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칼럼>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디자인 ]

▲ 박진배 교수

몇 해 전 서울의 한 교향악단이 카네기홀에서 연주했다. 초청 티켓을 받아 갔었는데 한국 사람이 많았다. 마치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역 주변 예식장 같았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는 이를 후원했던 은행 지점장의 한국어 인사말이 시작됐다. 촌스러웠다. 순간 '설마 국민의례까지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살짝 들면서 객석을 둘러보니 웬걸, 뉴요커는 거의 없고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다음 날 그 공연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수준 높은 연주였다" "현지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등등…. 하지만 정작 현지 신문에는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다.

또 몇 년 전, 한국에서 제작한 뮤지컬이 링컨 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이 행사도 뉴욕의 주요 미디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고기를 납품하는 한국인 상인이 표가 남는다며 전해줘 알게 된 공연이었다. 이 역시 한국에선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언론에 소개됐다.

뉴욕에 살다 보면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접하게 된다. 각종 전시나 공연은 물론, 길거리에서 비빔밥 만들어 주는 한식 홍보 행사, 한국 디자이너가 포함된 패션 이벤트 등이 심심찮게 열린다. '한국'이라는 주제 때문에 반갑지만, 실제 참석해 보면 한국인들끼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획의 허술함이나 콘텐츠의 수준, 행사 성격의 애매함 등으로 인해 맥이 빠지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행사들이 한국에서 그럴듯하게 기획되면서 국가 예산을 지원받기도 한다. 이를 지원하느라 교포 업무로 바쁜 영사관 직원들이 필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인사차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 또한 고역이다. 여기서 감동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보통 이런 행사를 취재한 국내 방송에는 "뉴욕 한복판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것을 보면 교포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인터뷰가 꼭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은 교포들의 긍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대부분 현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국 친구에게 소개하기도 민망한 '동네잔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교포들은 세탁, 의류 도매, 델리 등 힘든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직장이나 전문직에서 일하는 교포들 역시 언어를 비롯해 소수민족이 가진 장벽에 부딪히며 주류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교포들은 싸이가 록펠러 센터에서 공연하고, 서희가 링컨 센터에서 발레를 하며, 류현진이 메츠 구장에서 던지는 모습을 볼 때 신이 나고 긍지를 느낀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구장에 설 때까지, 미국 국립 발레단의 수석 단원이 되기까지 흘린 땀과 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공감하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에 응원을 보내고, 또 감동한다. 뉴욕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룬 자들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도시다. 적어도 이민자들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교포들은 현지에서 이들의 리그에 들어가 경쟁하여 성공한 한국인과 그들의 활동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열리지만 한국 사람들 위주로 기획되고 한국 미디어에만 홍보되는 이런 행사들은 사실 공허하다. '해외 동포 위문공연'이라는 콘셉트는 1970년대 '쇼쇼쇼' 시절 이야기다. 한국 음식을 시식하고, 한국의 역사와 현재 이슈에 대해 강의하고, 한국 문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행사들은 좀 더 치밀하게,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한류의 진출이고,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이며, 성공의 스토리고, 오래 남는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