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오 / 호주 한국일보 편집고문 ]
 

▲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이 글은 서방지역 한인들 지척에 있는 교포언론에 관한 것이다.
언론하면 의례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화려한 용어와 개념이 아니라, 조금만 잘하면 실천 가능한 한 가지 구체적 개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조금 긴 글이긴 하나 이 글 뒤 부분에서 그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고국이나 해외 한인사회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겠으나, 척박한 해외 한인사회를 볼 때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서방지역이라고 하지만 내가 오래 살아온 호주의 현장을 토대로 글을 쓰고자 한다. 다른 모든 서방지역을 취재 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호주의 이야기는 다른 해외 지역에도 대동소이하게 적용 될 것으로 짐작한다. 참고가 됐으면 한다.

지난 10년 동안 개인적 이유로 영국을 매년 갔었다. 갈 때마다 한인 식품점에 쌓인 교포신문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런던이 중심인 영국의 한인사회 인구는 4만5천명, 시드니가 중심인 호주 한인사회의 규모는 그보다 두 배 정도 크다(두 숫자 모두 유동 인구를 망라한 추산). 영세하기는 거기서 거기고 다른 점이라면 영국의 경우는 교포언론의 취약점의 하나인 자체기사보다 고국의 매체로부터의 옮겨다 실은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200만 명의 미국 한인사회도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어 별 수 없을 것 같다.

호주 한인들 가운데는 “왜 호주까지 와서 한인사회, 한인사회 하느냐”고 개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른 한인사회에서도 그런 말들을 많이 하리라 생각한다. 상당 부분 옳은 말이고 내 자신 또한 ‘제발 우리도 오스트레일리안, 아메리칸, 캐나디언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인지, 우리 자신이나 고국의 재외동포정책은 코리언의 정체성과 민족공동체가 먼저라는 것 아닌가 싶다.

내 손안에 있는 한 마리의 새가

교포언론은 우리말로 제작되고, 편집은 한국 언론의 전통과 관례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한국의 일부분이 되어있다. 고국에서 개혁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온 우리다. 정치, 경제, 교육, 금융 어느 분야 건 개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고국 언론도 개혁을 여러 번 했다. 그러기에 교포언론의 개혁이란 말이 가능하지만 어쩐지 어색하다. 그 언론의 이미지와 실상이 한 두 사람이 하는 식당만큼이나 영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개혁이란 어차피 어디서나 불가능하다. 개혁은 ‘무엇을 확 바꾼다’는 것인데 자기 집 구조나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키며 아귀다툼을 하고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점진적인 개선과 변화가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이글에서도 강도가 떨어지지만 개선이란 말을 썼다.

언론의 중요성은 어디에서나 귀가 아프게 듣는 명제다. 300개가 넘는 고국의 대학 대부분이 언론관련 학과를 두고 있어, 한국의 인구 당 매체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언론의 개혁이나 개선 방안을 열 올려 논의한다는 건 김빠지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보다 여건이 훨씬 나쁜 교포언론은 더 말 할 나위 없다. 필자도 과거에 교포언론관련  글을 수 없이 썼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질적으로는 오히려 퇴보했다.

그런데 왜 또 다시 교포언론인가? 사주(오너)의 처지와 위상 면에서는 몰라도 지면의 분량, 읽는 독자 수, 광고료 수입과 지출되는 재원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한인사회에서는 대단히 큰 단일산업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대로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없는 해외 한인사회에서 어쩌면 유일한 지식과 교육을 아우르는 육영사업이다. 취약한 교포신문(해외 한인사회에서는 종이 신문이 언론의 주축을 이루고 있음)이라고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신문도 무엇을 머리기사로 보도하느냐, 누구를 인물로 추대하느냐가 알게 모르게 그 사회의 가치관을 이끌고 나간다.

또 언론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심대한 정신적 영향은 5천만의 고국이나 좁은 호주 한인사회의 구성원에게 모두 같다. 다른 점이라면 여기 15만 호주 한인들의 현지 생활 정보와 사회교육에 관한 한, 그 필요를 1차적으로 충족시킬 책임을 진 매체는 고국 언론이 아니라 교포신문이라는 사실이다.

