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석 / (재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

▲ 김동석 상임이사

2013년 에이팩(AIPAC,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연례총회가 워싱턴DC 컨벤션센터에서 3월1일부터 4박5일 동안 개최되었다.

미국 내 유태계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하여 1947년에 설립한 비영리 시민정치참여 단체가 바로 AIPAC이다. 매년 한번씩(3월 초순) 워싱턴DC에서 전국의 유태계 지도자들 1만여 명이 모여 조직을 강화·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미 연방의원 거의 다 참석

AIPAC은 미국시민단체로 연방정부에 등록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미국시민이면 누구든지 총회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런데 참가비가 장난이 아니다. 회의 개최 1년 전에 등록을 해야(등록비 300달러) 참가가 가능하다. 기부금의 액수에 따라서 회원의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서 철저하게 회원을 관리한다.
일반인으로 참가비만 내고서는 참가를 한다 해도 거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분리해서 진행한다. 이것이 ‘에이팩 정책 컨퍼런스(AIPAC Policy Conference)’ 이다.

이 컨퍼런스엔 유명인사일수록 서로 오고 싶어 하기 때문에 주(Keynote)연설자를 늘 대통령으로 한다. 특히 선거철이면 양당의 대선후보가 경쟁을 하면서 참가를 한다.

핵심은 ‘돈’이다. 에이팩에서 정치인에게 돈을 거두어 주는 것은 불법이다.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팩에서 누구누구가 정치를 잘 한다고 성적을 발표하면 그 성적순서에 따라서 정치자금이 모아진다. 물론 대통령, 연방 상·하원 선거를 말한다. 그래서 에이팩의 총회가 개최될 때엔 연방의회를 마치 에이팩 행사장에 옮겨 놓은 것과 다름없다.

지난 4일 월요일 저녁이 의원들의 성적 순서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상원의원 100면 중 68명이, 하원의원 435명 중 318명이 회의장에 참석 했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놓고서는 가히 ‘신(神)의 조직’이라 불릴만하다.

대학생 4천명 특별 초청

전국의 유태계 지도자급 1만4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 중에는 대학생회원(Campus AIPAC) 4천여 명이 포함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4천명 참가했다고 안내 할 때 마다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전국의 247개 대학의 학생회(Student Union) 간부를 초청 했다는 말을 반드시 덧붙인다.
올 총회 자료에선 예산의 42%(약 2억 달러)를 대학생회원(Campus AIPAC)들을 위해서 쓴다고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을 에이팩에 상속시키라는 캠페인을 아주 호들갑스럽게 하는 광경이 이색적이었다. 에이팩의 전문 변호사를 배치시킨 부스가 20여개 있었다. ‘유언 작성’ 부스이다. 갈수록 이들의 모금방식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신무기 ‘아이언 돔(Iron Dome)’

▲ 테러리스트들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다니엘 글레이저 국무부 대테러 담당 차관보

지난해에 조금씩 언급이 되었지만 아주 노골적으로 ‘이란-북한-중국’을 자신 있게 엮는다. 그러니까 ‘이스라엘-한국-미국’은 자동적이란 의미다.

이스라엘은 지난 수년 동안 미 국방부와 합작(Co-Project)으로 신무기를 개발했다. 바로 ‘아이언 돔(Iron Dome)’이다. 이란과 북한이 자랑하는 로켓포 및 야포 방어 시스템이라고 한다.
헤즈볼라, 하마스, 이란, 북한이 보유한 로켓포와 야포엔 바로 이 ‘아이언 돔’이 유일한 방어무기라고 한다. 한국이 이스라엘로부터 ’아이언 돔‘을 구입 하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언 돔’의 성능에 관한 발표장엔 이스라엘에서 발표하러 온 사람들보다는 펜타곤의 관계자들이 더 많았다. 미국이 생산한 무기이기도 하니까 미국이 한국에 저 무기를 배치하려면 그것이 곧 한국이 구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對)테러 관련 세미나장엔 국제테러자금 색출의 귀신(테러리스트들의 저승사자)이라 불리는 ‘다니엘 글레이저(Daniel Glaser)’ 국무부 대테러담당 차관보가 나왔다.
필자는 그에게 많은 것을 물었지만 아주 빤질빤질하게 핵심을 피해가기만 해서 별 소득이 없었다.

낙선 의원도 60여명이나 초청

연례 총회장(GALA)엔 거의 모든 연방의원들이 들어왔다.
에이팩 회원증을 목에 두른 필자를 보고 놀라지 않는 의원들이 없다. 참석자 1만4천 명 중에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은 2~3명뿐이다. 필자가 에이팩에 늘 참가를 하는 덕분에 이제 낮이 익어 의원들은 훨씬 안심을 한다.

