다. 한국식 유머가 즐겁기도 하고, 일본에선 들을 수 없는 말들이기에 신선했다.
필자도 지명을 받았기에 일제 강점기 때 목포의 거지왕자라 불린 윤치호와 결혼 후, 한반도에서 버림받은 고아 3천명을 길러 낸 다우치 치즈코(한국명 윤학자)씨의 소개와, 일본의 아름다운 국립공원 가미코치에 숨겨진 비화 등에 대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마침 같은 조의 권현옥 씨 딸이 며칠 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시간을 갖기도 했다. 엄마보다 엄마의 짝꿍인 노정숙 씨가 인터넷으로 먼저 검색해서 알렸다고 하니 그들의 우정 또한 보기 좋았다.

그렇게 웃다 보니 어느새 호남성의 고도 악양(웨양)에 도착했다. 갈수록 식사 내용도 푸짐해져 만족을 얻은 뒤, 근처의 대형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더니 놀랄 만큼 다양한 과일들이 많았다. 강남지역의 특성인지 수입산 망고나 두리언 종류를 비롯해서 석류, 자두, 귤, 사과 등, 실로 풍부한 과일들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날씨만 좋다면 호남성은 참 살기 좋은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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