시드니와 더 넓게는 호주 한인 커뮤니티는 누가 뭐래도 우리가 삶의 둥지를 튼 제2의 고향이고 극히 일부를 빼고는 삶의 터전과 소득원이 거기에 있다. 그 둥지와 고향부터 먼저 잘 가꾸어야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잘 살 수 있고 고국과 다른 커뮤니티로부터 인간대접을 제대로 받을 것이다. ‘내 손안에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숲 속의 두 마리 보다 더 값지다’(A bird in the hand is worth more than two in the bush)라는 영어 속담처럼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하던 언론이 크는 토양은 사회다. 그러면서 그 사회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교포신문의 질과 수준이 낮다면 그것은 바로 교포사회의 실정이 그러하기에 당연한 결과다. 이 점은 뒤 부분에서 더 명백해진다. 그리고 오늘의 고국을 보면 그게 더욱 분명해진다. 고국의 정치와 사회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언론을 꾸짖는 사람이 많지만 국민은 정론지보다 흥미 있는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많이 내보내는 부자매체를 더 좋아 하는 사실을 보면 그렇다.

인쇄기술의 혁신

외형과 분량으로 본다면 여기 교포신문은 지난 20여 년 동안에 가히 개혁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장족의 발전을 했다. 겉보기에 고국의 활자매체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다. 일간지도 나온다. 그것은 일부 PC컴퓨터에 기반을 둔 인쇄와 편집(lay-out) 기술의 혁신과 일부 교민 인구 증가 덕분이다.

인쇄 과정의 첫 단계는 식자(植字, typesetting)라고 부르는 글자를 일정한 종이에 찍는 일이다. 1980년대 초반 내가 교포신문을 시작할 때는 수동기계의 좌판에서 활자 하나하나를 골라 치는 청타(靑打)라는 게 있었다. 한글 타자기에 비하면 속도가 몇 배 느리다. 숙련공이 하루 종일 쳐도 한 면을 채울까 말까였다.

그 이전,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메이저 신문사에서는 수십 명의 문선공이라는 기능인이 납으로 된 활자를 손으로 역시 하나하나 매일 찾아내는 작업을 했었다. 지금은 컴퓨터에 관련 프로그램을 깔면 식자, 광고 제작, 지면 편집 모두를 짧은 시간에 해치울 수 있다. 또 컴퓨터를 이용하면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무한한 양의 기사를 퍼다가 지면을 보충할 수 있다. 이 또한 뒤에서 설명하는 대로, 제작기술의 혁신이 오히려 교포신문의 질적 퇴보를 가져왔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참 아이러니다.

제작자(매체 종사원 또는 언론인)와 국민(수용자-독자, 청취자, 시청자)과 정부의 세 주체가 매체의 질과 수준을 결정한다. 일종의 3위일체설이다. 호주에서 정부 탄압으로 교포신문이 지장을 받을 건 하나도 없다. 명예훼손법의 규제를 받지만 그 건 호주에서 근본적으로 민사(民事)다. 그렇게 볼 때 오늘의 취약한 시드니 교포신문의 책임은 제작자와 수용자인 한인사회 구성원이 져야 하는데 그게 후자 쪽에 더 있다는 게 또한 나의 생각이다.

왜 감시, 비판 보도는 줄어드는가

왜 질적으로 퇴보했고, 왜 그 책임이 구성원 쪽에 더 있다고 보는지 몇 가지 이유만 적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런 신문에는 언론의 본업인 감시와 비판기능이 거의 사라졌다. 마치 신문들끼리 커뮤니티 안에 일어나는 껄끄러운 일들은 비껴가기로 묵계나 한 듯 얌전하다. 호주라고 하는 ‘지상 천국’에 사니 좋은 이야기만 하자는 건가. 그렇다고 감시와 비판이라고 해서 무조건 세게 폭로하고 신랄하게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특히 고국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막말 경쟁을 여기에 옮겨와서는 안 되겠다.

