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7.11.20 월 17:04
재외선거, 의료보험
> People/커뮤니티 > 교포인사인터뷰
한인사회 소통과 신뢰를 강조하는 뉴욕한인회 민승기 회장, 그는 누구인가
김도균 기자  |  kdg@oktime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7.3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민승기 제33대 뉴욕한인회장
지난 6월 세계한인회장대회가 열린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개막식, 한인회장대회 참석한 한 인사로부터 깔끔한 뉴욕신사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한 젊은 신사를 소개받았다. 그에 관한 기사가 보도된 바 있어 익히 알고 있는 터였으나 대면은 처음이었다. 올해 5월 1일 제33대 뉴욕한인회장에 취임한 민승기(57세) 회장의 이야기다.

그에게 주목할 만한 뚜렷한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미국 한인이민 40여년의 역사의 주축을 이뤘던 교포 1세대의 퇴임과 함께 자연스럽게 1.5~2세들에게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즈음에 신구세대간의 소통과 변화, 신뢰를 강조하며 한인회의 부활을 외치는 민승기 회장에게서 한인사회 변화의 돌파구를 발견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회도 천차만별이다. 지역과 문화,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한인회에 대해 바람직한 한인회상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조국을 떠나 남이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는 교포들의 삶과 애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뿌리에 한민족의 정체성이 박혀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학생으로 출발해 교포가 되다

1980년대 초, 이민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약 10년간 미국이민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민 회장의 도미도 비슷한 시기였다. 1982년 그는 유학생 신분으로 뉴욕으로 떠났다. 1남 2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간지 1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그는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했기에 그의 학업은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느 이민자들처럼 정착 초기에는 무척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뉴욕에서 이민초기에 장사를 한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지방경제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처지여서 작은 도시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미국에서의 민 회장의 사업 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업개시 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직업체험을 했다. 그가 최종 선택한 비즈니스는 무역이었다. 당시 중국시장이 열리는 때였고, 무역하기 좋은 여건들이 많아서 안성맞춤이었다. 비즈니스를 통해 재벌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나름 기반을 이뤘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지난날을 소회했다.

민 회장이 한인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그가 처음부터 한인회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한인회는 정치단체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어요. 이민을 온 마당에 현지에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는 한인회관계자들을 보면서 정상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신체의 변화가 오면서부터다. 제과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망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잃은 것을 되찾고 싶었고, 이왕 사업의 길로 접어든 이상 재벌이 돼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10여 년 전, 급격히 노안이 시작되면서 신체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나도 인생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은 평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지요.”

민 회장은 이때 가진 것을 다 풀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할 일은 어느 분야, 어떤 주제로 푸느냐는 문제만 남은 셈이었다.

   
▲ 33대 뉴욕한인회장 취임식에서 민승기 뉴욕한인회장이 한창현 전 회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욕한인회
그는 뉴욕한인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걸음마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것이 그가 뉴욕한인사회의 정치력신장을 위해 기여할 각오를 다진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갖춰야 할 자격과 실력, 관계설정에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28세에 이민을 간 후 45세 때까지 줄곧 사업에만 몰두했기에 한국적 정신연령은 여전히 28세에 머무르고 있었다. 한인사회에서의 대인관계나 대화에 있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그가 한인단체와 첫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뉴욕경제인협회였다. 당시 뉴욕한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계자와의 인연도 한몫을 했다.

민 회장에게는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나 노하우는 없으나 나름 한 가지 탁월한 재능이 있다. 단체나 조직, 사업시스템 등에 대한 분석능력이다.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나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사업 분석을 통해 철저히 파악을 한다. 젊어서부터 그런 쪽에 많은 훈련이 돼 있어서 남들보다 문제해결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관여한 단체나 조직 내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분석해 해결방안이 나올 때까지 몰두하곤 하는데, 방법이 나오면 바로 실행에 들어갑니다. 그러다보니 기존 조직, 기득권자들과 부딪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도 더 나은 조직과 단체를 만들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민 회장의 이런 스타일은 군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명하복의 군문화만이 존재하는 당시의 군대의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바꾸려 했으니 자신이 이상주의자로 비춰진 것도 당연했다고 털어났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살았다면 아마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도 내 일처럼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시민단체 하나쯤은 만들었을 것이라며 함박 웃는다.

