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

▲ 김삼오/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먼저 우스갯소리로 시작해볼까 한다. 지난주 한인 환경봉사단체인 진우회(코디네이터 김석환)가 주관한 ‘클린업 오스트레일리아 데이(CleanUp Australia Day)’ 행사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존 알렉산더 연방 하원의원(베네롱)과 필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행사를 취재한 호주한국일보 지면에 다른 사진들과 함께 실렸다.
볼 품 없는 노인 행색이라 ‘쪽 팔린’ 것 같기도 하고, 한편 ‘높은 사람’과 서있으면 덩달아 높게 보는 우리 문화를 생각하면 신문사에 감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서울에 사는 필자의 친구 A씨는 LA교포이며 한인 단체장이다. 얼마 전 A씨가 그 지역 검찰총장 및 직원들과 함께 하는 만찬 사진을 인터넷으로 서울의 친구에게 보냈다. 그의 회답이 걸작이다. “너 미국 가서 출세했구나. 축하 한다”였다.
필자도 어쩌다가 해외동포의 고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청와대를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다. 의례 대통령을 에워싸고 사진을 찍게 되는데 모두들 득달같이 대통령 곁으로 모여 들어 필자는 제일 뒤 안 보이는 쪽으로 밀리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인데, 서울 외교가의 파티와 리셉션마다 찾아가 외국 대사나 고위직 인사들과 와인 잔을 들고 서서 담소하는 참석자 얼굴을 보여주는 화보 전문 매체가 있었다. 그런 매체가 왜 생겼고 또 오래 살아남았을까 생각해본다.

국민계몽

호주 클린업운동 하면 제일 먼저 필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전철을 우마차만도 못하게 더럽혀 놓은 스프레이 낙서와 기차 안 좌석 위에 개똥 먼지마저 붙어 있을 신발을 신은 채 다리를 얹고 있는 대다수 학생과 신사숙녀 젊은이들이다. 역 주변에 널브러진 담배꽁초와 콜라 병 등 쓰레기와 심지어는 구석에서 나는 지린내도 마찬가지다.

▲ 스프레이 낙서로 더럽혀진 시드니 기차, 사진ⓒ호주한국일보

산과 강과 물만 깨끗하면 무슨 소용인가? 어쩌다가 한국에서 방문 온 인사들과 전철을 같이 타게 될 때는 창피한 생각이 든다. 수입되어와 얼마 안 된 기차간 좌석이 신발장같이 더럽다. 기차간의 좌석에 다리를 얹는 행위는 벌금이 과해지는 범법이다. 그런데 정장을 한 우람한 경찰관이나 보안원이 앞에 나타나면 발을 내려버리면 고만이니 붙잡히기는커녕 주의를 받는 사례를 한 번도 못 봤다. 왜 사복차림의 특별 단속반 같은 걸 작동하지 못할까? 이 질문을 이 분야에서 종사하는 분에게 물어봤다. 민주주의 국가인 호주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다.

그 내막을 잘 알 수 없으나 민주주의 좋아하는 나라의 고충이다. 문제는 선진국이라는 호주의 국민들은 왜 그런 국가적 치부에 대하여 나 몰라라 인가이다. 개선책은 분명 국민계몽 또는 각성 운동이고 얼른 떠오르는 것이 대중매체다.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호주 주류매체에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필자는 알렉산더 의원과의 짧은 대화 중 이 이슈를 거론해봤다. 필자가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큰 실례가 될 수 있는 처신이다. 이 나라에 사는 소시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호주 클린업 운동의 전국 조직인 클린업오스트레일리아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하다.

진우회나 여기 한인사회가 이런 큰 문제에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형편이 열악하다. 하지만 한적하고 제한 된 곳이나마(지난번 클린업은 메도우뱅크 근처 키싱포인트 선착장 일대에서였다) 우리가 나가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고 백인과 타민족이 느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낙서 기차와 공공기물 파괴(반달리즘, vandalism)에 관한 한 한국, 중국, 일본 등 한자 문화권은 영미인들에게 좋은 반면교사 노릇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한국과 일본의 전철을 가보면 안다. 어디 낙서나 기물 파괴가 있는가? 이런 제목으로 여기 주류 매체에 교육적 기고를 할 수 있는 아시아 출신 2세들이 앞으로 나올 수 있어야겠다. 그리하면 우습게 여기던 아시아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진우회는 하루나가 쓰레기 줍는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을 위한 촉매자 역할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진우회의 아직 정식 회원이 아니다. 호주에 산 지난 35년 동안 한 때 신문을 직접 했고 그 후 기고가로서 여러 교포매체와 관련을 맺어 왔을 뿐 단체 가입은 않기로 한 초지를 일관하기 위해서다. 여러 제약 여건으로 제대로는 못하고 있으나 뭐 하는 사람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필자는 언론인, 그 가운데서 비교적 잘 교육받은 독립 마인드를 가진 언론인이라고 대답할 생각이다. 그건 믿거나 말거 나다.

단체에 들어가면 회장 자리를 하거나 못하는 문제에 휘말린다.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생산적인 문제에 대하여 신경을 쓰게 된다. 그 것보다는 내 본연의 역할에 충실 하는 게 커뮤니티를 위하여 더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커뮤니티의 이슈를 보고 들으면 문득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요즘은 건강도 유념해야겠고 또 아무리 써도 소용없다는 바보 같은 체념 때문에 그 역할도 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진우회의 클린업 행사에는 이따금 참여해왔다. 마음으로라도 지원을 하기 위하여서다. 진우회는 그 많은 한인 단체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탈정치적(apolitical, 공금이 없는 한인사회의 정치는 단체놀이가 되기 쉽다)’이면서 호주나 여기 한인사회를 위한 가장 내실 있는 기여를 남길 수 있는 모임이라고 믿고 있다. 단체이니 만큼 재원이 늘 문제가 되지만 진우회의 구진 일을 맡고 있는 김 코디네이터와 대다수 창립 회원과 그 사모님들은 봉사에 도가 트인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