▲ 2011년 4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외동포기자대회' 개막식 광경.(사진은 기자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기자협회

그러나 잘못되어 가는 일을 점잖게 지적하고 공론(公論)에 붙이는 것은 이와 다르다. 공익을 표방하고 나선 그 많은 이른바 활동과 행사 가운데는 한정된 재원을 고갈시키고 오히려 한인사회의 물을 흐려 놓는 것들도 많다.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과잉, 중복 또는 하기 쉬워 한쪽에만 편중된 균형을 잃은 것들도 많다. 가만두면 언젠가 커뮤니티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건 없을까. 그에 대한 건전한 지적과 계도적인 환경감시 보도가 줄어든 배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정 단체나 개인을 향하여 달콤한 기사를 쓴다면 후한이 없다. 고맙다는 인사가 따른다. 그러나 써야할 기사를 쓰면 정반대다. 이익보다 불이익이 더 따른다. 우선 광고를 놓친다. 대개 쓴 소리의 객체는 잠재적 광고주인 공익단체와 기업이니 안 그렇겠는가. 까딱 잘못하면 협박이나 명예훼손 제소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 위기에 빠지면 교민 어느 누구도 도우려 나서지 않는다. 자구책을 위한 언론사 간 공조체제도 없다.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그러니 이대로라면 교포언론은 우리사회를 리드하기는커녕 반대로 몇 사람, 몇 단체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둘째, 위와 마찬가지로 권위지의 한 가지 기준은 행사중심 기사(event-oriented news)에 대비해 본 이슈중심 기사 (issue- oriented news)의 양이다. 교포신문을 놓고 권위지 운운하는 것 또한 어색하지만 이 구분은 언론을 표방하는 어떤 매체든 그 우열을 결정하는 벤치마크가 되어야 한다.

이미 밝혀진 대로 여기서 말하는 이슈는 1차적으로 커뮤니티 관련이다. 통일이나 국제관계, 국제경제가 중요하지만 이런 이슈는 교포신문이 안 해도 다른 큰 매체들이 잘하고 있다. 커뮤니티의 특정상 나는 교포신문이 가장 으뜸으로 처야 할 이슈기사는 폭로나 특종, 공격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한인사회의 길을 밝히는 교육적 기사라고 생각한다. 한정된 커뮤니티의 재원과 인력을 효과적으로 동원,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이슈중심 기사가 그런 예다.

그런 기사는 리서치가 필요하고 시간이 걸린다. 또 기자는 고국의 동업자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우리말(한국어)외에 현지어도 잘해야 하고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한다. 물론 꿈같은 소리다. 그러나 이상과 목표는 그래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교민들은 그런 수준 높은 기사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어쩌다가 괜찮은 보도가 나와도 격려하는 몇 줄 자리 ‘독자의 편지’ 하나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런 미디어 환경은 전적으로 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로 기술면에서의 제작의 용이성은 영세 매체의 수를 늘려 과당 경쟁에 따른 무질서한 광고 시장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각 매체가 고용할 수 있는 풀타임 취재 인원은 극소수다. 글쓰기는 음식 만들기와는 다르다. 기자 한 사람이 하루 취재해서 써 낼 수 있는 분량이 많지 않다. 교포신문의 큰 지면을 비교적 쓰기 쉬운 행사기사와 큰 사진, 자사 기획에 따른 독자적 취재보다 보도자료 등 외부 쪽 필요에 따라 나오게 된 기사가 차지하는 이유다.