에이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업은 연방의원들과의 관계다. 이번 총회장엔 지난 2010년의 중간선거와 2012년 선거에서 낙선한 전직의원들을 60여명 특별 초청했다. 최고급호텔에서 특별 리무진으로 모시는 것, 뭐든지 그들이 우선이다. 에이팩은 반드시 의리를 지킨다는 표시다.
전직의원뿐만 아니라 전의원의 미망인들도 특별히 챙겼다. 선물이 푸짐했을 것이란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12월에 사망한 하와이 출신의 일본계 상원의원 다니엘 이노우에의 미망인을 연단에 내 세워서 남편에 대한 1만여 명의 예의를 보여 주기도 했다. 이 얼마나 장기적이고 철저한 전략인가! 소수당이 되는 바람에 위원장이 아니고 소수당의 간사가 되었다고 무시하는 한국계의 로비에 비하면 정말로 세련된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 연설자 선정, 철저한 전략

총회의 주 연설자를 살펴보면 유대인들에게 비상이 걸린 것이 분명했다. 예년엔 그야말로 실속만큼이나 화려했는데 행사의 거품이 말끔히 없어졌다. 3개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에이팩의 목표다. 그 법안의 이슈에 관련된 정치인과 전문가가 전부다.

첫날엔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스라엘이 이란을 먼저 공격하는 일이 정당한 일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회원들이 얼마나 열광했는가에 짐작이 갈 것이다.

▲ 지난 4일 오전, 총회 주연설을 하는 미국 바이든 부통령

두 번째의 주연설자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원래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를 동시에 초청했는데 이것을 바꾸었다. 3월20일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을 한다는 일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에이팩 총회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아직 한 번도 이스라엘을 찾지 않았다. 미국 내 유태계들이 그 문제 때문에 초조해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과의 협상’ 이야기가 나오면서 심지어는 유태계 비상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으니 짐작할 만하다.

주연설자로 대통령과 총리를 대신할 전략을 짰다. 네타냐후는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 때문에 이스라엘에 있고 오바마 대통령에겐 에이팩 지도부가 총회결산을 갖고서 별도로 면담을 하기로 했다. 대신에 바이든 부통령을 총회장연단에 세우고 네타냐후 총리는 실시간 예루살렘에서 대형 영상으로 메시지를 30분 동안 보냈다.

연례총회 이틀째인 4일 오전 행사의 백미는 멀리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의 30분짜리 영상 메시지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당초 오늘 현장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깜작 이벤트’처럼 영상으로 등장해 1만4천명의 미국 내 유대인들이 모인 이날 모임을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진심어린 로비의 장으로 승화시켰다.

“여러분. 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준비하느라 여러분께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워싱턴에 모인 미국 거주 유대인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방문을 준비할 것입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영상을 보고 웃음을 지었지만 유대인들의 전략을 간파한 필자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이란-북한 중국’ vs ‘이스라엘-한국-미국’

이틀 동안의 공개 강연과 소집단 세미나를 통해 유대인들은 중국과 이란, 북한을 악의 축인 양 동일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이란 핵문제는 갈수록 심각해 질 것이며 이스라엘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유대인 패널들은 “이란과 북한은 분명히 핵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왔다.

세미나가 끝난 뒤 유대인들은 동양인이자 한국인인 필자에게 “한국과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손잡고 북한과 이란, 중국의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는 미국의 시민, 미국 위해 일한다”

▲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준비관계로 영상연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유대인들은 자신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라 모범적인 미국인이며,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미국의 국익과 이스라엘의 국익이 일치한다는 논리를 개발하고 미국의 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이 이스라엘의 국익에 부합하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여전히 자신들은 한국인이며, 미국의 이익보다는 한국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미국인들의 의심을 사는 것과는 정 반대다.

AIPAC 총회에는 해마다 다수의 미국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해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편임을 확인하고 간다.

이번 총회 이틀째 저녁에도 줄잡아 350여명의 상하원 의원들이 워싱턴 컨벤션센터를 찾아 지역구의 유대인 표를 단속하고 갔다. 회의에 참석한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 20명씩 조를 짜서 상·하원을 누비며 이스라엘 관련 법안을 청원한다. 이날 미국 의회는 완전히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었다.

철저히 이스라엘의 미래를 생각하는 유대인들

미국 내 한인들은 언제 쯤 유대인들과 같은 조직력과 자금력, 전략적 논리를 가지고 미국 정치를 좌우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결집이 철저히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면서 철저히 조국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해마다 드는 생각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문제를 들고 서울로 달려가 이리저리 자랑하면서 한국의 정치인들을 끌어들이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할지 막막한 생각은 결코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