한인회에서의 활동

민 회장은 18세 때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답을 찾기 위해 7년을 방황하다 나름 해답을 얻었다. 그의 인생관은 거대한 우주와 대자연 앞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염세주의적 성형을 가지고 있으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선을 향한 인간의 노력을 중요시한다는 측면에서 낙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제점을 찾아 비즈니스에 적용하고, 어려움을 대비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과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선을 중요시한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개혁주의자가 떠오른다.
민 회장에게 한인회에 대한 비전을 물었다.

“한인회가 원래의 설립목적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취지에 맞게 운영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미주단체들이 독립자금을 마련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지금은 다른 시대적 요구가 있는데 한인회 운영의 모티브(motive)가 될 만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지난 6월 17일, 뉴욕한인회와 한국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미국 내 한인중소기업 간 교류 확대 및 한국기업들의 미국시장 진출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제공=뉴욕한인회 

민 회장은 한인회의 운영방식과 한국정부의 한인회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했다. 한인회 재정이 어려운 것은 회장에 선출된 사람이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비영리단체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전략부재와 운영상의 미비점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민 회장은 또 한인회에 대한 한국정부의 과도한 요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정부의 지원이 미미한 한인회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 회장은 “한인회에는 희생은 있는데, 영광은 없다.”라며 씁쓸해했다. 한인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말이었다.

“민주평통은 한인회에 비해 하는 일이 없는 조직인데도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이유로 수많은 예산을 들여 모국으로 초청하거나 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한인회 활동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도 별로 없으니 ‘희생은 한인회가 하고 영광은 평통이 받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민 회장은 한인회가 이사회중심보다는 선거로 뽑힌 회장중심체제여서 연속성 있는 사업추진이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차세대 육성은 한인회의 과제

지난 6월에 개최된 세계한인회장대회 ‘양당정책포럼’에서는 한인사회 구심점 역할을 한인회가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인회가 한인사회의 실질적인 일을 도모하고 있음에도 모든 사안을 공관을 통해 지시받는 형태가 되다보니 한인회의 위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이었다. 또 한인 차세대의 한인회 참여유도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됐었다. 이런 흐름에 맞춰 민 회장에게 뉴욕한인회의 차세대관련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물었다.

“사실 차세대라고 해도 미주한인사회 같은 경우는 1.5세 주류가 40대입니다. 이들은 한인회에서 언어문제로 곤란을 많이 겪고 있어서 제도적으로 한인회에 정착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어를 쓰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취급하는 분위기여서 잘 정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일단 한인회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한인회가 노력해야 할 사항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민 회장은 1.5~2세들이 보기보다는 굉장히 외로워하는 세대라고 했다. 이들이 미주사회에 실상 정을 붙일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한인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보듬어준다면 한인회 참여유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차세대 한인들의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나름의 생각을 피력했다.
민 회장은 또 한인 차세대의 참여유도를 위해서는 이들이 1세대들보다 한인사회에 대해 정서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들과 함께 일을 추진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컨셉(concep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5~2세들 중에는 1세대들보다 오히려 오픈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이 우연한 기회로 한인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뉴욕한인회는 다른 한인회와 달리 차세대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한인회는 차세대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리더십을 보이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일만 시키는데 것에 머물고 있어 차세대들과의 융합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한인회 활성화 첫 단계는 커뮤니티 공간 확보