대개 행사는 행사일 따름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길게 쓸 뉴스 가치가 없다. 한인사회나 고국의 방문단이 오페라 하우스를 채울 정도의 거금을 들여 주최하는 대대적인 연예 행사에 대해 호주의 주요 매체가 거의 한 줄도 보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물론 커뮤니티 신문은 전국지와는 달리 커뮤니티 안에서 일어나는 행사의 예보나 결과를 알리는 기사는 빼놓아서는 안 된다. 다만 동정난이면 족한 행사가 길게, 그리고 매번 같은 이름과 얼굴이 나오는 식이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런데 왜 이게 독자의 잘못일까? 이때도 독자가 편집국의 어려운 처지와 그 결과물인 기사에 대한 걱정은커녕 무관심인 것이 문제다. 한인사회 발전을 위한다는 행사와 모임은 많지만 교포언론에 대한 공개토론 한번 한 일이 이때까지 없었던 것은 그런 사례다.

알다시피 신문은 공짜여서 어떻게 나오든 모두가 집어간다. 그러니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뭐 어렵게 신문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데 알고 보면 신문은 공짜가 아니다. 신문이 돌아가게 하는 광고비는 소비자인 구성원이 내는 돈이고, 한인사회에서는 아주 짭잘하게 써야 할 재원이다.

대안은 오피니언 페이지

서두에 밝힌바와 같이 마지막 개선 방안을 말해 두고자 한다. 물론 쉬운 방안은 아니나, 나의 제안은 돈이 드는 게 아니어서 구성원들의 태도와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다면 실천으로 이어지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한가지다.

다름 아닌 독자가 참여하는 독자의견 난(또는 여론난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음)의 활성화다. 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지각 있는 분들과 거론해온 과제다. 먼저 순서상 이 난의 성격에 대하여 간략하게 쓰고자 한다.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공기로서 열린 언론을 내세우는 선진 서방국가의 신문은 그 구체적 실천으로 전면 2-3페이지 또는 그 이상에 걸친 오피니언 페이지(opinion pages)라 불리는 면을 두고 있는데 한국 언론도 이런 구미언론의 관례를 따라 그대로 오피니언 또는 말을 바꾸어 여론난 등의 이름으로 큰 지면을 할애하여 그 안에 공공 이슈에 대한 지적, 비판, 논평, 주장, 건의와 대안 등으로 된 기사와 글 들을 모아 싣고 있다.

오피니언 페이지의 한 쪽은 (1)신문사의 주장, 입장, 논평을 밝히는 사설이 차지한다. 나머지 넓은 지면을 두 가지 유형의 오피니언난이 점한다. 다른 하나는 (2)현안의 주요문제(정치, 경제, 사회, 문화문제)에 대하여 외부 전문가에게 사전 의뢰하거나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외부 기고를 받아드리거나 자사 인원을 동원해 적당한 길이의 칼럼으로 싣게 하는 것이다.

나머지 한 쪽은 (3)전적으로 독자의 자유기고로 된 ‘편집자께 보내는 편지’(Letters to the Editor. 독자투고, 독자 마당 등 이름을 붙이나 아래에서는 ‘독자 편지’로 칭함)로 글 내용의 엑기스만 뽑아 줄여 싣는 대신 될수록 많은 독자를 참여케 하는 지면이다.

여기에서 논하는 오피니언 난은 (3)항이다. 거의 모든 구미신문에서처럼 고국의 신문과 간행물들이 이 지면을 정해 놓고 있으나 호주 교포신문에는 이런 게 없다. 써 보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면을 조금만 관심 있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사실은 2009년 소수민족위원회(Community Relations Committee, CRC)의 이민자 신문 조사에서도 지적 됐다.(교포신문의 오피니언 비율은 전체 콘텐츠 가운데 거의 무에 가까운 0%-1% 미만으로 나타났다). 영국 한인사회의 신문에도 없다. 미주한인사회 신문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게 왜 개선을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는지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독자 편지’는 민초들이 언론에 접근할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길이지만, 각국의 큰 주류 매체에는 지면에 비하여 기고가 넘쳐 보내도 게재하기가 어렵다, 특히 자사 이기주의가 강한 고국의 언론은 더욱 그렇다. 시늉이나 내려는 건지 실리는 아이템을 보면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지면에 관한 한, 교포신문은 반대다. 악의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거의 모두 실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교포신문은 세계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널리 열린 신문 (free press)이다.

