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 김삼오 / 호주한국일보 편집고문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이 질문법은 우리만이 쓰는 수사(修辭)가 아니다. 영어로는 ‘Chicken and egg question’이다. 사회과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디까지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밝혀 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양자 간 선을 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과학적 설명이란 원인이 되는 변수(variables)의 분석이다. 이때 사회현상의 경우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복합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언젠가 아침을 잘 먹는 아이가 학교 성적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밥 때문에 그런지 밥을 잘 먹이는 집은 부자여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그걸 가릴 수 있으려면 두 변수를 분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쉽지 않다.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게 앞서 말한 닭과 계란의 관계다. 닭이 나쁘니까 나쁜 계란을 낳고 계란이 나쁘니까 나쁜 닭이 나온다는 순환론(circularity)은 서로가 상호 교호하는(mutually interact) 관계로서 서로가 잘 하면 상승적으로 좋아지고 반대면 상승적으로 나빠진다고나 말해야 될까, 다른 방법이 없다.

물질이면 몰라도 인간 세계를 말하면서 과학적이니 뭐니 하면 학자들의 탁상공론으로 여길 수 있으나 그게 아니다. 신앙, 철학, 가치관 등의 영역이 아니라면 인간관계도 과학의 지배를 받는다. 당연히 사회문제 해결도 과학적 분석 없이 불가능하다.

어느 쪽을 해도 잘 안 된다면

한 나라와 사회가 잘못되고 있을 때 그 책임은 정부와 국민(또는 치자와 피치자, 지도자와 추종자, leaders와 followers), 어느 쪽에 더 있을까? 한국 정치에서 늘 있어온 전형적인 닭과 계란의 논쟁으로 역시 과학적 또는 실증적(수량으로 분석해서와 거의 같은 뜻)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연구과제다.

그러나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관찰을 할 수는 있다. 현실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를 해나가는 방법은 대통령책임제와 의회내각제다. 이와 관련, 세계지도를 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도(국민의 수준)가 낮은 지역에서는 두 정치제도 중 제 어느 쪽을 해봐도 잘 안 된다. 반대로 어느 쪽을 하든 잘 되는 지역과 나라가 있다. 이건 한국에서 툭하면 하겠다는 헌법 개정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이유다.

법과 제도와 수단은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교육, 금융, 그 외 대부분의 분야에서 매 정권 때마다 정책 변경이 있어 왔는데 지나 놓고 보니 규제와 규제 완화 사이를 왔다 갔다 했을 뿐 어느 쪽을 해도 잘 된 적이 없다. 어느 쪽을 해도 법과 제도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며 이 허점을 악용하지 않는 사회(인간) 풍토가 관건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잘 쓰이듯 한국인은 나라의 책임을 모두 지도자에게 돌리는 습성이 강하다. 그건 이해가 간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은 노예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1인 독재가 불가능한 오늘날 지도자가 나라를 전부를 이끌고 간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윗물, 아래 물 비유는 엄격히 말해서 사회 현상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자연 현상인 물의 흐름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언제나 예외가 없지만, 지도자는 추종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봐 달리 움직인다. 아랫물이 윗물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탱고 춤을 혼자서 출 수는 없다.’ 파트너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부정부패도 그렇다. 우선 뇌물을 주고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사업가가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국민이다.

대개 남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게 여자다. 고위공직자, 판검사들의 아내들은 대개 잘난 일류대학 출신 여성들인데, 이들 가운데 남편에게 어렵게 살아도 좋으니 나라를 위하여 정직하게 일해 달라고 간곡히 주문할 아내 노릇을 하는 이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이 여성들은 국민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는 대학과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달콤한 유혹에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될 정권에 끼어든 한국의 사례는 아마도 세계적 기록일 텐데, 이들도 국민이었다.

사실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불가능케 하는 한국인의 행태적 속성들을 나열하자면 한이 없겠다. 매 정권 때마다 보면 정부 인사로부터 사회 전반의 일이 혈연, 학연, 지연, 이해관계로 엮어진 인맥과 논공행상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선거 때가 되면 사회가 들뜨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가 깨끗하고 민주주의가 잘 된다면 기적이다.
대통령과 권력을 옹호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권력과 지배층의 속성은 늘 그런 것이고, 과거 경험한대로 국민을 위하여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면 국민이 먼저 잘할 수밖에 없고, 이제부터는 국민의 행태가 먼저라고 역설하고 싶어서다.

정부와 대통령이 뭘 해야 하고, 뭘 못하는가는 그 동안의 언론의 사설. 평론, TV 토론, 명사들이 칼럼과 강연으로 너무 잘 쓰여지고 알려져 있어 그것을 재탕하는 건 덜 중요하다. 너무 흔해 빠진 법과 제도의 연구보다 국민행태 연구에 관심이 모아져야 할 시점이다.

왜 나는 한국에 대한 글을 더 쓰는가? 이에 대하여 언젠가 자세히 밝히기로 하고, 한 가지만 말해두겠다. 고국이 바뀌지 않고는 해외 한인사회가 바뀔 수 없다는 생각을 요즘 더하게 된다.