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 문화일보 논설위원


가슴 속을 후벼파는 말 한마디에 소름이 도톨도톨 돋아난다. 공중 목욕탕 옷장 앞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 60대 초·중반 노객 두 분이 주고받는 장탄식. “노무현 5년도 견뎌내며 살았는데, 이명박 4년 몇개월을 더 견디지 못하겠나!” 청와대는 이런 소릴 듣고는 있는가? 이것이 민심이다. 더 험한 말도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 이명박을 꾹꾹 소리나게 눌러찍었던 유권자들이 집권 8개월을 지켜보면서 도달한 심리적 상태는 ‘절망적 허탈감’이다. 좌파정권 10년에 맞서 절규하며 저항하다가 마침내 우파 정권을 세운 ‘국가중심세력’, 이들이 지금 이명박 리더십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관심 끝!’ 하는 무관심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정신적 공황이다. 국가중심세력이 기대했던 것, 뭐하나 제대로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세력 청산같은 건 기대도 못할 형편, 농사 짓지 않고 쌀농사 보전금 타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한명 자르지 못해 우물쭈물,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 것도 없지만 할 것도 없어 보인다. 절망. 강부자 인사→촛불시위 3개월→9월 위기설→금융위기, 또 어떤 위기가 나올까? 아예 위기를 몸에 달고 사는 정권이다.

매사, 촛불 들고 나올 사안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전 국민이 좋아할 것 모두 골라 정책 선물세트로 내놓는 재주, 잔꾀만 부리고 있다. 정책 대부분이 잡탕밥 만들어 비벼먹으려하듯이 잡동사니 총집합. 저탄소 녹색성장하겠다고 했다가 신도시 500만호 짓는 토목건설로 돌아간 웃음거리. 국가 신성장동력 산업을 22개나 발표한다. 임기 5년 안에 어떻게 22개 분야를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얘기인가? 국정과제를 100개씩이나 내놓는다. 한달에 두개씩 해치워도 숨이 찰텐데.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이명박 대선캠프 사람들은 ‘꿀단지’에 빨대대고 단맛 빨아들여 먹듯이 공기업 사장, 감사 자리 찾아 낙하산 타고 내려가 인생역전을 도모하고 있다. 구닥다리들의 공직 재기용도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보다 더 하다. 좌파 인사들은 그대로 둔 채. 이러니, 이명박 정권을 만들어준 국가중심세력이 편을 들어주려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지지도 20%대는 성인병처럼 달고 산다. 앞뒤 옆 살펴봐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여론조사도 틀린다. 그래서 노무현 봉하마을에 철이 덜든 관광객들이 쇄도하고 노무현이 하루 4,5차례 집 밖으로 나와 호메이니 흉내내는 나라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중심세력이 이 정도의 실망과 허탈감 때문에 좌절하며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한다면 좌파 정권 10년 동안 싸울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 절대 좌절하지 말자.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혼돈에 빠진 자신들의 심리를 정리하고 중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대로 가면 보수·우파세력은 2012년 대선에서 또 막장으로 들어간다. 그걸 눈 뜨고 방치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국가중심세력은 소극적 침묵을 벗고 과거 정권과 투쟁했던 치열함보다 몇배 몇십배, 이명박 정권의 무능·부도덕·몰염치와 싸워야 한다. 혹독한 담금질하듯이 시련에 빠뜨리고, 꺼내오고 하는 방식을 반복해야 이명박 정권을 바로 세울 수 있고, 그래야 보수·우파세력이 살 수 있으며, 다시는 좌파세력이 정권을 넘보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보다 더 혹독한 야당 역할을 국가중심세력이 맡아야 정권과 나라를 살릴 수 있다. 둘째, 이명박 정권이 보수·우파의 대표세력이 아님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명박 사람들보다 더 유능하고 도덕적인 보수·우파가 차고 넘치고 있음을 보여야 국민이 ‘보수·우파 = 무능·부패’라는 도식을 깨게 된다. 대기업들의 기부운동도 이어지고, 보수·우파의 자정노력과 이론화 사업도 더 활성화돼야 한다. 셋째, 한나라당에 맹목적 충성을 보였던 습관을 버리자. 정권을 손에 쥐어줬더니 또 놀고먹는 유한(有閑)정당으로 돌아가버렸다. 한나라당 텃밭의 유권자들부터 대오각성해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국가를 위해서는 냉혹해져야 한다.

대장정!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