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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모국공헌은 교과서에 실어야 합니다”- 이민호 통일일보 서울지사장, 재일동포 모국공헌의 발자취 “민단은 대한민국과 하나이다” 책 출간
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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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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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재일동포 모국공헌의 발자취를 책으로 발간한 이민호 통일일보 서울지사장이 책 말미(에필로그)에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재일동포의 모국공헌은 교과서에 실어야 합니다”)을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저자가 재일동포와 인연을 맺은 건 1996년 재일동포 민족지 <통일일보(統一日報)>에 기자로 입사하면서부터였다. 안국동 서울지사로 매일 배송되는 도쿄발 신문을 읽을 때마다 재일동포에 대한 궁금증은 쌓여만 갔다. 절반 넘는 지면이 한국 관련 소식인데 일문판으로 발간되는 것부터 매일 재일동포 관련 뉴스, 민단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모든 것이 생경하기만 했다.

저자의 첫 취재 기회는 그해 가을 서울에서 열린 민단 전국지방단장회의 현장이었다. 당시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장면은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됐다. 국민의례 시 참가자들의 모습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태극기를 향해선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서 있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엄숙하게, 애국가 제창 때는 또박또박 부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단상을 향하는 이는 태극기에 먼저 경의를 표한 뒤 올라가고, 단상을 내려갈 때는 오른손을 왼 가슴에 대어 인사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참가자 중 딴청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국민의례를 셀 수 없을 만큼 보아왔고 경험도 많이 했지만, 민단의 그것은 특별해보였다. 재일동포들의 진지함 속에서 습관적이지 않은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난 경건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재일동포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절대다수가 일본에서 나고 자란 2세 이후의 세대, 앞으로 일본에서 영주할 생각을 가진 이들. 게다가 모국어인 한국어 구사능력마저 신통치 못한 이가 태반. 그럼에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목청껏 부르짖고 태극기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문득 일본에서 계속 살아갈 이들이 모국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통일일보>를 비롯한 재일동포들이 남긴 각종 기록을 검색하고, 동포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연스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재일동포에게 한국과 한반도는 선친의 고향으로서 자기 자신의 뿌리(Roots)이자‘나는 누구인가’란 정체성의 본산이다. 재일동포는 단지 그 사실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혜택을 누리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감사함은 새까맣게 모르는 스스로에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취재로 확인한 재일동포들의 모국사랑은 한마디로 일편단심이었다. 사실들만 열거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동포들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직전인 그해 6월,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에게 태극기가 달린 유니폼과 스포츠용품에 여비까지 챙겨줬다. 이 때 전달한 여비 64만9,500엔은 동포들 본인이 끼니를 굶으며 한 푼씩 낸 피땀 어린 성금이었다. 6.25동란 때는 642명의 젊은 동포 유학생들이 펜 대신 총대를 메고 참전했고, 민단 부인회는 여성의 몸으로 의약품을 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동포기업인들은 1960년대 이른바 조국 근대화 때 일본에서 피땀 흘려 모은 자본, 기술, 노하우를 모국에 전수했다. 이는 한국 최초의 공단인 <구로공단>이 재일동포에 의해 입안되고 입주기업 7할이 재일동포기업이었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동포들은 보릿고개 시절 고향의 울퉁불퉁한 도로를 새로 놔주고, 전기와 수도를 가설해 호롱불을 백열등으로 우물물을 수도로 바꿔줬다. 정부가 할 일을 일개 개인이 했다는 사실은 다시 봐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2년 7월 재일동포들이 ‘대한민국 금융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100%출자해 창립한 <신한은행>, 88서울올림픽 때 일화 100억 엔이 넘는 성금을 모아 올림픽 경기시설 8개소를 건설한 일, 97년 말 IMF외환위기 때 파탄 난 모국을 돕겠다며 미화 15억 달러를 송금하고 국채 300억 엔을 전량매입한 일,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 한일공동응원단을 조직해 양국 우호친선을 도모한 일 등...

이 역사들의 주역이 바로 재일동포였다. 일본에 있는 재일본대한민국공관 10개소 가운데 9개소가 재일동포 기증작이란 사실은‘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선뜻 믿겨지지 않는다. 니이가타총영사관을 제외한 일본 내 모든 한국 공관은 동포 개인이나 민단 단원의 열성적 모금 활동을 통해 세워졌다.

재일동포들은 모국 대한민국 발전에 충분히 공헌했고, 헌신적인 조국사랑을 실천했다.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재일동포의 존재는 미미하다. 일제 때 끌려간 사람 그 이상의 내용을 찾기가 힘들다. 모름지기 ‘우물 물을 마실 때는 그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飮水思源, 掘井之人)’고 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하고,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라는 격언이다. 오늘날 부강한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풍요를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선열들의 민족과 나라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한국은 2차 대전 독립국 가운데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성공을 일궈낸 유일한 나라이다. 재일동포들은 기적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굵직하게 묵묵히 조국 발전에 공헌했다. 재일동포는 지켜야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자, 세계 속에 당당히 자랑해야 할 국가적 자산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재일동포 모국공헌의 발자취, 차세대의 지침인 교과서에 그 사실만큼은 실어야 하지 않겠는가.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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