그리고 위 (2)항의 경우와는 달리 독자 편지는 타자로 A-4 용지 반 길이면 족하고 ‘어디에서나 고료가 없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없어서 또는 고료가 없어 못 한다면 말이 안 된다. 글재주가 없어 못쓴다는 것도 마찬가지. 편집국에서 필요하면 문장을 다듬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쓰기 문화와 커뮤니티에 대한 참여 의식과 지식인 풍토가 문제일 것 같다.

2. 이에 비하여 ‘독자 편지’난이 계속 된다면 그 효과는 저비용, 고효율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 난에 실릴 잠재적 내용들을 생각해보면 안다. 80년대 ‘호주소식’ 신문을 할 때다. 웨스턴 시드니대의 홍성묵 교수가 “무엇이든 홍 박사에게 물어 보세요´라는 안내 광고를 내고 생활정보 센터를 자처했었다. 여가를 이용하여 하려던 그 사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왜 그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그런 게 지금도 있다면 거기에 문의해오는 것들이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일 것이고 그런 문의를 ‘독자 편지’난에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가 그런 문의에 일일이 대답해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독자의 문의가 수시로 활자화 된다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의 영역이 밝혀지고 그 많은 신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그런 데에 취재의 방향을 맞출 수가 있을 것이다.

정보 중 법률, 의료, 보험, 부동산, 심리 상담, 유학과 같이 돈이 되는 분야에서는 공급이 넘치는 편이다. 지면 상 여기에 예시 못하지만 그렇지 못한 정보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역시 기사의 균형 문제다. 공공이슈도 마찬가지다. 술자리에서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모두 열의가 대단하고 다양하다. 이 중 고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쪽에 맡기고 여기 문제에 대하여 느끼는 바의 의견이 활자화된다면 고국정부를 대표해서 나와 있는 공관, 한인회와 다른 현지 단체들, 그리고 커뮤니티의 이슈를 지켜보는 인사들은 한인사회 구성원들의 여론흐름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지식인사회라는 게 있는가

3. 외국매체의 경우를 보면 ‘독자 편지’는 대개 어느 일자 어느 기사 또는 기고를 읽고서 칭찬이나 지지 아니면 점잖게 반론을 제기하는 게 많다. 이런 게 많아야 신문은 명실공히 ‘공론의 장’ 노릇을 할 테고 편집국이나 해당 기자와 기고가는 취재나 글 쓰는 보람을 느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는 게 여기 신문인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런 구성원의 의견과 건의로 찬 지면이 있다면 먼저 읽게 될 것이다. 그 지면 하나로도 돈 안들이고 신문은 좋아진다. 또 그 면에서 ‘독자의 편지’의 활성화는 난립된 매체의 우열을 가늠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될 수가 있다.

나 개인으로는 어떤 신문이든 외부인의 기고는 빼놓지 않고 읽는다. 교민들의 관심사를 알고 싶어서다. 위에서 신문에 대한 참여 부재를 언급했지만 실은 교포신문의 큰 지면을 차지하는 게 자발적으로 들어온 긴 외부 기고다. 유익한 글들이기는 하나, 아쉬운 점은 모두 한결같이 커뮤니티의 이슈는 비껴가는 덕담 수준이어서 전체 지면으로 봐 역시 균형이 문제다.

4. 내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한 면에 대졸자는 없고, 고졸은 손꼽을 정도였다. 사회이슈에 대한 의견이 필요하면 이들을 찾아가는 등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 여기나 고국 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구 당 한국인의 대졸자 비율은 호주보다 높다. 이민 초기에는 별 수가 없었으나 지금은 화이트 컬러와 지식인을 자처하는 인원도 많아졌다. 한인사회 안에서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장차 자체 사회뿐만 아니라 전체사회를 향한 새 리더의 육성이 흔하게 논의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리더가 나오자면 커뮤니티 이슈에 대한 지면을 통한 활발한 토론의 장이 전제 조건일 텐데 몇 줄이면 되는 독자 편지 한 장을 자민족 신문에 쓰는 사람이 없는 지식인 풍토라면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