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중앙일보 <칼럼> /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

1993년 미국의 주류 국제관계 학자들은 일련의 학술지 논문에서 아시아의 대립 여건이 성숙해 차세대 국제 분쟁지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무엇이 국제 안보 연구의 핵심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학자들은 민족주의, 세력 경쟁, 역사적인 원한, 군비 경쟁, 에너지 수요 등이 결합돼 아시아 대국들 간의 군비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뒤 5년이 지난 98년 긴장이 발생했으나 큰 분쟁은 없었다. 10년이 지난 2003년 다시 긴장이 찾아왔으나 실제 전쟁은 모두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다. 15년이 지난 2008년에도 여전히 전쟁은 없었다. 거의 20년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아시아의 ‘대립 여건이 성숙’할 것이라는 전망은 틀렸다. 아시아에선 냉전 이후시기에 대규모 전쟁은 물론 어떤 종류의 전쟁도 발생하지 않았다. 서방의 전망과는 대조적으로 아시아 지역은 평화롭게 번영을 누렸다. 어떤 학자도 미국·일본·중국의 삼각 축이 이렇게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모든 학자가 그와는 반대로 워싱턴·도쿄·베이징 간에 어느 정도 충돌과 긴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왜 그런 예상을 했을까? 지난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세 나라는 적어도 한 차례씩 서로 편을 이뤄 전쟁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아시아에 대립 여건이 성숙했느냐에 새삼스럽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3년을 전망해보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은 근래 들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양측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으로 선박을 출동시키는 등 전례 없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양측의 비난전도 가열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도 지난 4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국회의 이에 대한 비난 결의안 채택으로 상당히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원한은 서울과 도쿄 간의 실질적인 안보 협력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앞에서도 양측은 주요 군사 정보 교환도 하지 못할 정도다.

　여기에 더해 이 지역의 국내 정치도 징조가 좋지 않다. 16일 치러질 일본 총선에선 자민당이 압승해 보수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현 총리의 민주당은 내년 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민당과 협력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는 극우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의 일본유신회와 손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아베는 더욱 우경화해 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했던 고노 담화(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 수정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서울과 도쿄 간의 긴장을 불러올 것이다. 상황은 분명하다. 한·중·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한 현상 유지는 이제 어렵게 됐으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최근 아시아 중심 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유럽과 중동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환영할 만한 발전이다. 하지만 중국의 새 지도부는 오바마의 정책을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에 아시아 중심 정책은 미·중 관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행정부 관리들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럼에도 아시아 중심 정책의 결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중 간 정치적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이미 동아시아정상회의(EAS)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방장관 회의,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그리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같은 다자기구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들이 의제를 주도하고 동남아 각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각축장으로 변했다.

　미·중 경쟁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미·중은 동북아에서 서로 상대를 다뤄온 오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 분쟁이 날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작용의 역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 중심 정책이 남중국해에서 양국 간 오판을 불러올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북한이다. 지난주 전 세계 언론은 북한 서해 미사일 발사기지에 위치한 미사일과 평양이 이를 발사하느냐에 관심을 쏟았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국가적인 과제로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해 왔으며 이번에 발사하겠다는 은하 3호는 그 결과물이다. 이를 용인한다면 이런 무기에 위협을 받게 된 이 지역 국가들이 더 강력한 무기를 자체적으로, 또는 미국과 손잡고 보유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지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미·일·중 삼국이 역사적 원한 등으로 관계가 악화하고 여기에 더해 북한의 호전성에 의한 지역 군비 경쟁이 촉발되는 것은 모두 20년 전부터 국제관계 학자들이 초점을 맞췄던 바로 그 내용이다. 당시에는 전망이 틀렸다. 하지만 2013년에는 그 예측이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