민 회장은 세계한인회장대회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한인회장대회 운영위원회의 구성도 대륙별 연합회장 중심으로 구성돼 그들만의 협의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 대륙보다도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 한인회장을 운영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범적으로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몇몇 지역 한인회장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5월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순방 첫 방문도시인 뉴욕 JFK공항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환영 나온 민승기 뉴욕한인회장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욕한인회

민 회장은 한인회의 활성화와 한인회 위상 제고에 대한 생각들을 쏟아냈다. 그가 말하는 한인회 활성화의 한 방안은 한인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한인들이 누구나 함께 모일 수 있고, 서로의 생각과 삶 그리고 한인사회 현안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 회장의 생각이다. 한인회관과 같은 공간이 있으면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은 물론, 커뮤니티 센터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인회의 활성화와 차세대 참여유도를 위해서는 반드시 공간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내가 가진 건물 지하실을 한인들에게 오픈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한인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민 회장은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 하드웨어부분인 공간 마련은 한인사회의 화합과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한인사회의 활성화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한인사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한다면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공간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현지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지원은 물론 펀딩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 게 민 회장의 주장이다.

한인사회 인재활용

한국정부는 해외에 나가있는 한인들의 숫자를 대략 73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구비례에 대비해서도 다른 나라들보다 교포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을뿐더러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흩어져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해외 한인들을 민족적 자산으로 보고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하는 한편, 이들을 활용할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요란한 구호만 들릴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은 요원해 보인다. 민 회장은 이와 관련해 한국정부의 한인사회 인재활용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내 비췄다.

“본격적인 이민이 이뤄진 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의 미주한인이민사를 돌아볼 때, 향후 10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1세들은 물론 1.5세~2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곳곳에서 전문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 그만큼 한인들의 역량이 강화됐고, 노하우가 쌓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들이 모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중앙대학교병원 김성덕 원장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민승기 회장(왼쪽). ⓒ사진제공=뉴욕한인회
민 회장은 한인출신 전문가들을 묶을 수 있는 실질적인 네트워크 작업을 차근차근 해 나간다면 10년 후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한인회 조직을 통해 활성화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으며, 한인회가 한인사회의 구심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공관중심 한인사회 정책을 과감히 한인회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한인회에 문제가 많고, 완장 찬 사람들의 그릇된 행태가 있을지라도 한인회 중심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한인회관 건립 등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회가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모일 수 있는 공간도 없는데 누가 한인회에 회비를 내며 후원금을 낼 가치를 느끼겠습니까. 한국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금방 한인회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가 문제입이다”라며 답답한 한국정부의 교포정책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토로했다.

민 회장은 도미 후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에게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대해 물어봤다. 70~80년대에 미주로 이민 간 동포들은 자녀들까지 오직 영어배우는 것이 대세여서 한국어 배우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민 회장도 같은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 궁금해서였다.

“우리 애들도 한국어 보다 영어에 집중했었죠. 대학 졸업 후 우리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2년 만에 그만두고 한국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더군요. 한국의 위상도 강화됐고, 한류열풍 등으로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겁니다.”

미주한인사회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1.5세~2세들이 날로 늘고 있다. 민 회장은 이것은 대단한 변화라고 말한다. 70~80년대 이민 간 한인들이 영어배우기 열풍에 휩싸였다면 이제는 1.5~2세를 중심으로 어린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공부를 시키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했다.
한류 그리고 한민족의 역동성과 열정… 민 회장이 요즘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키워드’들이다.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을 보면 가이드 깃발만 쫒아가는 데 반해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은 깃발과 상관없이 각자 플레이(Play)를 하는 스타일이죠. 단점도 있지만 우리민족의 역동성과 장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 회장은 이런 한민족의 역동성이 결집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한다. 미주사회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정치인-시민’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을 파악해, 미주한인사회가 행정부를 움직이는 정치인에 대한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인세대 간의 소통과 신뢰를 통해 정체성 확립은 물론 미주한인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민 회장의 남다른 각오가 새롭게 느껴진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