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오피니언>, 롤랑 윌슨 / 전 미국 해병대 정보분석관·조지메이슨 ]

북한의 왕조적 독재정권은 지난 60여년 동안 체제 유지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쟁 위협과 비대칭 도발을 반복해 왔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북한을 고립시키고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으로부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쯤 되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에 왜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상호작용을 하고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은 공공외교나 민간 주도의 문화·교육·경제교류·평화구현 등 여러 접근법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갈등을 해결하고 억제하는 데 점점 더 국가 대 국가 차원의 트랙I 외교 및 군사력에 의존하는 강경 대응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는 오직 현 상태를 유지,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갈등의 물줄기를 진정 평화를 향해 돌려놓고자 한다면 다양한 외교적 채널을 동원함과 동시에 민간의 힘을 빌려야 한다. 갈등 분석 및 해결학 분야에서는 기본이다. 접촉이론(contact theory) 또한 지속적인 화합과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걸쳐 대화를 통한 공조가 이루어질 때 편견과 오해를 감소시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체제의 고립성과 적대적 태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접근법이 쉽지는 않아 보일지라도, 이를 통해 긴장을 해소하고 간극을 메웠던 훌륭한 선례가 역사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옛 소련과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고 실제로 핵전쟁을 두려워해야 했던 1950년대 후반, 미국은 조용히 이러한 외교정책 및 갈등 해결 기법을 사용했다. 소련 정부 관료와 만나고, 개방정책의 대부로 꼽히는 고 알렉산더 니콜라예비치 야코블레프의 경우처럼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이용해 교육 차원에서 교류했으며, 음악 외교를 통해 소련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저명한 미국의 피아니스트 고 반 클리번의 경우처럼 문화적 교류에도 힘썼다. 1972년 얼어붙은 미·중관계를 녹였던 핑퐁외교 또한 이와 같은 사례에 속한다. 두 나라의 경우 모두 장기간에 걸친 다각적 공조와 노력 끝에 극적이고 긍정적인 관계 변화라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스포츠 외교 또한 두 국가와 국민들을 가깝게 만들고 불신의 문화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이다. 비록 얼마 전 데니스 로드맨의 북한 방문에는 문제점도 많았지만, 이는 미국이 이용 가능한 외교적 수단과 갈등 해결 기법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경종을 울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미국은 오히려 북한에 이 지역의 동맹국과 그들의 이익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데만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만 키울 뿐이다.

이 지역에서 자유와 국익, 동맹국을 보호하려면 강력한 군사력의 존재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그동안의 노력마저 강탈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젊고 경험이 적은 김정은이 북한을 이끌고 있음을 감안할 때, 세계는 북한 내부의 실세 진영이 김정은을 화합 불가능한 지점까지 끌고 가기 전에 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공식적 및 비공식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을 끌어안기 위해 다각도로 대안을 고려하는 국제적 리더십을 보이는 데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분명 옛 소련과 중국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처음에는 불신과 의심, 거부와 맞닥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쟁을 피하고 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한반도에 긍정적 변화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